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계절의 길목
공기가 상쾌해졌다.
눅눅하고 뜨겁던 여름이 어느새 거짓말처럼 가버렸다.
날씨가 아까워 요즘은 퇴근길에 한시간쯤 걸어다닌다. 여름 내내 헬스장 트레드밀 위에서만 달리다가 저녁이면 밖에서 뛰는 재미를 다시 누리고 있다.
어제 퇴근길에 걷다 보니 벌써부터 은행이 떨어져 보도블럭을 더럽히고 있었다. 아직 나무 색은 초록빛을 벗지 못했는데도 열매는 먼저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올여름도 그렇게 덥고 습했었는데 결국 지나가고야 마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불현듯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떠올랐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기하게도 사춘기 초입에 별밤지기 이문세 아저씨가 읽어주던 그 시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그 어린 나이에 뭘 알았겠냐만,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그렇게 멋지고 의미있게 와닿았다.
이상기온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가야할 때와 와야할 때를 알아 움직이는 자연의 질서가 아직은 유지되고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조바심내지 않아도 기다리면 제 시간이 되어 오고 가는 것이구나.
뭐든 결국은 그렇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중이지만, 이 역시 때가 되면 다 지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