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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 Dec 20. 2022

제자의 편지

휴직 전 가르쳤던 제자가 방과 후에 교실로 찾아왔다. 겨우 1년 남짓 지났는데 키도 부쩍 컸고 제법 고학년 티가 난다.

"선생님!"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환한 미소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유진아! 어떻게 알고 왔어?"

"새 학기에 방송조회로 학년 선생님들 소개할 때 선생님 이름 보고 너무 좋아서 소리 지를 뻔했어요. 전부터 찾아오고 싶었는데 학기 초라 바쁘실 것 같아서 지금 와봐요."

생각 깊은 아이.

말하는 것도 어쩜 이리 이쁜지.


"5학년 되니 어때?"

"재미있어요. 이제 매일 학교 나오니까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유진이 너무 이뻐지고 키도 쑥 커서 복도에서 만났어도 그냥 지나갈 뻔했어."

"선생님이 더 이쁘세요. 하나도 안 변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봐주니 선생님 너무 기분 좋은데. 우리 유진이 맛있는 간식 좀 챙겨줘야겠다."

서랍에 있는 간식들을 한 아름 꺼내 두 손에 올려주니 또다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이를 보내고 편지를 꺼내 읽어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제자 유진이예요.

오랜만에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것 같아요!

저는 1년 동안 올해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3학년 마지막 날에 저희가 5학년이 되는 날에 돌아오신다 하신 게 아직도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요!

5학년 첫날에 선생님 소개 때 선생님 이름이 나왔을 때 너무너무 기뻤어요. 왜냐하면 제가 선생님이라는 꿈을 향해 가는 게 너무 힘들 때마다 선생님이 제가 꼭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을 생각하면 항상 용기가 났거든요.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논어 책도 아직도 잘 가지고 있어요.

선생님과 헤어지고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지만 선생님은 아직도 제 롤 모델이세요!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저는 선생님처럼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이 편지를 받으시고 기쁘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ㅡ 유진 올림


나를 롤 모델이라고 말해주는 아이의 글을 읽고

그렇게 바라봐 주는 아이의 마음에 대한 고마움과 더불어 부담도 살짝 느껴진다.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유진이가 내 뒷모습을 따라 걸어오며 흔들리지 않도록. 유진이가 나중에 나보다 더 멋진 선생님이 되어 만나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롤 모델이 되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처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해 준 6학년 때 담임 김종기 선생님이 생각난다.

선생님과의 수업은 늘 새롭고 재미있었다.

수업 내용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사회 시간 놀이를 접목한 새로운 수업에 신나게 참여하던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더 신난 표정의 선생님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문집을 만들기 위해 친구들과 방과 후 남아서 삽화집을 보며 아이들이 쓴 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맛있는 빵과 음료를 사주시며 "미야는 맡은 일을 참 성실하게 잘하는구나!"라며 칭찬해 주시는 게 좋아 매일매일 문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꼬마 미야는 '나도 나중에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줘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 서있다.


용기가 나는 말.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말.

그런 말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자리가 교사의 자리다.


잊지 말자.

꼭 기억하자.


내가 선 자리.

내가 해야 할 말.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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