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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빛 Nov 02. 2021

4. 뇌전이 종양, 이제 안녕

다시는 보지 말자

 “콧구멍이 커서 절개 안 하셔도 되겠네.” 환자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신경외과 교수님은 가벼운 농담을 하셨다. 뇌하수체 제거를 위해 코를 통해 내시경으로 수술을 진행하는데 내시경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이비인후과에서 코를 살짝 절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수님은 수술 경험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버지를 다독여 주었고 이어 말씀하셨다. “상황이 썩 좋지 않으니 수술 최대한 빨리하시죠. MRI 찍은 지 이제 1년 되었는데 1년 만에 종양이 이렇게 크게 자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모양으로 보아도 의심되고요. 제가 외래진료 끝나고 5시 이후에 수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농담을 건네던 익살스러운 신경외과 교수님의 모습은 금세 진지한 모습으로 변했다. 외래가 끝나자마자 수술을 해주시겠다니 그의 체력이 존경스러웠고 그의 책임감에 마음이 느꺼워졌다. 실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아버지의 수술이 신속하게 잡혔다.

      

 뇌하수체에 자리 잡은 종양은 조직검사 결과 역시나 악성종양이었고 이에 아버지의 뇌하수체는 제거되었다. 이미 MRI로 종양의 모양이나 크기를 봤을 때 악성일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양성일 경우 뇌하수체를 보전할 수 있다기에 내심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인 뇌하수체를 제거할 경우 호르몬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 문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몸을 갉아먹는 암이 미치도록 미웠다. 뇌하수체 제거 수술은 예상 시간보다 빠르고 안전하게 끝이 났다. 수술이 끝난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이송되었고 요붕증(비정상적으로 소변을 다량 배설하는 병)과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한껏 긴장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아버지에게 큰 부작용은 찾아오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온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마신 물이 여태 마신 물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물도 마실 수 없는 금식의 시간이 길어지자 아버지는 극심한 갈증을 느꼈고 이에 중환자실 간호사가 거즈에 물을 적셔 입에 물려주기도 했다. 거즈가 머금고 있는 물을 빨아먹으며 갈증을 달래며 버틴 끝에 허락된 적은 양의 물은 아버지에게 짜릿한 달콤함을 선물했다. 물 한 컵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삶이라니. 만약 암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익숙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될 때 우리는 뒤늦게 비로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남은 삶에서 이 깨달음을 잊지 않으며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다짐했다.     




 뇌하수체 제거술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이어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첩첩산중이었다. 애초 30회로 진행하려던 방사선 치료는 폐에 자리 잡은 암이 방치되는 것을 염려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의 의견에 따라 16회로 축소되어 진행되었다. 빼곡히 채워져 있는 방사선 치료 대기 명단에 아버지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곳엔 부축을 받으며 치료실로 들어가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종종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수많은 사연이 모이는 그곳은 슬픔과 희망의 냄새로 얼룩져 있었다. 대기석에 앉아있던 아버지의 이름이 호명되고 아버지가 방사선 치료실에 들어가자 두꺼운 문이 굳게 닫혔다. 파란 가운을 입은 의료기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버지의 치료는 대개 3분에서 4분 내로 종료되었다. 그렇게 주말을 제외하고 약 3주 동안 매일같이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눈사람 모양을 하고 있던 종양은 길거리에 떨어져 밟힌 나무 열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종양의 중심이 터져 흩어져 있는 모습을 하다가 치료가 완전히 끝났을 때는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난한 치료의 끝에 실명이라는 부작용도 다행히 아버지를 비켜갔다.

    

 방사선 치료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해가 바뀌어 있었고 우리는 겨울의 끝자락에 와있었다. 그 시간 동안 뇌에 전이된 종양은 사라졌으나 아버지의 우측 가슴을 파고든 폐에 자리한 암은 커져 있었다. 의학지식이 부족한 내가 보더라도 아버지의 PET-CT나 X-RAY 사진은 심각해 보였다. 오른쪽 폐의 절반이 암으로 덮여 있었고 반대쪽 폐에도 여전히 희멀건 무언가가 보였다. 이미 표적치료제에는 모두 내성이 온 상황이었다. 


 우리는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 호수를 건너고 있었다. 자칫 신중하지 못한 발걸음을 내딛으면 금방이라도 어둡고 차가운 호수 속에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만 했다. 그곳이 비록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 호수 위라 하더라도 다시금 단단한 지반 위에 올라설 때까지 걷고 또 걸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얼음이 녹아버리고 우리는 깊은 호수에 삼켜질 것이다. 그러나 느린 걸음이라도 걷다 보면 분명 포근한 대지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좋은 약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아직 주치의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운동화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다시금 신중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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