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무언가를 얻는 것보다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 더욱 어렵다. 내가 쥐고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꼭 쥐고 있던 주먹을 펼쳐보았을 때, 이미 그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겐 아버지가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가 떠난 지 곧 100일이 다 되어간다. 유난히 아버지가 생각나는 날이면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동영상을 재생하고, 그의 미소를 볼 수 있는 사진을 꺼내 보곤 한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잠이 들면 꿈이라도 꿀까 싶어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아버지를 꿈에서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년 5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투병기간이었다. 의사로부터 기대여명이 한 달 남짓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버지는 9개월을 더 살다 가셨다. 병세가 깊어지며 아버지는 웃는 날 보다 무표정으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식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몸이 무너져내리는 와중에도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온전히 지켜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한없이 세상이 미워지다가 결국 의미 없는 질문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실은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죽음과 삶을 분리하지 말 것. 가족을 간병하는 일이나 투병하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죽음이 삶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아버지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결국 그 고통의 끝이 죽음이었을 때, 처음엔 참 허무했다. 예상했던 죽음이었고 준비해야 했던 죽음이었지만 그래도 허무했다. 숨결 없이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감이 없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다. 나를 울린 것은 아버지의 양팔에 가득한 멍 자국이었다. 수많은 바늘이 거쳐간 아버지의 팔은 온통 멍으로 가득했다. 바늘이 남긴 짙은 멍 자국은 아버지가 살고자 했던 흔적이었다.
과거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생각했다. 아버지의 상실을 겪은 뒤 나는 내게서 죽음을 지우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일지라도 그것은 내 의지 밖의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에 어떤 근거도 들지 않기로 했다. 한 가지 변함없는 생각은 아버지가 내게 그래 주었듯 나의 몸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도 나 역시 나의 아이에게 우산을 씌워주겠다는 것이다.
올해 벚꽃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꽃잎이 나뭇가지 끝에서 생명을 틔워내는 순간에도,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에도 한결같이 아름다웠다. 아버지가 머문 세상의 마지막 모습은 꽃이 가득한 봄날이었다. 아버지가 꽃길을 밟으며 떠났을 것을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버지가 떠난 봄날은 가고 이제 무더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게 봄이 떠나고 여름이 왔다. 봄에 떠난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요즘 견디기 힘든 더위를 느낄 때면 아버지 생각이 짙어진다. 이 더위를 아버지는 어떻게 표현하고 이겨냈을지 궁금하다.
내가 만약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이 모든 것이 긴 꿈이었다면 난 아버지에게 애썼다는 말도 어떤 위로도 건네지 않고 그저 아버지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렇게 나의 온기와 마음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나의 탄생과 성장에 건네준 따스한 눈빛이 내가 살아가며 마주한 고난에 큰 힘이 되었다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부재는 내게 큰 상실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그 고마움으로 아버지와 진한 포옹을 나누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