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버스 컴퍼니 1장 속하지 못하는>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컴퍼니의 세계는 도시와 외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외곽은 도시에 들어오지 못한 인간들과 괴물들이 사는 곳이고 도시는 괴물과 인간을 분리하여 인간이 살 수 있도록 한 곳입니다. 이 도시는 총 2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구역은 ‘날개’라 불리는 대기업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날개들이 지배하는 구역을 ‘둥지’라고 하죠. 날개들은 ‘특이점’이라는 대단한 기술로 둥지를 관리합니다. 도시에는 둥지말고도 ‘뒷골목’이 있습니다. 날개들의 힘이 닿지 못하는 무법지대입니다.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현 세계의 마피아 격인 ‘손가락’입니다. 이 정도면 가볍게 세계관 설명은 끝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보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이들은 회사의 직원(자산)으로 불리는 수감자 12명과 시계 머리를 한 관리자 단테, 길잡이 베르길리우스, 운전사 카론입니다. 기억을 잃은 단테 시점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메피스토펠레스라는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는 도중 수감자들은 싸우기 시작합니다. 싸움은 격해져 서로를 죽입니다. 죽으면 어떡할까요? 이들은 모두 림버스 컴퍼니의 소중한 자산인데? 시계 머리를 한 단테가 시계를 돌립니다. 이 과정 속에서 로댕의 지옥의 문처럼 생긴 문을 열고 자신의 손을 잡은 죄인들을 잡아 당깁니다. 단테의 끔찍한 고통이 지나간 후 수감자들은 전부 부활합니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나 말 그대로 단테가 죽지 않는 한 수감자들은 죽지 않습니다.
한차례 소동이 지나간 후 이번엔 바깥에서 소동이 벌어집니다. 버스를 공격하는 이들을 쓰러뜨려 차례차례 버스의 연료로 줍니다.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은 버스에게 우적우적 씹힙니다. 사람 자체가 연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뇌와 척수에서 뽑히는 ‘엔케팔린’이라는 에너지가 버스의 연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엔케팔린이 구 L사, 그러니까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의 특이점이었습니다. 여기서 무언가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사람을 희생해서 나오는 에너지가 특이점이라니. 사람의 목숨보다 사람의 목숨을 희생해서 만들어지는 특이점과 그 부산물이 더 중요한 것이 이 도시인 것이죠. 도시는 냉혹하고, 목적지향적이며 사람의 목숨은 일종의 자산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기서 확실히 드러납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다 만나는(버스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체 수술을 받았습니다. 기계 의체 같은 것이 아니라 생체 의체입니다. 생체 의체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벌레의 일부를 본따 만들어졌습니다. 수감자들 중에도 한 명 이 벌레 의체를 가지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바퀴벌레 같은 팔을 가진 그레고르라는 수감자. 문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추측 가능할 듯합니다. 림버스 컴퍼니 첫 번째 장 <속하지 못하는>은 카프카의 <변신>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런 벌레 의체를 가진 자들은 이전 둥지들과의 전쟁인 ‘연기 전쟁’에서 패한 구 G사의 직원들이었습니다. 그레고르는 적당한 직원정도가 아니라 포스터나 잡지에도 실릴 정도의 전쟁 영웅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순간을 영광의 순간으로 기억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씁쓸한 분위기가 날개가, 그리고 전쟁이 그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추측하게 합니다.
버스의 목적지는 D사의 4구역에 있는 구 L사의 지부입니다. 이 지부 안에는 구 L사 특이점의 정수인 황금가지가 있습니다. 황금가지가 어떤 일을 하는 지는 모르나 에너지 기술의 정수라니 참 대단한 것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지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두 처음이기에 새로운 조력자가 등장합니다. 구 L사의 직원이었던 해결사 유리와 같은 사무소의 해결사인 아야와 홉킨스까지. 카론과 베르길리우스는 버스에 남고 총 16명의 사람들은 구 L사의 지부로 들어갑니다.
