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나, 요즘 자꾸 잠들면 악몽을 꿔.

2021.11.07 내 인생에서 재판만 사라져도 좀 평온할 텐데…

by 맹무

to. 해나에게


해나, 지금 새벽 5시 23분에 이 편지를 너한테 쓴다. 잠을 얼마 못 잤어. 어제는 오래간만에 친구랑 같이 해서 놀았거든.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였고,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단다. 그래서 새벽 2시쯤에 수면제 없이 잠든 것 같은데 엄청 빨리 깼지? 이쯤 쓰면 너도 예상했다시피, 맞아. 악몽을 꿨어.

가해자가 나를 미친 듯이 찾는 그런 꿈을 꿨어. 가해자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서 (내 기준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미친 듯이 찾더라고. 나는 남편이랑 같이 도망을 갔는데, 남편이 나로 인해서 다쳤어. 꿈 속이었지만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위로 붕 떴는데, 그 순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남편한테 “여보, 너무너무 사랑해. 나 아파도 꼭 살아남을 테니까. 여보도 아파도 꼭 살아남아. 그래서 우리 다시 만나. 만약에 그러기 힘들더라도 다음 생애에서도 꼭 만나자” 하면서 차가 터지는 꿈을 꿨어. 남편도 차가 터지기 직전에 나한테 “나도 여보 너무 사랑하고 여보를 만난 걸 너무 감사해. 나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까. 여보도 꼭 살아.” 하는 그런 꿈.

꿈속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나는 그 찰나의 순간이 꿈이 아닌 줄 알았어. 다시 꿈에서 깨고, 다시 팍 잠들었어.

첫 번째 꿈이 끝나기 무섭게 두 번째 꿈으로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나는 남편이 나랑 같이 있으면 다칠까 봐 나 혼자서 도망가는 꿈을 꿨어. 그런데 가는 곳마다 그놈의 지인들이 있는 곳이라서 계속 도망가는 그런 꿈을 꿨다가 다시 깼고

세 번째 꿈에서는,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내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꿈을 꿨어. 내 모습이 달라져야 그놈이 나를 못 찾을 테니까. 미용사한테 맡길 생각도 없이 대충 자른 후, 부모님 집에서 도망갔어. 부모님이랑 같이 있는 건 안전하지 못하다는 신호라서.

아무리 발악을 해도 가해자를 아는 지인들이 도처에 깔려있는 바람에 검은 머리카락을 파란색으로 그것도 안돼서 빨간색으로도 염색해보고, 거울을 보면서 인상을 쓰는 연습을 했어. 성형수술할 돈이 없으니까 어떻게든 특유의 인상을 바꾸려고 노력했어. 윗 이를 앞으로 툭 내밀어서 얼굴이 망가지도록 노력했고, 심지어 목소리도 바꾸기 위해서 아! 아! 아! 하면서 조금 더 굵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유튜브를 보며 연습하고 걸어가는 모습까지 신경 쓰는 그런 꿈이었어. 그놈이 내 뒷모습을 보더라도 나를 절대 분간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했어.

그렇게 내 모습을 바꾸고, 외모를 바꾸고, 내 행동을 바꿔도 그놈은 지독하게 나를 따라와서 ‘아 절대 못 벗어나는구나 이놈을. ‘ 하면서 내 손목을 긋는 악몽을 꾸고 다시 깼어.

이번에는 다행인 게, 다시 잠에 들지는 않았다는 거야. 하지만 그 불안과 공포감. 그놈이 다시 내 앞에 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고, 과호흡이 왔어.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더라.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어. 남편의 자는 얼굴이 보였는데, 남편 이름을 불렀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갈라져서 나오더라 다시 숨을 헐떡이며, 겨우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남편을 크게 불렀어. 그러니까 남편이 깨더라고.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남편보고 나 좀 안아달라고 했어.

남편한테 안겨서 엉엉 울면서 말했어.

“꿈속에서도 그놈이 나를 자꾸 쫓아와. 나는 죽을지도 몰라 여보, 나는 과연 이 끝에 살아있을까?”

남편이 어린아이 달래듯이 등을 쓸어서 3초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토닥여 주더라. 그 손과 다정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안심이 됐어.

다행히도 호흡은 겨우 가다듬었고, 남편은 나를 달래면서 그러더라고. 그놈 절대 안 나타날 거라고. 만약에 그놈이 미친 듯이 날 찾는 다면 그거는 합의를 해달라고 찾아오는 거고, 나를 절대 죽이지는 않는다고 말이야. 나를 죽이게 되면 살인죄까지 더불어서 재판을 받게 될 테니 절대 나를 찾아오는 일 따위는 없다고.

