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열세번째 이야기
“귀농 창업자금으로 청년의 경우 최대 5억원까지, 그 이외에는 3억원까지 저리 융자를 해주죠. 목돈 없이도 귀농이 가능하답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을 진행했던 2022년 7월 어느 날, 귀농귀촌센터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나온 말이다. 농사를 지을 밭을 구입하고 비닐하우스, 저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는데, 귀농 창업자금을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2년뒤 나는 밭을 구입하고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데, 귀농 창업자금을 활용할 수 있었다.
정작 문제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본 infra를 갖춘 뒤에 발생했다. 나는 원래 논이었던 밭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토양의 습기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성토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수년동안 밭 작물을 재배하기는 했지만, 땅이 습해서 수확량이 크지 않았다. 여러 날이 소요된 이 작업에만 수천만원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고정 시설을 투자하는 것이 아닌 운영 비용은 귀농창업자금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대출금은 귀농할 시점에 필요한 자금으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 일을 하려면 호미, 삽, 괭이 등의 가벼운 기구에서부터, 트랙터나 관리기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 관리기와 같은 일부 고가의 장비는 농촌기술센터에서 임대를 할 수 있지만, 농사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구입하는 것이 좋다. 농업기술센터가 보유하고 있는 농기계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수요는 작물을 정식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몰리곤 한다. 자신이 필요할 때에 로터리를 치거나 이랑을 만들려면, 자신의 기계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고가의 농기계 구입비용은 농사의 투입비 중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작물을 재배하려면 작물의 씨나 모종을 구입해야 한다. 육묘장이 갖추어져 있다면 씨를 구입해서 육묘를 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하지만 육묘장을 만들려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열선을 설치하는 등의 시설비가 필요하다. 육묘장이 없을 때에는 모종을 구입해야 하는 데, 이것도 재배 면적에 따라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돈이 든다.
작물도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작물을 정식하기 전에 밭에 우분이나 계돈분 등 유기물이나 영양소가 있는 비료를 섞어주어야 한다. 작물에 따라 다르지만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밑거름을 통해서 50% 정도의 영양분을 섭취하게 된다. 정식한 후에도 질소, 인산, 칼륨 등 다량원소와 함께 망간, 아연, 구리 등의 미량원소를, 필요할 때마다 웃거름으로 투입해주어야 한다. 관행농가에서는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만, 친환경 농가에서는 자체적으로 만들거나 비싼 친환경 비료를 구입한다. 작물의 성장 주기에 따라 여러 차례 비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작물이 필요로 하는 것은 비료만이 아니다. 각종 병해충을 방제하기 위해서 농약도 있어야 한다. 관행농법에서는 화학농약을 구입해서 사용하지만, 친환경 농가들은 대부분 식물추출물로 이뤄진 친환경 농약을 구입해서 사용한다. 그런데 이 친환경 농약의 가격이 화학농약보다 훨씬 비싸다. 나는 친환경 재료들을 구입해서, 농약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와 같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농사 도구부터 시작해서 모종, 비료, 농약 등을 구입하기 위한운영자금이 필요하다. 아울러 농작물의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생활자금도 있어야 한다. 작물들은 그 성장속도가 다르다. 상추와 같은 엽채류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그만큼 매출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뜻이다. 반면에 고추나 토마토와 같이 열매가 맺어져야 하는 작물들은 작물 출하까지 적게는 2개월 내지 3개월이 소요된다. 매출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정도의 규모로 만들어지려면 이것보다 긴 기간이 필요하다.
‘할 일이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야지.’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다른 대안보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서, 선택하기 쉽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귀농한지 불과 1~2년밖에 안된 초보 농부이지만, 이 말은 현실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귀농한 후, 흑자로 돌아서는 데 3~5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초기 투자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한편, 작물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도 높다. 이 시기를 버티려면 위에서 열거한 자금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농작물 출하로 발생하는 수익으로 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작은 규모로 농사짓는 데 만족하지 않고, 논밭을 확대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토지 임대료나 구입비뿐 아니라 외부 인력들에 대한 인건비, 농약, 비료 등의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된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서 귀농하기 전에 연도별 예상 소요 비용과 수익을 바탕으로 한 손익계산서를 추정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미리 준비해야할 자금 규모가 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