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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1. 2024

<2년차 귀농인의 하루>무지의 비용(cost)

-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아홉번째 이야기

  내 밭의 성토작업은 같은 마을에 사는 하총무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성토작업 과정에서 포크레인을 이용한 작업이 많았다. 하총무가 포크레인 기사였기 때문에, 이 일을 중심적으로 수행했다. 또한 그는 국궁 클럽의 총무역할을 맡고 있으면서, 삽교 1리의 반장 업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50대 중반인 그는 마을의 리더중 한 명이었다. 

  나도 국궁 클럽에 가입되어 있어서, 그와 가깝게 지냈다. 매달 국궁 회원들끼리 시합을 하고 회식을 하는 자리를 통해서 많이 가까워졌다. 그는 내가 이런 저런 부탁을 하면 잘 들어주었다. 내 트럭이 진흙 밭에 빠졌을 때, 그가 포크레인을 끌고 와서 빼내 주었다. 내 밭의 한 켠으로 컨테이너를 옮길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 그가 고마워서 나는 저녁식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바비큐 파티를 열어 주기도 했다. 특히 대부분 70, 80대인 다른 마을 사람들에 비해서, 나와 나이 차이가 많지 않아서 친밀감을 더 느꼈다.  

  2023년 12월초 15톤 트럭으로 220대 분량의 흙을 내 밭에 쏟아 부었다. 밭을 1.5미터 높여서, 습하지 않는 땅으로 만들 요량이었다. 하총무는 포크레인을 이용해서, 밭이 수평이 되도록 평탄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흙이 1.5미터 정도 쌓인 후에, 둔내면의 철물점에서 대형 콘크리트 블록을 수십개 주문하였다. 가져온 블록을 포크레인으로 2단 내지 3단으로 쌓아 나갔다. 두께가 75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블록으로, 그 무게가 400키로그램이나 되었다. 포크레인으로 하나씩 쌓아 올려야만 했다. 내 밭의 한쪽 면에 마을 하천이 접해 있어서, 성토한 흙이 하천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담을 쌓았던 것이다. 

  쌓아올린 블록의 사이 사이로 작은 자갈을 쏟아 넣었다. 블록이 위치한 땅의 바닥과 블록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블록의 빈 공간에도 자갈을 채워서,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일주일 이상 진행된 이 작업에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토목 작업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전적으로 하총무의 조언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였다. 흙을 사고, 블록을 쌓고, 땅속의 물이 흘러갈 길을 만들어주고...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갔지만, 높아진 밭과 튼튼하게 쌓인 블록 벽을 보면서 2024년 농사가 기다려졌다. 더 이상 습하지 않은 밭이기에, 풍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2024년 7월 중순 폭우가 연일 쏟아지면서 발생했다. 하천 물이 불어나면서 대형 블록의 하부에 깔아 놓았던 자갈들이 쓸려 나갔다. 블록 하부를 떠받치고 있던 자갈들이 사라지면서, 블록들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피해 복구 지원을 받기 위해 면사무소의 토목 담당자를 만났다. 그는 이런 대형 블록을 설치할 때는, 블록 하나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서 시멘트 타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맨 하부에 위치한 대형 블록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기 때문에, 비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단다. 한마디로 내가 하총무와 함께 진행했던 작업은 부실 공사라는 것이다. 

  면사무소의 토목 담당자의 말 대로 작업하기는 어려웠다. 시멘트 타설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쌓여 있는 블록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블록 담의 옆쪽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해체해야 하는 등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후에도 블록이 무너질 가능성이 많아서, 다른 대책을 찾아야 했다. 근처에 사는 토목 전문가를 불러서 의견을 들었다. 

  “왜 하천에 블록을 쌓았는지 모르겠네요. 지름 1천미리 관을 묻고 흙을 덮으면, 그 땅을 쓸 수도 있을 텐데요.”

  그는 애초에 블록 벽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마을의 하수량을 감안할 때 지름 1천미리 관을 묻고 흙과 자갈을 덮으면 된다고 했다. 하천을 복개(覆蓋)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말 대로 작업을 하는데, 1천만원이 넘게 들어 간단다. 결국 무지함이 불러온 잘못된 공사로, 수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작년 겨울에 대형 블록 쌓는 작업을 한 사람에게 A/S를 해달라고 하세요. 공사를 잘못한 탓이 크니까요.”

  내 밭의 폭우 피해를 걱정하며 방문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총무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을 했다. 문제는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 작년 겨울에 그가 잘못된 공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아니 그도 잘 모르고 진행한 공사이기에, 무식하게 공사한 것을 타박해야만 했다. 

  하총무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그렇게 몰아 부치기 싫었다. 그가 고의로 잘못된 공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의 조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잘못을 비난하는 말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아니, 그가 내 밭에 와서 피해상황을 보고, 자진해서 도움을 주기를 바랬다.

  폭우가 쏟아졌던 날, 하총무가 내 밭의 피해상황을 살펴보러 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작업한 밭이 큰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 전화 자체를 피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책임 추궁을 하거나, 귀찮은 부탁을 할 거라고 지레 짐작해서 취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굳이 그의 그런 태도를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 불평삼아 이야기 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도 그 이후에 그에게 어떤 형태의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내 밭을 한번도 와보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귀농하면서 의지했던 사람 한 명을 잃어버렸다. 작년 12월 작업비용으로 지불했던 돈보다도 더 큰 cost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나와 하총무의 토목 공사에 대한 무지함이, 결국 헤아릴 수 없는 비용을 유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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