이미 안에는 엔케팔린을 얻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엔케팔린을 얻기 위해 사람 시체를 뒤지고 있는 다른 구 G사의 직원들과 마주칩니다. 서로 갈길 가려던 그때 구 G사의 직원들은 그레고르를 보고 분노와 원망을 토해내며 덤벼듭니다. 날개가 망하고, 날개가 지켜주던 둥지가 사라졌으니 날개에 속했던 이들은 버림받고, 공격당했을 겁니다. 자신들을 전쟁으로 내보냈던,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날개에 대한 원망을 풀기 위해 전쟁 영웅으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던 그레고르를 공격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죠.
지부의 중심부로 가는 과정에서 해결사 아야가 환상체라는 괴물에게 죽습니다. 환상체는 구 L사에서 만든 괴물로 인간의 여러 공포와 무의식 사이에서 탄생헀습니다. 구 L사는 이 환상체를 각 지부에 가둬두고 괴물에게서 엔케팔린을 추출해냈습니다. 인간을 편하게 하기 위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환상체를 만들어내다니 참 역설적입니다.
환상체를 쓰러뜨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그레고르의 전 상사가 나타납니다. 상사는 예전 동료들을 죽인 그레고르를 원망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는 아직 전쟁의 한복판에 서있다.” 전쟁에서 도망쳤다는 그레고르는 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미 갈라진 길 그들은 마주친 이상 한 하늘 아래 서있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둘은 전쟁의 한복판에 서있고, 전쟁이 준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 분노와 원망을 서로에게 쏟아냅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게 한 전쟁이 끝난 후 살아갈 이유를 잃은 채 먹고 살기 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은 어쩐지 삶이라는 전쟁에 치여 꿈을 접어둔 채 하루하루를 무력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 상사는 패배 후 죽어가며 그레고르에게 마지막 충고를 건넵니다. 앞은 지옥이라고, 나아가지 말라고. 아마 따뜻한 곳에 등을 누이고 돌아갈 곳이 있는 그레고르라면 이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레고르는 이 회사를 벗어날 수 없기에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거기에는 사실 어떤 멋진 꿈도 빛나는 희망도 있지 않습니다. 짙은 혈향만이 가득할 뿐. 그래도 그는 나아갑니다. 일단 살아야 하기에.
더 나아가자 수감자들은 갑자기 몸의 온갖 구멍으로 피를 뿜기 시작합니다. 환상체를 잡으려던 독가스가 새어나온 것이죠. 그리고 해결사 홉킨스는 바로 방독면을 쓰고 혼자 엔케팔린을 챙겨 도망나갑니다. 정말 얍삽합니다. 인간애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장면이지만, 교활한 그가 이 망할 도시에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법은 저런 약삭빠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시계 머리인 단테는 독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수감자들이야 다시 되살리면 된다지만, 유리는 꼼짝없이 죽게 생겼습니다. 그레고르가 몰래 챙겨둔 방독면으로 유리는 살아남지만, 홉킨스에게 배신당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구 L사의 지부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울분을 토해냅니다. 회사가 폐쇄되는 상황에서 혼자 빠져나온 것이 그렇게 죄냐고. 비슷한 일을 당한 그레고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분명 그런 건 죄라고. 그럼에도 “계속 뻔뻔하게 살아남아야지. 일일이 죄책감 부여하다간 네 마음이 남아나지 않아.”
사람들은 태어납니다. 어떠한 목적과 운명을 가지고서 태어난다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뭐 그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과학과 이성의 지배한 현 시대에서 사람들은 그런 태초의 목적과 운명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탄생 후에는 사람의 존재만이 있을 뿐 사람의 탄생에 목적은 없다는 이야기죠. 이후의 삶은 사람의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질 뿐 운명따위는 없다고요. 즉, 이미 우리는 살아갈 때부터 이유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겁니다. 그레고르와 유리의 상황은 자신들의 선택이 초래한 상황입니다만, 거대한 세계의 움직임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 없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살다 보니, 어떻게든 살아남다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죠. 삶에 계속 남아있는 것은 나의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요.
