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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28. 2024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 글>새참 단상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스물 네번째 글

  “어서 와서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잔 하세요!”

  밭에서 옥수수 모종을 심고 있는 동료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1시간이 지났나? 시계를 쳐다보니, 일을 시작한 지 어느 덧 1시간 30분이 흘러 있었다. 우리는 한 시간에 한번씩 쉬자고 약속을 하고 밭에 들어갔던 터였다. 그런데 일에 하다 보면, 하던 일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다른 동료들이 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새참 먹으면서 쉬자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신반장이 큰 소리로 고함을 쳐서 불러들여야, 겨우 쉬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밭에서 빨리 나오라고요! 쉬면서 하자고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는 새참은 고사하고, 식간에 군것질도 잘 하지 않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을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온다. 새참을 먹지 않고 계속 일을 할 때는, 2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새참’에서 ‘새’는 ‘사이’의 준말이다. 아침이나 점심, 저녁식사의 ‘사이’라는 시간적인 의미와 함께, 집과 직장의 ‘사이’라는 공간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참’도 역시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이라는 시간적인 뜻도 있고, 길을 가다가 쉬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과거에 ‘참(站)’ 또는 ‘역참 (驛站)’이란 중앙에서 지방으로 공문을 전할 때 말을 갈아탈 수 있는 곳이었다. 역참은 25~30리마다 하나씩 두었다. ‘한참’이라고 말이 두 역참사이의 거리에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한참을 달린 말과 사람이 지쳐갈 무렵이면 역참이 나타나는 것이다. 말을 갈아타고 길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서 쉬면서 요기도 하였다. 그래서 ‘참’이라는 말에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아우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새’와 ‘참’이 만나게 되면, 시공간적인 여유가 잔뜩 묻어나는 단어가 된다. 

  육체노동자들은 직종 특성상 활동량이 크기 때문에, 하루 세끼 사이에 간단하게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다. 열량을 보충해주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육체노동자들도 마찬가지 현상이란다.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새참에 막걸리를 곁들여 마신다. 이것이 곡주라서 배가 쉽게 불러와 허기를 채울 수 있고, 도수가 낮아서 적당한 취기에 기분좋게 일할 수 있게 만든다. 유럽의 농부들도 새참용 밀주나 싸구려 맥주 등을 농주로 마시기도 한다. 


  2022년 5월에 접어들면서, 새참을 챙기기에는 너무 바쁘게 일상이 돌아갔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열명의 동료들은, 새참 먹는 시간을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감자, 옥수수, 고추, 호박,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을 3천평의 넓은 밭에 정식해야 했고, 각자의 개인 텃밭을 가꾸는 시간도 필요했다. 더군다나 이웃의 농부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참은 커녕, 점심때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를 준비할 에너지마저 고갈되는 경우도 꽤 많았다. 그럴 때면 점심식사로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하고, 햄버거와 피자를 주문하기도 한다. 내가 있는 삽교리는 둔내면에서도 10분이상 떨어져 있어서, 배달되는 메뉴도 햄버거나 피자에 국한되어 있고 그나마 배달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가장 젊은 신반장이 동료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둔내면에 나가서 사오곤 했다. 

  상대적으로 한가해진 6월이후에도 새참을 건너뛰거나 간단히 먹는 일이 지속되었다. 새참을 건너뛰는 일이 많았던 5월의 작업 리듬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커피나 빵, 찐 옥수수, 감자 등을 주로 먹곤 했다. 농작물을 정식하고 난 후에는, 비료나 약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내는 작업들을 했다. 노동량이 크지 않은 일들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굳이 새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씩 있었던 새참은 우리들에게 즐거운 휴식 시간을 제공하였다.

  새참은 보통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하기도 하고, 각자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 먹기도 했다. 그 중 최선생님 형수님의 새참이 인기가 좋았다. 이 형수님은 음식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공부도 많이 했고, 어린이 집과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도 했단다. 형수님은 새참으로 해물파전, 감자전, 잡채 등 각종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하곤 했다. 동료들이 준비해온 여러 가지 새참 중에서도, 내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음식이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은 구수한 유머와 여유를 가져온다. 새참을 먹을 때는 일하면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고, 편안하게 농담을 건네며 농사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었다. 여기에 막걸리는 새참의 분위기를 띄우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막걸리가 배도 부르게 하지만, 약간의 알코올 기운이 피로를 가시게 하였다.

  농사 초보인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일을 하면, 특정 부위의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10명의 농사꾼들이 어떻게 협업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도 했다.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으면,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였다. 새참시간이 단순히 ‘새참’을 먹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굽혔던 허리를 한번 펼 수 있는 시간이고, 정보를 교환하는 시간이며, 서로 격려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끝나가던 2022년 9월에는, 가끔 다음 해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었다. 

  ‘내년에는 동료들도 없이 나 혼자 농사를 짓고 있겠지. 새참도 혼자 먹는 경우가 많을 거야.’ 

  새참을 먹으면서 농담을 주고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다음 해의 일상이 팍팍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내년에 농촌에서 살면서 즐거움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짙어 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제2의 삶을 즐겁고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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