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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위시 Oct 01. 2022

주차보다 느린 아이, 주차보다 느린 증상

두 번째로 찾아와 준 아기는 꼭 잘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되길 바랐다. 캐나다는 한국과 다르게 병원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가 없다. 담당 패밀리 닥터가 레퀴지션(처방전 같은 것이다)를 써주면 그걸 들고 피검사하는 회사를 찾아가 피검사를 받고, 초음파를 찍는 회사를 찾아가 초음파를 받아야 한다. 피검사 결과와 초음파 결과는 최소 24시간이 지나야 다음날 패밀리 닥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초음파를 봐주는 사람들은 그저 초음파 기사로, 결과를 알려줄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결과를 알려주는 것은 무조건 "의사"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음파를 찍고 나면 해당 초음파 회사에 근무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해당 초음파를 해석하여 리포트를 발행하고, 그것을 패밀리 닥터에게 팩스나 넷 케어 시스템 (앨버타주 한정)에 올리면 패밀리 닥터가 다시 환자에게 연락해주는, 돌고 도는, 한국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 이곳 의료의 기본이다. 내가 이것을 이리도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초음파 찍어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고, 일반 환자들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그저 다음날 결과가 나온다 정도로만 알고 있다. 내가 이 과정을 이리도 지루하게 이야기한 것은, 바로 내가 일하던 회사가 "초음파 찍어주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직장동료들이 초음파 기사이고, 내 상사가 영상의학과 전문의였으니, 만약 걱정이 되는 사항이 있다면 나는 상대적으로 바로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직장동료 중 하나는 원래 인도에서 산부인과의 로 근무하던 사람이었는데, 캐나다로 이민을 오면서 본인의 의사 자격증은 갱신하지 못했지만, 대신 초음파 기사로 전직하여 초음파 기사로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산부인과적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었다. 피검사 결과로 임신 사실을 확인하긴 했지만, 캐나다는 최소 임신 6주가 되기 전까지는 초음파를 보자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5주 차쯤에 초음파를 봐서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하고, 6~7주 차에 아기 심장소리를 들려주는 한국과 다르게, 공공의료이기 때문에 적어도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까지는 예약조차 해주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내게는 든든한 직장동료가 있었고, 나는 그녀에게만 조심스럽게 내가 임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첫 초음파를 보았다. 어떻게 보면 이게 화근이었다. 내가 난임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던 터라 그녀는 뛸 듯이 기뻐하며 내 초음파를 봐주었지만, 아주 작디작은 아기집만 발견이 되었다. 그녀는 "아직 너무 이른가 봐. 너무 걱정 말고 예약된 날짜 (2주 뒤)에 보면 잘 보일 거야"라고 대답해주었다.


문제는 내가 이미 한 번의 유산을 겪었던 사람이라는 점과, 내가 들락날락하던 맘 카페 사람들은 그때쯤 난황을 봤다고 말하던 글을 너무 많이 읽었던 내 탓이었다. 지금이야 막달이니 마음 놓고 내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만, 임신 초기의 임산부는 불안증 환자다. 임신 초기의 유산율은 생각보다 꽤 높아서 모든 유산의 80%는 초기 유산이고, 그 초기 유산의 대부분은 첫 7~8주 안에 일어난다. 이미 유산 경험이 한번 있었던 나는 "아직 이른가 봐"가 "유산기가 있는데"로 들려왔다. 그리고 대망의 2주가 지나, 피검사를 받은 지 2주 뒤, 나는 예약된, 본격적인 초음파를 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아메드라는 인도인 아저씨 초음파 기사에게 일부러 받았다. 아메드는 역시 매우 기뻐해 주며 초음파를 찍어보았는데, 약간 갸우뚱하며 "피검사가 2주 전이라고?"라고 되물었다. 갑자기 극도의 불안감이 나를 휩싸 안았다. "음,, 착상이 생각보다 늦었을 수 있지."라고 다시 입을 뗀 아메드는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며 "이거 보여? 이게 아기집이고, 이게 난황이야. 임신은 확정인데 아직 너무 일러서 심장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 그래도 자궁외 임신은 아니네, 너무 축하해"라고 축하해주었다. 보통 피검사 결과는 임신 4주 차에 나오는데, 2주가 지났으니 6주는 넘어야 했다. 그런데 아기집과 난황은 내가 알기로는 임신 5주 차에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기의 발달이 조금 느렸다. 불안했지만 축하를 받았으니 2주 뒤에 또다시 잡힌 초음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상의 끝에 아이 태명은 고글이로 정했다. 캐나다에는 강력 본드인 "고릴라 글루"가 있는데 아기가 제발 내 안에 딱 붙어 있으라고, 건강하게 잘 버텨달라는 마음을 담아 "고글이"로 부르기로 했다. 영어로도 발음이 쉬워서 남편도 부르기 쉽기도 했다. 각종 불안증에 시달리는 나에게 친구들은 맘 카페에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조언을 들어도 맘 카페에 들어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남편은 계속 아무 문제없을 거다, 괜찮을 거다 라는 말만 해주었다. 내 불안증은 아이의 발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2주가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임산부로서의 각종 증상을 확연히 겪고 있었다. 냄새에 예민해지고, 일을 하는데 힘이 들었다. 자주 졸렸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초음파를 보려면 언제든 볼 수 있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또다시 2주가 흘러, 피검사 이후 4주가 흐른 뒤 남편까지 데리고 가서 초음파를 보았다. 이번에는 확연히 난황이 아닌 새로운 형체의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아기였다. 초음파 기사도 환히 웃으며 "이게 머리가 되는 부분이고, 이게 몸통이 되는 부분이다" 라며 알려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심장소리를 듣는 타이밍이 돌아왔다. 초음파 기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몇 번을 다시 찍었다. 캐나다는 참고로 초기에는 심장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래프상으로 뛰고 있는 것을 찍고, 그것의 평균치를 계산해내곤 했다. 초음파 기사는 급기야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상담을 해야 한다며 잠시 방을 비웠다.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불안함이 지붕을 뚫었다. 회사의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돌아와 아이 사이즈는 약 6주 3일이며, 평균 심장박동수가 92 정도라고 대답해주었다. 보통 이 시기에 100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살짝 심박수가 낮다며, 유산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했다. 분명 2주 전에 5주 3일이라고 했는데 2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1주일 정도 크기밖에 자라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불안했는데, 남편은 심장소리를 들었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많이 아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고대하던 심장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양가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마침 친정어머니가 수십 년의 교사생활을 마치시고 은퇴를 하셔서 은퇴 축하를 하던 시기였다. 한국에 사는 동생에게 부탁해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컬러 프린트로 찍어 깜짝 선물로 하기로 결심했다. 시댁에도 초음파 사진과 함께 임신 사실을 알렸다. 양가 부모님 모두 뛸 듯이 기뻐해 주셨다. 우리 커플이 결혼한 지 8년, 임신 시도한 지 6년 만에 생긴 결실이니 누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양가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보며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뱃속의 아기에게 "부디 잘 붙어있어 다오, 고릴라 글루처럼 딱 붙어서 잘 커다오"라고 불안한 마음을 삼키며 주문처럼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심장소리 대비 유산확률을 검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불안과 기쁨이 공존하는 말 못 할 2주를 또 한 번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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