이렇게만 보면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척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앞에선 처절한 ‘살아남는 것’을 행하기 위한 흔적이 남습니다. 환상체에게 살기 위해 인신 공양을 하는데 제비 뽑기를 했을 것이고, 제비 뽑기에 뽑힌 사람은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끝까지 악착같이 저항했을 겁니다. 그렇게 더 많은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고, 마지막으로 만난 거의 다 죽어가는 생존자는 그랬기에 환상체가 아닌 사람에게 다친 상처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유리의 친구였던 ‘알렉스’라는 생존자에게 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알고 있지?”
거대한 시스템에 갇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같은 말입니다.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의 그림으로도 그려졌던 1816년 메두사 호의 조난 사건은 이와 비슷합니다. 경력 하나 없는 선장은 말 그대로 프랑스 정부에 의해 낙하산으로 임명되었고, 항해 지침은 다 무시한 채 마구 항해하다 배는 난파되었습니다. 무능한 선장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은 구명정으로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했으나 100명이 넘는 남은 사람들은 간이로 만든 뗏목에서 구조될 때까지 13일 동안 표류해야했습니다. 그 13일 간 해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람도 있었고,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다 살해당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상자들은 바다에 버려졌고, 살기 위해 인육을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겨우 15명에 불과했죠.
알렉스의 예와 메두사 호에서 조난당했던 이들은 무척 비슷합니다. 높은 자들의 잘못으로 인해 아래 사람들이 크게 고통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버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생존 앞에서 마지막까지 양심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에 불과할 것입니다. 환상체에게 인신 공양을 하고, 부상자를 바다에 빠뜨렸던 행위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욕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 모두 그 상황이 되면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라는 말은 이때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닐까요?
그럼 이제 그들이 양심을 버리고 생존을 택했던 순간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공감을 해보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여야 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는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다른 곳에 속하더라도 그 사건의 그늘에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 택한 선택이 생존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죠.. 이러한 고통은 더욱 속하지 못하게 만들고, 사람을 과거에 가두게 만듭니다. 과거를 지나 현재에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과거의 잘못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평생을 죄책감을 지고 살게 만든 것이죠. 이는 생존을 위한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으나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강요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높은 자들은 정작 처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유리와 알렉스의 사연, 메두사 호의 조난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이 비극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수감자들과 유리, 단테는 더 중심부로 향합니다. 갑자기 어둡고 퀘퀘한 구 L사 지부는 전쟁이 일어나는 한 구역으로 변합니다. 갑자기 적들이 쳐들어오고 물리치는 상황을 일행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 상황은 그레고르의 기억, 정확히는 마음 속입니다. 기억은 점점 변화하며, 점점 비극적이고 격렬해집니다. 계속되는 싸움에 지쳐 해결책을 그레고르에게 수감자들이 물을 때쯤 그레고르는 과거를 떠올립니다.
그레고르의 앞에는 사과가 흔들립니다. 의체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음을 증명하는 마지막 관문, 사과를 베어내기만 하면 그레고르는 이곳을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만 해왔던 그레고르는 사과를 베지 않습니다. 사과를 베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기에 그레고르는 결국 체념하고 사과를 벱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과를 벰으로써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그는 여전히 악몽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사과는 카프카의 <변신>에서도 중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의 존재는 어느 하루 아침에 변해버립니다. 집안을 떠받드는 든든한 장남에서 애물단지 벌레로. 안은 똑같은 그레고르이었으나 그걸 누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집안을 지탱해왔던 그레고르가 받은 것은 아버지가 던진 사과였습니다. 그 사과는 몸에 박혀 큰 상처를 냈고, 그레고르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레고르는 정신까지 동물로 변해가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인간으로서 행위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행위는 이미 인간이라는 존재로 그레고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들에게는 불쾌하고, 끔찍한 행위로 받아들여졌을 뿐입니다. 다음날 그레고르는 쓸쓸하게 죽습니다. 그가 평생을 속해있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버려져야 마땅할 벌레로서 말이죠.
