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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7. 2024

<한옥 대목반>건축 목공 기능사 시험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

  동료들의 시선이 전화를 받고 있는 종석이의 얼굴에 꽂혔다. 이날 건축 목공 기능사 시험을 보는 다른 동료들의 소식이 몹시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종석이의 얼굴이 심각하게 바뀌면서, 실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몇 분 후에 돌아와서 동료들의 소식을 알렸다. 

  “일현이 형님이 시험 중간에 시험장을 나와 버렸대요. 설계도를 잘못 그리는 바람에, 목재의 가공을 완전히 망쳤다네요.”

  나를 포함해서 한옥학교의 동료 일곱명이 기능사 시험에 응시를 했다. 2022년 3월 23일에는 동료 3명이, 24일에 4명이 시험을 보게 되었다. 이날은 첫 번째 시험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현, 유명, 정원이가 시험장인 강릉종합고등학교로 떠났다. 시험은 중간 휴식시간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꼬박 5시간 동안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전 11시쯤 일현이에게서 좋지 않은 소식이 온 것이다. 다음 날 시험을 치르는 다른 동료들은 이 소식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현이가 우리 동료들 중에서 기능사 시험준비를 제일 잘 했기 때문이다.  


  건축 목공 기능사 시험은 다양한 부재를 이용해서 복잡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기능사 시험은 실기로만 치러지고, 시험시간에 만들어야 하는 작품은 미리 공개되어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수십번의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3월초부터 시험에 대비한 실습을 해왔다. 작품이 어렵다 보니까, 현치도(現寸圖; 실제수치로 만들어진 설계도)도 매우 복잡하였다. 시험에서 A부터 G까지 크기가 다른 일곱 종류의 부재가 주어지고, 각각 다른 형태로 가공해야만 했다. 선생님이 현치도를 종이에 그려서 칠판에 걸어놓고, 그리는 법을 설명해주었다. 사선 등 다양한 모양을 규격에 맞게 그려 넣어야 했다.

  현치도가 완성되면, 그 위에 나무 부재들을 올려놓고 밑그림 그리는 작업을 했다. 각 부재에 밑그림이 그려지면, 주로 손 톱과 끌을 이용해서 가공을 해나간다. 작은 목재를 가공하기 때문에, 목재 일부분이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톱질이나 끌질을 조심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험장에서는 목재를 필요한 수량만큼만 주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곧바로 탈락이었다. 

  작업을 처음 했을 때는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이틀 가까이 소요되었다. 현치도를 그리는 작업부터 어려웠다. W자 모양으로 가공해야 하는 C부재는, 밑그림에 따라 톱질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일현이나 종석이, 호림이와 같이 목재 가공수완이 탁월한 친구들은 빠른 시간내에 숙달되었다. 몇 번 해보더니, 5시간도 안되어서 작품을 마무리하였다. 시험 시간이 5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더 이상 연습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다른 동료들에게 조언을 해주면서, 쉬엄 쉬엄 연습을 했다. 

  반면 나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은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을 뿐 아니라, 정밀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맞물리는 부재들간의 간격이 1cm 이상 떨어지게 되면 탈락인데, 이것보다 더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매일 시험용 작품을 한 개씩 반복해서 만들기로 했다. 일 머리가 있는 친구들만큼 따라가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니까, 3~4시간만에 시험용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내가 건축 목공 기능사 시험을 보는 날이 밝아왔다. 같이 시험을 보는 종석, 정목, 호림이가 아침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내 집으로 왔다.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내 차를 이용해서 강릉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에 바라본 영동고속도로의 날씨는 무척 상쾌하고 맑았다. 대관령을 넘어설 때는 지난 주말에 내린 눈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산 정상 부근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한 시간쯤 달려서 강릉종합고등학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농업고등학교와 공업고등학교의 기능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고등학교 치고는 학교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웬만한 대학교 크기만 했다. 그만큼 건물도 많았고, 전공별로 실습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항공기술, 목공기술, 전기기술, 컴퓨터 등 다양한 기술들을 가르치는 과정들이 있었다. 

