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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고니파더
Dec 14. 2024
늦은 승진에 대처하는 자세
인사고과, 승진누락, 이직성공
고백하자면 은행에 있을 때 승진이 동기들에 비해 2~3년 정도 늦었습니다.
당시 과장 승진 프로세스는 나름 체계적이었는데 조건이 꽤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폐지된 승진 자격시험이라는 것을 일단 통과해야 하고 (승진고시라 불림),
자격증은 7개 이상, 표창은 5개 이상, 봉사활동 점수는 3점 이상이 되어야 했죠.
승진을 위해서 공부한 건 아니었지만 자격증 점수는 이미 차고 넘쳤고, 표창도 일 열심히 하다 보니 역시 만점을 받았습니다.
봉사활동은 지금은 중학생이 된 큰 애와 당시에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가서 어르신들 핸드폰 사용법 알려드리는 일을 해서 점수를 다 채웠죠.
(그러고 보니 이때 잡지에도 실린 걸로 기억함)
입사 성적은 전체 2등이었고 (자랑임) 가점은 다 채웠고 영업점 실적도 나쁘지 않자, 동기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승진할 사람으로 거론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퇴사자를 제외하고 50명 가까운 동기들 중에 승진을 거의 뒤에서 10번째 정도로 늦게 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인사고과 때문이었죠.
지금은 상사평가도 나름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듯한데, 그때만 해도 형식적인 것이었어요.
당시 저는 일은 잘했으나 어렸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반항심이 꽤 큰 애송이였습니다.
사회에서 성공은 열심히 자기계발하고 일 잘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정도였으니, 어떻게 보면 순진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사단이 난 것은 지점장과 팀장이 들고 온 말도 안 되는 토지담보대출 때문이었습니다.
강원도에 가까운 경기도에 위치한 그 토지는 딱 봐도 경사가 40도 이상은 되어 보이더군요.
더군다나 경락자금대출이었는데 유찰도 두 번이나 되었고 낙찰자의 상환력도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실적에 눈이 먼 지점장과 팀장은 그 대출을 하고 싶어 하더군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승진을 앞둔 대리 주제에 "대출의견거절사유 Top10"을 써서 지점장한테 제출했습니다.
'이 건은 총 10가지의 대출거절사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건을 취급하겠다면 실행자로서 해당 의견서를 첨부하게 해 달라'
이런 의견을 듣고 나자 지점장과 팀장 모두 해당 건을 취급하기 겁이 났는지 더 이상 진행을 하지 않더군요.
그때만 해도 저는 제가 승리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들이 제 인사고과를 빵점 줬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죠.
모든 항목에서 뒤질 것 없는 저였지만, 결국 인사고과를 긁어버린 멋진 (?) 상사들 덕분에 승진이 동기들에 비해 2~3년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기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때는 계속 누락되다 보니 조급함 마음이 생기더군요.
이건 주위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사자가 되어 보기 전에는 말이죠. 그 패배감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결국 타이밍이라고 제때 승진을 못하게 되자, 본사로 갈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은행에서 제일 인기 부서는 자금부와 국제실이었는데, 둘 다 과장급 티오가 난 상태였죠.
하지만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본사 전입을 포기하던 순간, 다들 기피하던 심사역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초임 심사역들을 대상으로 외부 교육을 비교적 장기간 시켜주었는데 (3개월) 이 교육을 받고 싶었어요.
기도가 통했는지 심사부서로 전입이 되었고 동시에 외부 교육도 받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게 이게 터닝 포인트가 되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이 저에게 잘 맞았고 성적도 좋았고 그러다 보니 일에서도 재미를 느끼게 되었죠.
동시에 사내 강의도 맡게 되면서 업무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습니다.
흔히 은행에서는 자신만의 스페셜티를 얻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우연히 얻게 된 이 기회를 잘 살렸습니다.
결국 이때 쌓은 경험이 밑천이 되어 은행에서 보험사로 이직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와중에 승진 누락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재밌는 상황이 이직한 회사에서 발생합니다.
새로 옮긴 곳에서는 공채와 경력직의 미묘한 긴장감이 다소 존재했었는데요.
공채들의 불만은 경력직들이 자신들보다 높은 직급과 직책에 있다는 거였습니다.
저도 따져보니 정식 공채로 입사했다면 2006년에 입사했을 것 같은데, 제 나이와 기수에 직급과 팀장 직급을 단 공채는 단 2명에 불과하더군요.
그것도 단 한 번의 진급 누락이 없어야 가능한 구조.
누락된 승진을 이직 한방에 커버한 셈이었습니다.
기분이 묘하더군요.
이전 직장에서는 나쁜 상사들 만나 개고생해서 동기들에 비해 2~3년 승진 누락이 되었는데,
새로운 직장에서는 이직이라는 롤러코스터 (?) 덕분에 그간의 설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게 되었으니까요.
결국 지나고 보면 다 별거 아닌 것들에 마음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지금은 직급은 높아졌지만 다시 책임자 직책에서 내려왔습니다.
누군가는 '왜 관리자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가느냐?'라고 했지만 솔직히 그런 건 이제 큰 상관이 없는 듯합니다.
능력이 있고 그 능력에 대한 자기 자신의 믿음이 있다면, 언젠가 직책자를 다시 맡게 될 거라는 생각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승진 누락이 되어서도 힘든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면, 언젠가 빛을 보는 날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것.
물론 그 결과는 당연하게 오는 건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아시죠?
승진 인사가 많은 연말연시.
승진 누락과 실패에 슬퍼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내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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