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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15. 2024

<2년차 귀농인의 하루> 공부하는 농부들

-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세번째 이야기

  족히 삼사백명은 넘어 보였다. 둔내면사무소 2층에 있는 대회의실에는 발 디딜틈이 없었다. 넓은 대회의실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서, 입구에 서서 강의를 듣는 사람들도 많았다. 둔내면에 이사와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주로 60, 70대로 보이는 농부들이었다.

  ‘둔내면에서 토마토 재배를 많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네.’

  나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토마토가 횡성의 8대 농산물중의 하나가 되었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회의실에는 연단을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배치된 의자들이 중앙 부분에 이백여 개, 회의실의 양쪽 가장자리에 연단을 옆으로 볼 수 있게 놓인 긴 테이블에 일백여 개의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10분전에 도착해서 보니까,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였다. 나는 맨 가장자리의 긴 테이블중에 비어있는 좌석을 찾아 앉았다. 

  순천향대 교수님이 오셔서 토마토 재배와 관련된 주요 포인트들을 1시간 30분동안 강의를 하였다. 강의는 재배시 유의해야할 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시간이 넘어가자 입구에 서서 강의를 듣던 사람들부터 한 두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농촌에서는 농한기인 겨울철에 농작물 재배와 관련된 교육이 집중되어 있다. 둔내면사무소 2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농업인 실용교육’도 2024년 1월 중순에 열렸다. 농번기에는 농부들이 시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농업인 실용교육’은 각 면사무소에서 각기 다른 날짜에, 서로 다른 주제로 개최되었다. 토마토 재배 농가가 많은 둔내면과 안흥면은 토마토 교육이, 더덕 재배 산지인 청일면에서는 더덕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 교육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기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오곤 한단다. 


  농촌에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을 보는 것은 무척 힘들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대부분 60, 70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젊은 농부들이 많이 모이는 교육과정이 몇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강원융복합센터에서 개최한 ‘농업창업과정’이다. 

  젊은 농부들은 단순하게 농산물 재배만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가공이나 서비스업과 접목시켜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열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가나 필요 시설 등 많은 지식을 알아야 한다. 이미 성공적으로 창업한 선배 농부들의 경험도 귀중한 조언이 된다. ‘농업창업과정’은 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과정이었다. 

  이 교육은 춘천에 있는 미래농업교육원 건물에서 2024년 1월 중순에 열렸다. 1박 2일과정이었다. 겨울의 찬 바람을 맞으며 1시간 30분정도 중앙고속도로를 달렸다. 이 건물은 한적한 시골마을 한켠에 위치해 있었다. 사과 밭이나 축사 등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교육에는 30여명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60대의 농부 몇몇을 제외하고는 30, 40대가 대부분이었다. 부부가 같이 온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창업 실무 절차, 마케팅 방법론, 사업계획서 작성법, 농산물의 안전관리 등 창업할 때 필요한 지식들을 가득 담은 교육과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창업에서 성공까지’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홍천강 퀴노아 영농조합법인’의 이형근 대표였다. 

  퀴노아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주산지이다. 고대 잉카 문명의 중요한 주식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고품질 단백질을 가진 슈퍼푸드로 각광받고 있다.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도 포함하고 있어서, 고급 영양 곡식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퀴노아 영농조합원이 72명에 달하고, 연매출 13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퀴노아’라는 희소한 아이템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처음에는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2년여동안 실패를 거듭하며, ‘퀴노아’ 재배법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드디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퀴노아’ 재배에 성공하였다. 

  정작 힘든 것은 그 다음이었다고 한다. 주로 벼농사를 짓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퀴노아’로 작물을 변경하게 하는 것이 무척 힘든 과정이었다. 수십년동안 벼농사를 지어 왔던 나이 많은 농부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친환경 재배법으로. 

  국내 ‘퀴노아’ 시장이 점차 커져 벼농사보다 수익성이 좋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점차 작목을 변경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퀴노아’를 일괄적으로 수매한 후, 시장에 판매하는 과정에서 손해를 많이 입기도 했다고 한다. 영농조합이 파산하게 될 지경에 이르기도 했단다. 

  ‘퀴노아’ 재배법부터 시작해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오늘날의 성공사례를 만들기까지, 십수년동안 조합을 이끌어온 이형근 대표는 놀랍게도 40대였다. 농촌에서는 나이든 농부들을 젊은 사람이 설득하기란 무척 어렵다. 영농경험이 짧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노력을 해왔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자기만 잘 살자고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의 농촌의 모습과는 무척 달랐다. 60, 70년대 농촌에서는 농부들은 농한기에 보통 사냥을 하거나 이웃들과 술 자리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로는 사랑방에서 고스톱 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즘은 농사도 공부를 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농사도 과학이기 때문이다. 여행이나 취미생활 등 여가 활동도 많이 이뤄진다. 농한기에 맞춰서 국내외 여행을 떠나는 농부들도 많아졌다. 또 면단위의 주민센터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개설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인기있는 프로그램들은 등록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서 꽉 차는 경우도 많다. 내 어렸을 때의 농촌 생활과 비교해서 훨씬 다양한 생활 형태이다. 발전하는 농촌 생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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