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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 그릇 Jan 19. 2022

답이 없다고? 그게 답이다.

답이 없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다.

누구나 일생동안 여러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다. 간단한 문제이든 쉽게 결정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이든 답을 구해야 하는 상황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부터 청소년과 장년을 지나 노년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시기에 맞는 문제는 삶의 일부다.


그렇다면 그 문제들에 답이 없다면 어떨까? 모든 문제에 답은 있을까? 흔히들 '정답은 없어', '그 문제는 답이 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으니 나도 몰라?


한 가지 시험문제를 생각해보자.


문제. 다음 조건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조건 1. 0000
  조건 2. 1111
  조건 3. 2222


세 가지 조건을 주고 그중 옳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다. 보기는 4개다. 1번은 첫 번째 조건이 맞다. 2번은 두 번째 조건이 맞다. 3번은 세 번째 조건이 맞다. 4번은 '정답 없음'. 출제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문제다. 그리고 실제 4번이 정답이라면.



답 = 답 없음



이 문제에서는 4번 '정답 없음' 그러니까 '정답 없음' 자체가 답이 되는 것이다. 답 없음이 답이 되는 아이러니는 희망이면서 고통이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만능키이면서 더 이상 쓰지 못할 부러진 키이기도 하다.


다시 문제로 돌아가서 여러 조건 중 '정답 없음'을 답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풀이가 가능한 문제다. 문제에 드러난 표면적인 지식의 크기보다 더 방대하고 세밀한 지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평범한 문제였다면 셋 중 한 가지 조건만 알고 있어도 맞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정답 없음'이라는 변수가 발생하는 순간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이제 이 상황을 일상으로 가져와 보자. 지금 당면한 선택의 순간들이 있다. 어느 쪽으로든 답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확실한 결정이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필이라도 굴려서 확률 싸움을 할 수도 있고, 믿지 않던 신에게 손을 내밀어 일시적 유신론자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결정의 바탕에 무엇이 있느냐다.


모르겠으니까, 복잡하니까 답이 없다고 하는 건 너무나 편한 방식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무책임과 귀찮음이 뒤섞인 잘못된 문제풀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접근 방식으로는 유사한 문제들을 마주했을 때 풀어낼 길이 없다. 그때 앞서 문제처럼 '정답 없음'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깊은 고민과 통찰이 필요하다. 현재 주어진 선택지는 물론 보이지 않는 요소들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고민은 실제 존재하는 정답-보기 1, 2, 3 중 하나 같은-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없다고 생각했던 해결책이 최소한 결과적으로는 존재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와 쌍을 이루는 답은 있다. 단지 모르고 있을 뿐. 모르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다. 모른다고 해서 답이 없지 않고 답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답을 아는 것도 아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외국 어딘가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부나 경험의 부족이거나 인간이 가진 본질적 한계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정답 없음'을 답으로 결정할 수 있다. 고심 끝에 내린 판단의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는지가 드러나게 된다. 답이 없다는 결론을 얻으려면 실제 답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막연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정답 없음'은 정답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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