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건강검진과 의사의 막말 이후, 나는 내 건강관리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매일 적어도 30분이라도 운동을 하려고 했고, 열심히 체력을 기르고자 했다. 내가 사는 앨버타주는 겨울이 춥고 길기 때문에 겨울에 나가서 걷는 것은 조금 힘들지만, 다행히 집에서 각종 유튜브를 보며 홈트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체력을 길러내었다. 2020년 봄이 되자, 뚱뚱하기만 했던 몸에 조금씩 탄력이 붙는 것이 스스로의 눈에도 보였다. 날이 따뜻해지자 나가서 걷고, 산으로 호수로 놀러 나가기 시작했다. 안정적 직장이 생겨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도 큰 몫을 했다.
체력이 점점 좋아지자, 점점 더 높고, 긴 산행에 도전을 하기 시작한 우리 커플은 여름에 밴프로 4박 5일 캠핑여행을 떠났다. 다들 알다시피 2020년은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시점이었지만, 캐나다의 캠핑장에서는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산에서도 서로 2미터 거리만 유지한다면 산행 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었었다. 따라서 실내에서 다른 활동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즐겁고 반가운 것이 캠핑이었다. 한국처럼 텐트와 텐트가 가깝지 않고, 각 캠핑 사이트가 나무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도 득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했던 건, 원래는 제공되었던 샤워실이 막혀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3일째 되는 날, 밴프에서 멀지 않은 래디움 핫 스프링이라는 곳의 호텔에서 샤워도 할 겸, 근처 여행도 할 겸 하룻밤 묵기로 계획을 짰었다.
당시의 나는 또 생리가 잔뜩 미뤄지고 있었다. 체력을 기르기로 한 뒤로 배란 약을 모두 끊어버렸기 때문에 내 생리주기는 또다시 엉망진창이 되었고, 아기에 대한 미련을 많이 지우고 있던 나는 생리가 늦어지면 그냥 늦어지나 보다 하고 넘어가곤 했다. 만약 생리가 3달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만 생리하는 약을 먹어 호르몬을 조절하곤 했다. 아마 그 당시는 거의 50~60일째 생리를 안 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밴프에서의 2일의 텐트생활을 마치고 레디움 핫 스프링으로 향하던 우리는 가는 길에 굉장히 멋지고 경관이 좋다는 등산코스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원래 왕복 5킬로 정도의 쉬운 코스였는데 우리는 길을 추가로 잘못 들어 왕복 10킬로, 굉장히 가파르고 힘든 산행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거의 산행을 끝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아랫배가 너무 아팠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생리통임을 직감했다. 화장실도 없고 생리대도 없는데 풀숲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니 새빨간 피가 나왔다. 다행히 주차장이 20~30분 거리여서 속도를 내어 겨우 차에 도착해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 뒤로는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기절하듯 잠들었다.
호텔에 도착해 엉망진창인 속옷과 바지를 빨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는데도 배가 여전히 너무 아팠다. 타이레놀을 추가로 먹어야 했다. 오랜만에 하는 생리라 그저 배가 더 아픈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10시간 산행에 허기진 남편을 위해 근처 유명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약기운이 돌아 식사는 그래도 맛있게 했는데 식사가 끝나고 일어나니 남편이 후다닥 재킷으로 내 엉덩이를 가려주었다. 약 한 시간 남짓한 식사시간 동안 생리대에 피가 새서 하얀 바지가 새빨갛게 물들었던 것이었다. 큰일이었다, 호텔 숙박을 겨우 1박을 예상했기 때문에 남은 속옷도 없는데. 혹시 수영을 하게 될지 몰라 가져왔던 수영복에 가장 큰 생리대를 차고 불안해하며 잠들었다. 배는 밤새 계속 아팠다. 가져온 약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리가 또 새었나 불안한 마음에 화장실부터 달려갔다. 볼일을 보고 밑을 닦는데 갑자기 뭔가 쑤욱 알을 낳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화장실 휴지에 딸려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이것이 생리가 아님을, 무언가 더 큰 문제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것만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자기야... 나... 이거 좀 이상해. 이건 생리가 아니야. 아무래도 나 유산한 거 같아."
"뭐라고? 유산?"
남편은 스프링처럼 튀어올라와 내가 낳은 이상한 형체를 같이 살펴보았다. 일반 여성들이라면 다들 한 번쯤 경험해봤겠지만 생리양이 많은 날은 생리를 '굴처럼 낳는다'라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 내가 낳은 것은 그 정도의 크기가 아니었다. 손바닥 반만 한, 이상할 정도로 우둘투둘하고 모양이 잡혀있는, 이상한 형체의 그것이 내게 "이것은 아기였었던것"이라고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