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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매슬로의 자아실현의 욕구 vs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내게 생계수단이란 단어를  매슬로의 욕구단계설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하위 욕구' 즉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론적 행위를 매일매일 불평 없이 감사하는 맘으로 하다 보면 '상위욕구'인 사랑, 존중,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이타적이며 자아실현의 행위로까지 이끌어줄 가능성이란 문을 열어 주는 나만에 생활방식과 고집이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바라 립슨이 운영하는 4 paws란 고양이 레스큐에서 어제 근처 공원에서 포획한 길고양이가 새끼를 가진 것 같다고 아침에 연락이 왔다. 유난히 빛나는 금발머리에 경쾌한 목소리를 가진 9년 차 발룬티어 쉐런이 나한테 걱정스러운 얼굴로 썩소를 날리면서 "Good Luck " 하면서 고양이 케리어를 건네주는데,  묵직하다 한 17 파운드는 되는 것 같다. (보통 고양이들은 10파운드 정도 된다. - 4.2 kg 정도 ). 나를 걱정하는 건지 엄마 고양이를 걱정하는 건지 0.5초 정도 약간 헷갈렸다?  그때 바로 엄마 고양이가 들어 있는 케리어 안에서 표범 새끼가 낼만한 표효하는 소리가 들린다. "크하하하 앙앙 " , " 탁탁탁, 찌이익 " 손톱이 쇠창살 밖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케리어 안 고양이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어떤 녀석인지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  내가 케리어 앞으로 얼굴은 내미는 순간 이 엄마 고양이의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눈과 겁먹은 나의 눈이 동시에 부딪쳤다.   정말 짧은 순간이지만 영겹에 시간을 지나 전에 두세 번은 만난 적이었던 두 영혼이 다시 만나 것 같은 이 익숙함은 뭘까?   ' 너 혹시 나와 연인 사이였거나?   아님 내 돈 띠어먹고 도망간 그놈이니? '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다. 

"크아앙, 탁탁탁 " 

 "악 " 정신이 번쩍 든다. 손등으로 뭐가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쇠창살 사이로 발톱이 나와 내 손등을 할퀴었다. 피가 철철 난다. 얼른 가서 알코올을 뿌려 손을 소독하고 흐르는 물에 손을 씻는다. 

Cat scratch fever는 고양이 발톱에 있는 Bartonella henselae 란 박테리아에  전염되는 화농성 발열 질환이다. 대부분 야생 고양이들한테 긁히면 많이 걸린다. 5년 전에도 야생 고양이한테 할퀴었다가   cat scratch fever로 병원에 거의 입원할 정도로 왼쪽 어깨부터 손가락까지 모든 임파선이 부었고 열도 많이 난적이 있다. 


전반전에선 내가 졌으니. 다음은 내 차례다.  기싸움에 밀리면 훨씬 어려워진다.  방안에 불을 끄고 두꺼운 타월로 케리어를 덮었다. 한 십 분 정도 있으면 진정이 되고 혼자 지쳐  덜 예민해진다. 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밥이나 간식을 줘서 달랠 수도 없다. (사람처럼 고양이들도 마취 전 최소 12시간 공복 상태를 유지해야만 토하지도 않고 피검사도 훨씬 정확도가 높아진다. 야생 길고양이들은 한번 마취했을 때 피검사, 발톱 자르기 , 항문낭 검사, 채혈하기 , 필요하다면 치석제거, 예방접종 등등 모든 검사와 의료 처치가 한 시간 안에 다 일어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 두꺼운 타월 두 개를 케리어 문을 반쯤 빼꼼히 오픈한 뒤 엄마 고양이 앞으로 밀어 넣었다. 당연히 악을 쓰면서 앞발로 할퀴며, 큰소리로 발버둥 치며 뒤로 물러났다. 케리어 뒤쪽으로 오른쪽 허벅지 부분이 노출되었다. 마취약을 오른쪽 둔부에 사정없이 근육주사로 놓았다. 만일 이게 실패하면 가스 마취를 해야 하는데 태반으로 마취약이 넘어가기 때문에 자궁 안에 있는 새끼 고양이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때문에 무리수를 둬서라도 신속히 마취시켜 진단과 치료를 마무리하는 게 나한테나 엄마 고양이 한 테나 유리한 상황이다. 5분도 안 돼서 잠이 들었다.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x-ray를 찍어서 진짜 임신했는지? 몇 마리에 새끼 고양이가 있는지? 확인하다가 발견한 사실은 첫 번째 새끼 고양이 머리가 너무 커서 엄마 고양이 골반에 걸려서 분만이 계속  늦어져 난산으로 이어졌던 사실을 확인하였다. 초음파 기계로 태아 들 심장박동을 모니터 해보니 4마리 다 심장박동이 정상이다. 모두 무사하단 증거다. 엄마 고양이를 빨리 수술실로 옮겨 기관삽입을 하고 산호 호흡기와 수면 마취기를 가동했다. 산소 포화도 정상, 혈압, 맥박, 호흡수 모두 다 정상이다. 원래는 세정제와 알코올을 번가라 가면서 세 번에 거쳐 멸균 소독을 하는데 시간을 다투는 관계로 알코올로 대충 뿌리고 복강 절제를 시작했다. 사람은 제왕절개를 하지만 고양이는 난소와 자궁을 모두 없애는 난소자궁적출술을 실시한다. 이유인즉 수술시간이 훨씬 짧기 때문에 모든 새끼 고양이들을 무사히 빼낼 수 있고 난산이 온 고양이는 또다시 난산이 오기 때문에 다시 임신이 안 되게 자궁적출술을 실시하는 것이 스탠더드 한 수술법이다.  새끼 고양이들도 다 건강하고 수술도 잘 끝났다. 

