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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24. 2024

<2년차 귀농인의 하루>장마를 지나는 농부의 삶

-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여섯번째 이야기

  2024년 7월 어느 날 횡성군 둔내면에 폭우가 쏟아졌다. 110미리가 넘는 장대 비가 새벽 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렸다. 나는 걱정되어서, 새벽에 일찍 밭으로 갔다. 다행히 노지의 고추 밭과 하우스안의 토마토에는 큰 피해가 없는 듯 보였다. 폭우에 쓸려간 토사가 고추밭 고랑사이로 흘러 들어가 쌓여 있는 것이 간간히 보였을 뿐이다. 이웃집과의 사이에 있던 작은 도랑에도 흙이 쌓이면서, 도랑에 흐르던 물이 하우스 입구부분까지 넘쳐 흘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농막과 시설물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밭의 입구에서 가장 먼 안쪽에 농막과 함께 저장고, 화장실, 대형 물탱크, 지하수 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농막을 지나서 물탱크 쪽으로 가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물탱크 바로 앞에 놓여있던 야외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남녀 화장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는 두 칸짜리 제법 큰 것이었다. 가까이 가보니까, 화장실과 함께 대형 블록들이 무너져 있었다. 

  시설물들이 자리잡고 있는 밭 바로 옆에는 낮은 산이 있고, 그 사이로 마을 하천이 흐르고 있다. 하천의  물길을 따라 길이 1미터에 높이 50센티, 폭이 72센티의 대형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 놓았다. 2층 혹은 3층으로 쌓아서, 제법 높은 담벼락 역할을 하였다. 포크레인으로 겨우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블록들이었다. 그런데 그 블록들이 간밤의 폭우로 인해서 하천으로 무너지면서, 바로 옆에 있던 화장실마저 넘어진 것이다. 


  문득 2022년 장마철에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중인 시기였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김대표님이 장마철에 대비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마철이면 이곳 둔내면 삽교리에는 비와 함께 강한 바람이 동반되곤 하죠. 비바람으로 인해서 농작물들이 부러지거나 쓰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미리 작업을 해야 해요. 특히 고추나 가지와 같이 줄기가 위로 뻗어나가는 작물들은 바람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날 나와 동료들은 고추 등의 작물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노끈으로 지주대에 단단히 묶는 작업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장마로 인해서 엉뚱한 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대표님이 감자를 경작하는 밭의 한 귀퉁이가 폭우로 인해서 떠내려가 버렸다. 심어 놓았던 감자뿐 아니라 밭의 한쪽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밭이 마을 길을 따라 흐르는 큰 하천에 인접해 있던 탓이다. 하천의 물이 불어나면서, 인근의 밭을 덮쳤다.

  밭과 농작물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서 면사무소에 지원 요청을 하는 등, 바쁘게 뛰어다니던 김대표님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폭우로 인한 피해를 처음 당하는 일이라서, 어떻게 대처해야할 줄 몰랐다. 김대표님에게 전화 드렸더니, 마을 이장님과 면사무소에 연락하란다. 면사무소에는 몇 번을 전화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간밤의 폭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 모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사무소 담당직원과의 통화를 포기하고, 마을 이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장님과 연결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간밤에 폭우로 인해서 제 밭의 시설물들이 무너져 내려서요.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바로 가볼 테니까 잠깐 기다리세요.”

  10분쯤 지났을까? 이장님이 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반장님도 같이 와주었다. 밭 근처에 사는 반장님은 몇 번 만났지만, 이장님은 처음이었다. 이장님은 산채마을 근처가 아닌 청태산 근처에 살고 있었고, 이장이 된 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이장님께 인사를 하고, 피해 현장으로 안내하였다. 

  “피해가 심각하네요. 지금 폭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빠른 시간내에 조치가 어려울 수도 있어요. 내가 면사무소 담당 직원하고 통화하고, 가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할께요.”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이장님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그리고는 곧장 면사무소의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서, 피해상황을 공유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피해가 큰 것 같은데요.”

  옆에 있던 이장님이 면사무소 직원하고 통화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내일이나 모레사이에 포크레인이 와서 응급복구를 해줄 거예요. 또 폭우가 내리면 하우스로 물이 흘러 넘칠 우려가 있으니까, 그것을 막기위한 작업을 바로 해야 할 것 같네요.”

  면사무소 직원에게 응급복구용 포크레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 날로부터 3~4일동안은 폭우 피해 복구를 위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면사무소에 가서 피해상황 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수시로 오는 이장님과 반장님을 안내해서 대책을 논의해야 했다. 다음 날 포크레인이 와서 작업할 때는 옆에서 이런 저런 보조 작업을 했다. 완전히 원상복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피해복구 때문에 농사일을 미뤄 놓았던 탓에, 그 뒤로도 여러 날 동안 바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폭우로 인한 피해는 그 뒤에도 계속 발생하였다. 토마토의 잎 곰팡이병 발생, 고추의 탄저병 증상 발현 등등…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기후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뚜렷한 사계절을 느끼면서 살아가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점차 봄, 가을이 짧아지면서,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 도처에서 최장 기간의 열대야를 경험하면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집중적이고 국지적인 폭우가 쏟아지곤 한다. 

  날씨의 변화는 농작물 재배나 논밭의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온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갈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첫번째로 하는 것이, 당일과 다가올 1주일 정도의 기후를 체크하는 것이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서 해야할 일들을 조정한다. 장마가 오기 전에는 농작물들과 시설물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몇 번이고 살펴보고, 필요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한 명의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히 ‘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농사꾼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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