  우리가 시험 볼 목공실습실은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시험장은 책상이 15개 정도만 놓여 있는 작은 규모였다. 제일 먼저 도착한 우리들은 안쪽부터 자리를 잡았다. 나도 제일 안쪽 책상에 내 공구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책상 하단부에 공구들을 놓을 자리가 있어서, 그곳에 끌, 망치, 곱자, 대자와 스피드 스퀘어, 드릴, 3인치 대패, 손 대패 등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8시 50분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작되자 마자, 나는 모든 목재를 가지고 전기대패가 있는 곳으로 갔다. 작품에 필요한 크기에 맞게 목재를 자르기 위해서이다. 목재를 적합한 크기로 깎은 다음에, 책상 위에 놓여있던 MDF 판자에 현치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10여분쯤 흘렀을까? 현치도를 마무리하고, 각종 부재를 현치도에 올려놓고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톱질에 들어갔다. 

  이때까지 그날 시험을 치르는 사람 중에서 누구도 톱질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내가 빨리 가공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전날 일현이가 실수한 것을 염두에 두고, 각 부재들을 가공하기 전에 몇 번이나 검증작업을 진행하면서 꼼꼼하게 작업하였다.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톱질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해나갔다. 

  마침내 가장 어려운 ‘W’자 모양의 톱질이 필요한 C부재 2개를 모두 성공적으로 가공하였다. 손 대패와 끌로 약간의 정리작업까지 마무리했다. 마지막 부재의 가공작업에 들어갈 때쯤, 종석이와 호림이가 다 끝냈다고 작품을 제출하고 짐을 챙겼다. 나보다 가공작업을 늦게 시작했는데, 먼저 끝낼 만큼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이었다. 시간은 아직 1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서두르지 않고 마지막 부재의 가공을 마무리하고, 못질을 하면서 조립작업을 시작했다. 

  여기 저기 못질을 하면서 조립을 해 나가는 데, 2군데서 못이 삐끗했다. 못이 목재를 약간 바깥쪽으로 밀어내면서, 일부 목재에 금이 간 것이다. 이날 톱질을 정성스럽게 하면서 목재들끼리 서로 오차없이 잘 만들어졌는데, 못질 때문에 일부 목재에 금이 가서 기분이 많이 언짢아졌다. 마지막 C부재를 못질할 때는 못이 잘못 들어갔다. 빼기도 어렵거니와 깊이 박을수록 목재가 깨질 것 같았다.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 지 고민하던 차에, 시험 감독관이 내 옆을 지나갔다. 감독관에게 조언을 구해보고자 마음먹었다. 감독관들은 건축 목공 분야의 베테랑들이기 때문이다.

  “여기 이 부재에 못을 끝까지 박아 넣으면, 목재가 갈라질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유심히 내가 만든 작품을 쳐다보던 감독관은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었다.

   “그냥 이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좋겠네요.”

  부재가 깨지는 것보다는 못을 다 박지 않은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감독관의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시험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었다. 

  동료들이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홈을 잘못 파서 현치도보다 1cm이상 크게 파버렸어. 후유~”

  “A부재의 좌우를 바꿔서 가공하는 바람에 다시 작업했지. 허허”

  모두들 최소한 한 가지씩은 실수를 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서로를 위로하였다. 이제 결과만 기다릴 뿐.


  한 달이 지난 후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일곱명의 동료 중에서 일현이와 호림이만 탈락하였다. 두 사람 모두 연습과정에서 잘했던 그룹에 속했던 친구들이다. 손재주도 좋아서 한옥 목수 일도 곧잘 했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해서 일 머리가 부족한 친구들은 모두 합격했다.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실력이 반드시 시험 성적과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떨어진 동료들은 시험 작품을 만드는 것에 상대적으로 빨리 숙달되면서, 정신적으로 느슨해졌던 것 같다. 어렵지 않게 시험에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이 컸던 것이다. 오히려 손재주가 부족하다고 느꼈던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 결과 합격할 수 있었다. 시험에 통과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집중력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연습이 아닌 실전으로 결과를 말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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