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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은빛 Nov 08. 2021

5. 언제나 당신 곁에

 표적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기고 임상 치료에 들어갔으나 차도가 없었다. 임상 치료를 위해 아버지는 하루에 수십 알의 알약을 삼켰으나 결과는 무의미했다. 효과 있는 약제가 투여되지 않은 탓에 아버지에게 한차례 고비가 왔다. 가정용 의료기기로 아버지의 바이털 사인을 확인하니 맥박이 60부터 150까지 널을 뛰고 손발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아버지는 119 구급대의 도움을 받아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쇼크가 왔던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고비를 무사히 넘겼으나 이 일을 계기로 아버지는 죽음에 대해 강렬한 공포를 느꼈고 죽음을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는 간절하게도 살고 싶어 했고 나 역시 아버지의 삶을 간절히 바랐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의 입원 기간이 한 달쯤 되었을 무렵 담당 교수님은 퇴원이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심낭(심장을 싸고 있는 막)으로 전이된 암이 아버지의 심장에 무리를 주고 있고 이로 인해 암이 아닌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퇴원해서 가정으로 돌아가기에 환자의 상황이 너무 위험하고 가정에서 간호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병원을 떠나게 둘 수는 없다고 하였다. 119구급차에 실려 온 그날 밤이 아버지가 집에서 머문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집에 남겨진 아버지의 물건들을 바라볼 때면 그것들로부터 쉬이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곧 어머니를 도와 이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겠구나. 마음을 굳게 먹어보지만 아직은 아버지의 물건이 치워진 공간의 여백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는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항암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몸 상태가 되자 우리에게는 다시 선택지가 주어졌다. 도세탁셀이라는 약물로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다시금 회복된 체력으로 남은 삶을 정리하며 살아갈 것인지. 어느 쪽이든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담당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불러내어 말씀하셨다.     


 “우리가 치료의 득과 실을 놓고 보았을 때, 지금 항암은 잃을 것이 많아요. 독한 약이고 힘든 항암이에요. 최악의 경우 항암치료 도중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지금으로선 항암이 효과가 없을 경우 한 달, 항암이 효과가 있다고 해도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항암에 대한 의지가 강하시더라고요. 꼭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약제를 투여한다고 해도 70% 정도의 양만 처방을 할 예정이고 몸이 정말 많이 망가지는 치료기 때문에 저는 따님이 아버지를 설득해 보았으면 해요.”     




 푸르른 6월이었다. 봄의 생명력을 머금은 모든 것들이 곧 다가올 여름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는 생명력이 넘치는 6월이었다. 벚나무의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붉은 열매가 맺히고 잎사귀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은 벚나무에게 해사한 인사를 건네는 그런 계절이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 속 아버지의 생명은 시들어 가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교수님께 아버지를 설득해 본다고 하였다. 병상에 누워 보내기엔 초여름의 녹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나는 아버지가 무리한 치료를 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구토, 구역, 탈모 등 세포독성 항암치료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치료로 인해 얻는 것보다 오히려 잃는 것이 많을 수도 있다는 말에도 아버지는 치료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환자의 의견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전문의의 소견도 가족들의 조언도 모두 가치 있는 것이지만 환자의 의견보다 우선할 수는 없기에 아버지의 세 번째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혈액종양내과 간호사 선생님이 니트릴 장갑을 끼고 갈색 비닐에 쌓인 주사약을 가지고 왔다. 아버지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치료 동의서를 받은 뒤 주사약이 일정하게 들어가도록 하는 기계 조작을 마치고 간호사 선생님은 떠났다. 아버지는 잠이 오지 않는 상황임에도 두 눈을 꼭 감은 채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옆에서 항암치료 안내 책자를 읽다가 슬며시 아버지의 손을 잡아 보았다. 두툼한 손에 온기가 서려 있었다. 따듯한 아버지 손의 촉감이 그리워질 때면 나는 이 순간이 떠오르겠구나.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결과적으로 항암 약은 아버지에게 효과가 있었다. 항암 이전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다거나 항암을 한 이후에 사람이 산 송장이 되었다는 후기가 많았던 약이었다. 곧 다가올 부작용에 노심초사하며 시간을 보냈으나 다행히도 아버지에게 근육통이나 식이장애와 같은 큰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히려 아프기 전보다 음식을 많이 드셨다. 병원 밥에 질린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매일같이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나르기 바빴고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가 드시고 싶다는 음식을 포장해서 나르기 바빴다. 나는 한 그릇을 채 비우기 힘든 막국수도 아버지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한 그릇을 금세 뚝딱 비웠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아버지가 환자 침대 식탁 위에서 막국수를 맛있게 먹는 그 모습과 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한입 가득 국수를 먹고 만두를 베어 먹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그리운 날이다.     


 돌이켜보니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대 시간을 정해 번갈아 가며 한 시도 아버지 곁을 비우지 않았고 아버지는 병원 식단에 항상 어머니가 만든 세 종류 이상의 반찬을 곁들여 먹었다. 휴가를 낸 평일이나 주말이면 아버지가 먹고 싶다는 바깥 음식을 사서 날랐고 간식을 무척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우리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아버지의 병원 냉장고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병원 냉장고에는 세 종류 이상의 과일과 주스, 식혜, 옥수수 등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막내 여동생은 팥빙수가 먹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에 뜨거운 여름 햇살을 맞아가며 땀을 뻘뻘 흘려 팥빙수를 사 오기도 했다. 책에서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아버지의 마음에 힘이 되길 바란다며 책의 한 구절을 공유하기도 하고 첫째 여동생은 노트북에 영화를 담아 건네기도 하고 아버지의 요구사항을 지체 없이 바로바로 처리해 주었다. 나는 우리 가족이 각자의 위치에서 온 힘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런 노력은 아버지 마음에 생긴 큰 구멍을 모두 메우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아버지의 곁에 있었다. 곁을 잠시도 비우지 말라던 아버지의 부탁을 우리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남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우리는 아버지의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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