<변신>에서 사과는 그레고르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받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반려동물에서 반려곤충까지 다양한 동물들이 가족으로 인정받는 지금, 그를 배척하기 위해 던져졌던 사과는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가족에게 없음을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1장의 그레고르가 베어낸 사과는 실험이 끝나고 구 G사의 소속이 되기 위해 베어내야 할 일종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레고르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현하지 못하고, 강요된 선택에 의해 소속된 그곳에서 그는 계속 악몽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 악몽에서 자신의 소속이 되어준 구 G사가 사라지자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변신>의 사과가 그레고르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의 배척과 그레고르의 소외감을 나타냈다면, 1장의 사과는 베어내고 싶지 않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자유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경계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과는 하나는 자신의 몸에 박히고, 하나는 베어내짐으로써 두 그레고르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상실합니다.
<변신>의 그레고르가 어떠한 노력도 하지 못하고 죽어갔듯이 1장의 그레고르도 저항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그저 순종하기 바쁩니다. 회사에서 하라는 대로 했고, 흘러가는 대로 살았습니다. 당연히 회사가 사라지고 나서 그레고르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레고르는 살아가려 합니다. <변신>의 그레고르가 밥도 먹지 않으며 생존에 대한 의욕을 잃어갔던 것과는 달리 그레고르는 계속 살아가야한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회사에 들어갔고, 마지막 중심부까지 도달합니다.
이런 그레고르의 상황과 이전에 그레고르의 말들이 구 L사의 직원 유리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유리 또한 무거운 죄책감과 슬픔을 조금이나마 떨쳐내고 밝은 모습으로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유리는 마지막 전투에서 죽습니다. 정말 허무하게 죽은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덧없고 허무한 삶을 즉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녀를 삼킨 환상체는 죽기 직전 유리의 머리를 들고 나와 유리와 똑같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럼 난 도대체 어쩌라는 거예요? 살아남은 게 죄예요?” 이제 그녀도 아닌 환상체에게서 그녀를 보는 그레고르는 환상체를 베지도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살아가. 제발… 우리가 원해서 이 비극 속에 떨어진 게 아니잖아.” 모두가 그것이 유리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차마 베지 못합니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살기를 택한 그들이기에.
일행이 한참 망설이고 있는 사이 그레고르의 의체 이식 수술을 해준 구 G사의 이사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나타난 환상체를 베고 황금가지를 탈취해냅니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삶을 살고자 했던 일행과 달리 목적이 가장 중요했던 적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장면은 무척 가슴 아프게 합니다. 일행들은 우울이 뒤를 따라오는 채로 버스에 오릅니다. 관리자 단테는 그레고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지만, 건넬 수 없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을 보면서 그레고르가 느꼈을 감정은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그레고르는 버스에 앉아 계속 일을 하고 살아가기를 택합니다. 여전히 생존을 원하는 인간이기에.
<변신>과 림버스 컴퍼니 1장 모두 비극적인 이야기이나 림버스 컴퍼니 1장이 훨씬 희망적입니다. <변신>의 그레고르는 완전히 인간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어떤 해결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1장의 그레고르는 사과를 베어낸 후 강요된 선택에 떠밀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과(처럼 생긴 환상체)를 베어내야 할 순간이 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그 사과를 베어내지 못합니다. 앞에 있는 것이 유리였지만, 앞에 있는 사람이 유리였기에. 그리고 여전히 그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목적을 위해, 강요된 선택에 의해 그가 만약 사과를 베어냈다면 그는 완전히 망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달라졌기에 그는 망가지지 않고 인간으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선택이니까요. 그의 달라진 선택을 그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변신>과 림버스 컴퍼니 1장의 그레고르 모두 ‘속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변신>이 더 극단적이고 절망적입니다. 인간으로서 태어난 그가 인간이라는 존재와 본질 자체를 부정당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인간에게도 속하지 못하는 그의 상황은 파멸적 결말이 정해져 있습니다. 1장의 그레고르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지만, 상황은 훨씬 낫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있고, 같이 일하는 일행도 있으니까요. 그가 여기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지만요. 림버스 컴퍼니의 그레고르가 계속 속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비극으로 치달을지,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선택으로 어딘가에 속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