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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 그릇 Jan 05. 2022

리무진의 미학

럭셔리한 외모의 역설

리무진은 화려하다, 멋지다, 크다와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혹은 부럽다, 타보고 싶다와 같은 감정적 욕구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한 이미지들 속에서 리무진을 보며 문득 떠오른 나의 단상은 이렇다.






비정상적인 자동차


리무진의 형태는 비정상적이다. 과도한 길이와 웅장한 외모는 단연코 눈에 띈다. 사람들 눈에 익숙하지 않은 고고한 자태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모두의 시선을 거두어 간다. 하얀 셔츠에 묻은 검은 얼룩같이 주변에 섞이지 못하고, 잡아 늘인 듯한 몸체의 낯선 비율은 깨진 거울처럼 시선을 왜곡시킨다.




리무진의 역설


리무진은 평소에 보기 드문 차종이다. 하지만 장례식장이나 화장터에서는 길게 늘어선 행렬을 쉽게 볼 수 있다. 살아서 타보지 못했던 것을 호흡을 내려놓고 나서야 한 번 타보는 것이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광경은 고급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쓸쓸함이 묻어있다. 무기력해 보이는 럭셔리한 외모의 역설이다.



이 순간 리무진 내부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된다. 영혼을 떠나보내고 남아있는 빈 육체를 실은 목관만이 리무진의 내부를 채운다. 낭비가 죄악시되는 요즘 비효율성이 인정되는 흔치 않은 경우다. 이곳에서 보는 리무진은 강을 건너기 전 타는 배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더 이상 길이 없는 육지의 끝에서 마지막 남은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타야만 하는 배 말이다.


사람들은 영화나 TV에서 보던 리무진과 달리 장례식장에서 마주치는 리무진은 부러워하지 않는다. 리무진 안에 쓸쓸히 누워있는 탑승자와 그 가족들을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남은 자들은 탄식 속에서
가는 자들은 안식 속에서
서로를 배웅한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시간은 찰나와도 같다. 길었던 생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다 옮기기엔 너무나 짧은 탑승 시간이다. 그 안타까움이 공기를 무겁게 만들고 지금껏 숨 가쁘게 달려왔던 길의 끝에서 모두가 숙연해진다. 유족과 지인들이 탄 버스는 묵묵히 뒤를 따른다. 리무진의 비효율성과 대비되는 버스의 효율성은 자연스럽게 도로 위로 스며들어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버스는 더 큰 몸체를 가지고 있지만 눈길을 끌지 않는다. 거대한 두 차종은 익숙함과 접근성이 다르다.




그런데 만약, 가능하다면


리무진 안에 누워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부러워할까? 끊어진 호흡을 이어 붙여 그들의 품을 향해 뛰쳐나가고 싶을까? 혹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 살아냈다는 성취감에 기뻐하고 있지는 않을까? 도무지 알아낼 길 없는 허망한 의문이 뇌리를 스친다.


몸체의 무게감과 어두운 색은 그곳의 엄숙함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자리를 잘못 찾은 듯한 리무진과 장소의 어긋남이 그곳의 모습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듯하다. 리무진의 긴 축거는 닿을 것 같지 않고, 닿고 싶지 않았던 용광로로 이어지는 통로처럼 보인다.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하늘이 까맣게 타는 듯하다.




리무진의 미학


뭐니 뭐니 해도 과도한 공간과 여유가 리무진의 상징이다. 만수르 같은 부자 한둘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 냉장고에서 꺼낸 잘 숙성된 와인을 음미하며 보내는 여유로운 풍경이야말로 리무진의 미학이다. 중요한 것은 인원이다. 필요 이상으로 넓은 공간을 소수의 인원이 사용하는 리무진은 자본주의의 황홀경으로 남은 공간을 채운다. 이때의 내부는 세상과의 연결이 차단된 이공간이 되고 두꺼운 외피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리무진의 비효율성은 장례식장의 그것과는 다른데 한쪽이 마지막을 위한 배려라면 한쪽은 마지막은 없다는 듯한 환호다. 각자의 빈 공간은 사뭇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한쪽은 눈물과 그리움이 깔린 아스팔트 위를 지나고 다른 한쪽은 웃음과 부러움으로 포장된 붉은 카펫 위를 달린다. 이러한 차이는 너무나도 명확해 달리 확인이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리무진을 채우는 목관과 화려함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결국 같은 곳을 향해 달린다는 사실. 아스팔트든 붉은 카펫이든 누구에게나 예외란 없이 한 곳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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