수술 장갑을 벗으니 오른손이 두 배나 부어 있다. 5년 전 cat scratch fever를 경험했던 내 면역체계는 비슷한 간염원이 들어오니 신속히 , 사실 거의 알레르기 반응처럼 손목 밑까지를 단단히 붙게 만드나 보나. 겨드랑이 림파선까지 간염이 펴지지 않게. 

'눈물이 날 것 같이 쓰리고 아프다. 힝 ' 

 

바라라 립슨이 새끼 고양이들과 엄마 고양이를 본다고 친히 우리 병원에 방문했다. 평소엔 잘 웃지도 않던 바라라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깃들며 나한테 good job이라고 두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몇 분 뒤 세넌이 들어오면서 나를 양팔로 껴안는다. 나보고 너무 고맙다고 눈물을 흘린다. 제니퍼, 호모 플로란스, 팜 로페즈 레스큐 핵심 멤버들이 새끼 고양이들을 보려고 다들 일도 안 끝내고 달려왔다. 미국에서 고양이나 강이지 레스큐는 비영리 단체이기 때문에 경제적, 시간적 여유를 가진 쟁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조직 안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정치와 파벌이 존재한다. 물론 나는 가장 힘 있고 결정권 있는 바룬 티어한테 예약 우선권을 준다. 사실 오늘 스케줄이 너무 많아 바쁜데도 불구하고 협회 회장인 바바라 립슨이 단호하게 부탁을 하는 바람에 무리하게 엄마 고양이를 받아서  스케줄이 정말 꼬였다.  저녁 늦게는 어디 지역 당선의원인가 (사실 나는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레스큐가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잘 보여야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고 동물을 아끼는 정치가처럼 포장하면 표 얻기가 훨씬 수월하고 나름 인기가 많다.)  아님 그 직속 비서까지 올 예정이다. 미치겠다 나는 예약이 밀려서 속이 타는데 다들 감탄을 연발하며 새끼 고양이들 보느라 모두 넉을 놓고 미친것 같다.  나는 이번 달 말에 오늘 내가 한 모든 서비스와 수술, 약값까지 모두 청구할 생각과 밀린 예약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현실적인 삶에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데 이들은 새로운 생명 탄생에 넋을 논거 같다. 

돈걱정 시간 걱정 안 하는 이들이 참 부럽단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인정받고 돈도 벌고 나름 참 괜찮은 날이다. 매슬로의 5 가지 욕구들을 다 충족시킨 날인 것 같다. 근데 오른손등이 아직도 뜨겁고 시큰거리다.  붕대 위로 피자죽이 선명하게 한 줄로 새어 나왔다. 상처가 깊었나 보다.  일부러 붕대감은 오른손을 흔들며 웃어 보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너 손 괜찮냐? 혹시 엄마 고양이한테 물렸니? 병원 안 가봐도 되니? ' 내 맘 한구석엔  하나의 생명체인 나한테도  누가 괜찮은지 걱정해 주면 좋겠다란 인정에 욕구, 도구가 아닌 인격체로 인정되었으면 좋겠다란 욕심이 스믈스물 올라온다.  


토마스모어 가 쓴 소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없다"를 뜻하는 '우 (οὐ-)'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 (τόπος)'가 합쳐진 단어로 존재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장소를 뜻한다.  소설 이 쓰였던 1515년 엔  '사유재산이 없는 이상적인 공산사회'로 시작했으나, 근대 자본주의가 평창 하는 시대에  와서는 아예 '이상향'을 의미하는 '지상낙원' 같은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리스에 높은 정신문화와 철학을 바쳐주었던 건 해상무역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과 그 밑바닥을 바치던 노예들에 값싼 노동력이 기반이 된 사회였고, 강력하고 조직화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제퍠한 로마와 산업혁명의 최대 수혜자였던 대영제국 또한 신민지 노예들을 착취해 그들의 영광을 유지했고. 미국 또한 신분에 약점을 안고 있는 남미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이 밑바닥을 받쳐주고 있다.  나는 이런 미국이란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나 역시 아시안계 이민자이기에 이 유토피아에선 남미 이민자들이 겪는 암묵적인 불평등과 인종의 격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몰라~ 한번 해볼 테야, 너네가 어떻게 나오나 보자 '    붕대를 풀어서 손을 흔들면 사람들이 내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으니까 나한테 괜찮냐고 걱정해주지 않을까란 생각이 밀려왔다. 

이때 어릴 때 읽었던 책내용이 떠올랐다.   ' 어느 날 부처님께서 깊은 산속에서 오랜 기간 수행 중  너무 허기가 져서 마을에 공양을 하러 오신 날 마을사람들은  축제로 들떠있어 마을을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발우엔 한 톨 담겨 저 있지 않았다. 마귀가 부처님께 속삭였다. "마을 사람들이 축제에 정신이 팔려 너를 본 걸 수도 있잖아 다시 한번 돌아가봐. 바퀴 다시 돌면 '귀하신 부처님을 몰라 뵈었다고' 사과를 하며 따뜻한 한 덩이를 그릇에 넣어줄 거야 "   부처님께선 다시 마을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서운하신 마음도 배고픔도 마음에서 만드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

   오른손에서 붕대를 풀지 않았다. 손에 난 상처를 보고도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으면 더 상처받을 것 같아서 이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구걸하거나 목메고 싶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매슬로의 자아실현과 인정의 욕구 가 뭐라고 '

내가 사는 유토피아에선 비만이 문제지 배고픔이란 생리적 결핍도 없고 렌트가 잘 발달해 있어 어디든 안전하게 사는 곳을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씩 웃어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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