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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3.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고추가루

- 귀농 첫해에 겪은 서른 아홉번째 이야기

  내가 임대한 비닐하우스의 땅바닥에는, 잘 마른 청양고추가 검정 그물망 위에서 펼쳐져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건조기에서 3~4일정도 말린 고추들이었다. 나에게 건조기가 없어서, 주인 할머니가 자신의 기계를 이용해서 건조시켜준 것이다. 판매용이 아니고 집에서 먹을 고추가루를 만들기 위한 것들이어서, 청양고추 중에서 출하하기 어려운 B급 상품들을 말렸다. 너무 작은 것, 몸통이 구부러진 것 등등… 그래도 족히 15키로 정도 되는 양이었다. 

  신반장 부부와 같이 고추가루를 나누어 먹기로 해서, 고추 다듬는 작업도 같이 진행하였다. 2023년 10월말 어느 날 오후에 건조된 고추를 산채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로 옮겼다. 오후에는 따스한 햇볕이 비추는 곳이어서, 작업하기 좋은 장소였다. 고추를 정자 바닥에 쏟은 다음에,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면서 병든 고추를 골라냈다. 양이 많아서 그런지, 셋이서도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깨끗하게 닦은 청양 건고추를 들고, 둔내 방앗간으로 달려갔다. 고추가루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방앗간 사장님의 손길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우리 차례가 되어서, 건고추를 고추가루로 만드는 기계에 집어넣었다. 건고추가 고추가루로 변하는 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병든 고추나 쓰기 어려운 고추를 골라내서 그런지, 고추가루는 6키로정도만 만들어졌다. 신반장네와 절반씩 나누었다. 


  건고추를 고추가루로 만들 때 햇빛으로 말리는 것을 태양초라고 한다. 건조기에 말리는 것보다 색깔도 곱고 맛도 좋다. 태양초 고추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름이상 햇빛이 내리쬐는 날씨가 지속되어야 한다. 보통은 중간에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순수하게 햇빛으로만 고추를 말리기 어렵다. 그래서 건조기로 60~70% 말리고 난 후, 나머지는 햇볕에서 말려주는 경우가 많다. 판매하기 위해서 대량으로 만드는 경우는 건조기로 끝까지 건조시킨다. 태양초보다 건조과정에서 일손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햇볕이나 건조기에 말리기 전에, 수확한 고추중에서 병에 걸리거나 벌레먹은 것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식초 섞은 물에 여러 차례 고추를 씻어준다. 물기가 마른 후에 꼭지 따는 작업을 한다. 이때 고추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꼭지를 따주어야 한다. 건조과정중에 구멍속으로 파리나 벌레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건조기로 말릴 때는 3~5일정도 소요된다. 소량을 건조시킬 때는 고추를 절반으로 잘라주면, 건조가 빨라질 수 있다. 건조기 내에는 여러 단으로 고추를 펼쳐 놓을 수 있는 채반들이 있다. 건조과정에서 위 아래칸의 채반들에 놓인 고추의 건조 상태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채반을 바꿔주거나 고추를 섞어주는 작업을 수시로 진행해야 한다. 

  햇빛에만 말릴 때는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직사광선을 피하고 반 그늘 상태에서 건조시켜야 한다.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기 위해서 비닐과 짚, 검정망을 깔고 그 위에 고추를 널어주면 좋다. 역시 이 과정도 여러 날 소요되고, 하루에 한번씩은 고추를 뒤섞어서 골고루 건조되도록 해줘야 한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고추가루는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고추가루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고, 중국산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국내산이면서 친환경 고추를 가지고 만들어진 고추가루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2024년에는 친환경 방식으로 홍 건고추를 재배할 계획이다. 수확이 끝난 2023년 겨울 동안에 고추가루의 제조와 판매 과정에 필요한 준비를 해나갔다. 

   2024년 1월 강원 융복합센터에서 농업창업스쿨이라는 교육과정을 진행하였다. 여기서 농산물의 제조 및 유통 허가 과정을 공부할 수 있었다. 고추가루도 음식물이기에 식품제조 및 판매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가공을 위한 제조공간, 포장공간, 적합한 수질의 용수 등 갖춰야할 것들이 많았다. 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공장과 기계설비가 있어야만, 식품제조 및 판매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초보 농부인 내가 만들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결국 허가받은 공장에서 고추가루의 제조 및 포장을 하고, 나는 단순하게 유통만 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유통을 하려고 해도 유통판매업 허가를 받아야 했다. 저장 및 유통과정에서 꼭 지켜야할 것들과 법적 책임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저장과 유통 과정에서 지켜야할 세세한 사항들이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기록되어 있었다. 많은 규정들만큼 처벌조항도 많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의 음식물에 대한 인허가 장벽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워낙 고추가루를 좋아해서, 벌써 다 먹었어요. 청양고추로 만든 고추가루여서 좀 매웠지만, 맛있었어요. 매운 맛을 좋아하거든요.”

  2024년 1월에 만났을 때, 신반장 부부는 고추가루를 벌써 다 먹었다고 했다. 나는 아직 절반도 먹지 못했는데. 이들은 웬만한 음식에는 다 고추가루를 쳐서 먹는단다. 가능하면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있는 나와 아내는, 그들만큼 고추가루를 많이 소비하지 않았다. 멀리 미국에 사는 아들이 고추가루를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준 것이 소비의 대부분이었다. 

  비록 수확량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지만, 백평의 밭에서 청양고추를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하고 이것으로 고추가루까지 만들어 먹었다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직접 재배하고 만들었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한층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신반장 부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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