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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 그릇 Jan 11. 2022

바바파파

나의 과거와 아이의 현재가 만나다.


tv 만화는 그냥 움직이는 그림일 뿐이지만 어린시절 보던 tv속 그림들은 나에겐 현실보다 더 실제에 가깝고 의미가 큰 세상이었다. 주말 아침만 되면 방송 시간에 맞춰 tv 앞에 앉아 숨죽이며 지켜보던 만화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뛰어 놀때 말고는 집중이 힘든 그 시절 만화는 마음을 띄게 만드는 놀이와 같았다. 다양한 만화 캐릭터들이 나의 성장기를 함께 했고, 서로 다른 만화속 세상의 무수한 그림들은 내 마음의 도화지에 빼곡하게 담겨 그 시절의 나를 그리는 상징처럼 남아있다.


다람쥐 구조대, 모래요정 바람돌이, 메칸더 V, 우주 보안관 장고, 꼬마 자동차 붕붕 등 모두가 tv를 통해 만나서 시간을 나누었던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바바파파 가족들도 당시 재미있게 봤던 만화속 캐릭터이다. 바바파파와 바바마마 그리고 7명의 아이들이 한 가족이며, 모두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하다. 바다에선 배가 되기도 하고, 필요할 땐 비행기가 되거나 동물과 물건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뚝뚝바바 뚝딱 바바요술



만화에서는 이 주문을 외우면서 변신을 하지만 책에서는 주문을 말하지 않는다. 작년에 책 대여점에서 우연이 바바파파 시리즈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재빨리 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알던 그 이야기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너무나 가운 마음에 잠시 책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이 책을 보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기대와 불안을 안은 채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면서 어떤지 물어보았다.


그 순간 나는 결제 서류를 검토하는 상사 앞에 초조하게 서서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애달픈 부하직원이 되어 있었다. 직장인의 고달픔을 그린 만화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OK 싸인이 떨어진 순간 소리없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바바파파 시리즈


무사히 책을 집까지 싣고는 왔지만 아직 방심 할수는 없다. 본인이 직접 골라서 빌려왔던 책들도 몇 권만 억지로 보고 나몰라라 한 전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 읽을 시간에 나는 다시 한 번 아까의 만화속 주인공으로 돌아간다. 이번엔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아이는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책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까는 괜찮아 보이더니 이제보니 영 아니라는 변덕쟁이 상사의 모습일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수고와 격려를 보내는 인자한 상사의 모습일지 기대와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결국......빵 터졌다. 너무 재미있을 때만 나오는 리얼 웃음을 보이며 신이 난 아이의 모습은 나에겐 더 없은 기쁨이다. 그때서야 나는 만화속 세상에서 나와 아들을 사랑하는 현실속 아빠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기획안은 완벽히 성공했다.


아이가 너무 재밌있게 봤던지 이번에 3번째로 대여를 해서 보고 있다. 사실 2번째 빌려왔을 때는 조금 보다가 말아서 이제 이 책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다시 이 책을 빌리자고 한 것이 의외였다. 어쨌든 잘보고 있어서 다행이다.


과거의 어린 내가 보던 만화의 이야기를 지금 나의 아이에게 책으로 읽어주는 일은 퍽이나 재미있고 또 감격스러운 일이다. 아이가 좋아해서 먼저 찾기까기 한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이다.



이 책은 나의 과거와 아이의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잊어버리고 있던 작고 오래된 추억이 아이의 현재에서 다시 펼쳐졌다. 그 시절 나를 만들었던 하나의 재료가 지금 아이의 삶에 스며든 것 같다. 아직은 어려서 남아있지 않을 기억이겠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추억으로 깊이 새겨져 훗날의 어느 순간 다시 보물처럼 꺼내보게 될 것이다.


아이는 나의 일부분이면서 나와는 다른 존재다. 나에게로 와서 다시 아이에게로 흘러가는 유전자가 우리 사이를 이어주지만 짧은 동행을 마치고 나면 서로의 길을 가야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아이가 우연히 마주친 이 책을 통해 공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공명은 한 권의 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와 아이의 사이 아니 모든 부자사이는 무수한 관계의 끈으로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다. 그 본질이 생물학인지 내면의 깊은 잠재의식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두 존재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주는 순간의 경험은 아주 길게 남는 여운처럼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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