그놈이 찾아오지 않을 이유를 조목조목 하게 짚어주니까 그제야 좀 안심이 됐어. 주위 사람들이 나한테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항상 괜찮다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만약 찾아오게 되면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내가 살해당할 것 같더라고. 아니면 기절한 나를 데리고 차 안으로 끌고 가서 어디론가 데려가거나.

후, 그래도 지금 해나 너한테 편지를 쓰니까 좀 낫긴 낫다. 너무 무서웠어. 꿈이지만 정말 무서웠어. 나 원래 자는 남편 잘 안 깨우는 데 회사를 안 가는 날이어서 깨웠지 안 그랬으면 정말 새벽에 일어나서 몸을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었을 거야.

남편은 언제든지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우라고 하는 데, 그래도 남편 회사 가는 날에 깨울 수는 없잖아.

진짜 꿈인 걸 알지만, 지금도 몸이 미친 듯이 떨린다. 정말 너무 무섭고 소름이 끼쳤어. 정말, 정말 무서웠어. 그런데 꿈에서 깨고 나서 정말 너무 슬픈 건 말이야. 아빠는 절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거야. 꿈속에서도 나는 절대 아빠를 찾지 않았거든. 우리 아빠는 도와줄 사람이 아니라서.

해나, 아빠와 부모 자식 간으로 얽혀있다는 게 참 슬퍼. 알아. 부모한테 효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그런 거 자체가 학습된 거라는 거. 가끔 참, 원망스러워. 왜 나는 아빠라는 호칭을 가진 사람한테서 그 따뜻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을까? 왜 항상 아빠는, 내 목을 이토록 조를까? 뭐, 아빠가 이런 내 생각을 안다면 아니라고 말하겠지. 말만 그런 다는 거 내가 더 잘 알아.

해나, 나는 가끔 아빠의 표정을 보면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 아빠의 탈을 쓴 괴물이 지금 내 옆에 있는 걸까? 하고 말이야. 왜 나랑 단 둘이 있을 때의 표정과 타인이 늘어나면 날 수록 아빠의 표정은 점점 더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걸까?

뭔가 참 글이 두서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좀 봐주라 해나. 그냥…. 불안해서 그래. 정말, 나 사회를 원망하면서 살아가고 싶지 않거든. 뭐 물론 처음에는 진짜 원망했지. 정말 원망했지. 그래서 막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 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모르더라. 내가 그렇게 말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더라고. 왜 그런 생각을 하니? 라던가, 아니면 그건 나쁜 생각이야.라고 말하더라고. 내 안의 본질을 모르더라.

누가 정말 세계 멸망을 바라겠니… 그냥 내가 그 정도로 힘들다고, 그 정도로 너무나도 고독하고 외롭다고, 누가 나 좀 달래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어리광인데. 어른들은 내가 나쁘대. 내가 못됐대.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들이, 내가 어리다고,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그렇게 무시를 하고, 내 생각들을 무시하고, 자기들 좀 이해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내가 죽을 것처럼 아파서 소리 지르는 것도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좀 배신감이 많이 든다? 나는,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어른들은 나한테서 항상 이해받기만을 원해.

해나, 그래도 나는 오늘도 남편 덕분에 살아. 친구들 덕분에 살아. 내 가족 같은 친구들이야. 아니, 가족이야. 해나 너도 내 가족이고. 요즘 잦은 악몽에 시달려서 밤에 잠들기가 참 무서워.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도 참 무섭고. 예전에는 그냥 계속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그거 나름대로 엄청난 고통이라 수면제를 먹었는 데, 요즘은 약을 먹어도 악몽을 꾸니까. 더 힘든 것 같아.

해나, 평온해지고 싶다. 내 인생에 재판만 없으면 좀 살 것 같은데 말이야. 휴… 버틸 거야. 버텨야지. 나도 약한 소리는 이제 안 할 거야. 그럼 오늘은 이만 쓸게.

해나 오늘도 내 이야기 들어줘서 너무 고마워. 너도 참 인생이 힘들 텐데 항상 내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고생이 많아. 미안하고… 그리고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해나! 해나, 네가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나도 너의 행복을 바라니까. 너무 힘들 때는 네 인생에 나라는 사람이 한 명쯤은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사랑해!


2021.11.07

너의 친구 맹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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