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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니파더 Dec 13. 2024

Down team is down

차입매수, 인수금융, 지방 건설사

오랜 전 기억을 끄집어 내주는 기사와 함께 시작합니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mediaCodeNo=257&newsId=03913046639090312

부산 쪽 건설사로는 이름을 꽤 날리던 범양건영이 위험하다는 소식.


사실 부동산 금융을 좋아하지 않는 제가 이들과 접점이 있기는 좀 힘듭니다.


직접 여신 승인 내기도 만무하고 PF, 브릿지론도 저랑은 관계가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양건영을 심사 대상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인수금융 때문입니다.


2022년으로 기억하는데 이들이 고려종합물류라는 회사를 인수한다며 허접한 IM 자료를 들고 온 지점장이 있었죠.


딜 구조 파악은 하나도 안 되어 있고 그냥 안전한 건 같으니 승인을 부탁한다는 말을 대충 했습니다.


그러고는 심사역은 패싱하고 임원들과 자기 동기들인 팀장들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가더군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으로 일을 일로 풀려고 하지 않고 라인 타고 들어와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전투 모드로 전환했습니다.


나이도 어린놈에게 제대로 한번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하면서 후배 심사역을 도와주기 시작했죠.


없는 시간 쪼개서 IM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기존과 다른 것이 하나 보이더군요.


그것은 다름 아닌 인수금융 담보로 채권단에 제공하는 것이 바로 피인수 기업의 예금과 부동산 일부라는 사실.


일전에 인수금융을 독학하면서 인수금융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이 '배임죄'성립 여부와 'LBO'에 대한 사전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을, 책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관련 판례도 찾아보고 해외 사례도 찾아보고 암튼 이것저것 조사하다 보니 내린 결론은 단 하나.


인수 주체인 범양건영은 피인수기업의 물류창고 부지가 욕심나서 이 딜에 참여했다는 것 하나. (개인적 의견임)


두 번째로는 관련 기업의 현금 및 부동산 자산을 이용해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해당 기업을 인수하려 했다는 것이 두 번째 결론이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본인들 돈이 투입되기는 해서 완전 공짜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두 번째였는데 이게 배임죄로 성립된다면 해당 인수금융 딜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것과 그럴 경우 해당 딜에 채권단으로 참여한 금융기관의 자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당 내용을 전달하니 '심사역이 변호사도 아니고 법적인 문제까지 검토하냐?'는 황당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임원들에게 호소하더군요.


이번에는 쉽게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위에서 지시하시면 딜 승인은 하겠다. 다만 배임죄 성립 여부 문제는 외부 법률자문을 받아 심사사에 포함시키는 것이 앞으로 책임소재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멘트를 했습니다.


이후 노이즈가 꽤 있었지만 협박 (?)이 먹혔는지, 겁이 났는지 꼬리를 내리더군요.


해당 지점장은 제 흠집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여기 동조한 지점장 동기 심사팀장은 '배임죄까지 이야기한 것은 과다 해석이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죠.


사실 당시에는 조금 괴롭기도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맡은 건도 아니었고 후배 심사역을 도와주다가 욕을 먹었기 때문이죠.


또 승진을 앞두고 있는 단계였기 때문에 '몸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망할 기업은 망한다'라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 판단이 옳았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죠.


저는 그걸로 된 듯.


...


회사를 떠났지만 기사를 보고 그때 일이 생각나서 후배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했던 판단이 옳았다.'


힘든 시간만큼, 들인 노력만큼, 옳은 일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해당 건을 추진했던 지점장과 간신배들은 범양건영의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P.S :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일전에 썼던 '인수금융과 차입매수'에 기재하였으니 참고.


https://m.blog.naver.com/dulri0000/22264401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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