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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Oct 24. 2024

너도 어쨌든, 5학년 2반 박재우니까

11. 있는 모습 그 자체로, 관용


이건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교실에서 느꼈던 부끄러운 착각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박아두었던 지레짐작과 편견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다.


교직에 발을 들인 이래로 나는 한 번을 제외하고 늘 통합학급을 담임을 맡았다. 통합학급은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일부 수업을 또래 아이들과 함께 원교실에서 듣는 것을 뜻한다. 내가 특수교육에 정통하거나 남다른 뜻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우연히도 특수교육학생이 많은 학교에 근무했다는 외부적 원인이 나를 통합학급 담임으로 만들곤 했다.


그 해 5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재우를 만났다. 재우는 특수교육이 필요했지만 모든 수업을 원교실에서 듣는 완전통합 학생이었다. 국어와 수학을 포함해 전반적인 학습 수준이 또래보다 이삼 년 정도 늦었고 신체발달도 더뎠다. 수업시간마다 혹시나 혼이 날까 채우지 못한 교과서를 숨기듯이 가리고 있는 재우가 안타까웠지만, 따로 특수반에 가겠다고 신청하지 않는 이상 담임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같은 반 아이들도 재우가 느린 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재우가 원만히 지낼 수 있었던 이유에 아이들의 호의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필연적인 삐걱거림이 생겼다. 친구랑 함께 짝활동이나 모둠활동을 해야 할 때였다. 특히 빠릿빠릿하게 퀴즈 정답을 맞혀야 하거나 모둠원이 협력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때는 재우도, 다른 아이들도,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곤란해지곤 했다.  


재우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선생님, 왜 박재우만 아무것도 안 해요?"



다른 아이들도 고작 열두 살이었다. 재우를 남겨서 시키고, 다른 아이들을 독려하며 어찌어찌 끌고 갔지만 조금씩 터져 나오는 불만은 막을 수 없었다. 봄여름을 지나 가을이 왔을 때 나는 통합학급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던 '다양성의 수용과 조화의 가치'를 포기해야 하나 갈등이 됐다. 현실에서의 한계는 함께하는 경험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자꾸 튕겨나갔다.


앞으로도 재우가 어려워할 것이고, 다른 아이들도 재우랑 같이 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내 멋대로 정답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생각이 지레짐작이 낳은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계기는 아주 순간이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재우를 여전히 '5학년 2반 박재우' 그 자체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고 나서였다.






두 가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첫 번째는 수학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수학놀이를 하는데 이번 주제는 분수의 곱셈이었다. 두 사람이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로 분수를 만들어 곱한 후 값이 큰 사람이 이기는 규칙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진행이 안될 텐데. 그나마 수학을 좋아하는 재우였지만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우리 반이 총 스물세 명이라 어차피 한 명이 남으니, 어쩔 수 없지만 재우의 짝은 선생님이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말이다.


그런데 마침 그날 한 명이 결석해서 스물두 명의 짝이 딱 맞았다. 그렇다면 재우도 반드시 짝꿍과 이 놀이를 무사히 끝내야 했다. 랜덤 뽑기로 나온 재우의 짝은 민지였다. 교실 뒤편에 자리 잡은 재우와 민지는 놀이를 시작했다. 수학에 '놀이'가 붙으면 그렇게나 즐거운지 아이들 왁자지껄 웃으며 주사위를 던졌고 재우랑 민지도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이십 분쯤 지나자 놀이가 끝난 팀들이 우수수 앞으로 몰려나왔다.



"선생님, 제가 이겼어요. 한 판 더 해도 돼요?"



묻는 아이들 틈에 재우와 민지는 없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칠 때까지 재우와 민지는 처음 자리에 그대로 앉아 바삐 손가락만 움직였다. 다른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에도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재우와 민지도 누군가 끝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몰랐다.



"민지랑 재우, 지금까지 한 부분까지만 해서 점수 낼까? 누가 점수 더 높니?"


"아.. 지금까지는 저요"



민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그런데 재우가 문제 푸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이제 두 문제 남았는데.. 끝까지 해봐도 돼요?"



그런데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 아닌가. 민지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확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느린 게 무엇이 대수라고, 잘만 하던 놀이를 중단하려고 했는지. 조급한 마음이 드는 건 내 몫이었을 뿐 민지는 재우가 천천히 풀든, 고민을 하든 있는 그대로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래요, 계속하세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민지는 놀이를 다시 시작했다.  



"야, 재우야 너 차례야. 얼른 주사위 던져"



딱히 양보를 하거나 상냥하게 배려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얼마나 지났든 친구의 몫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담담한 민지의 표정에서 수업 전 재우의 짝을 배제하려고 했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재우의 기회를 빼앗을 뻔했다.






두 번째는 사회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창 한국사를 배우고 있는 터라 소단원이 끝나면 배운 내용으로 퀴즈를 했다. 이번 단원 퀴즈는 옆반 선생님께서 아이들 반응이 무척 좋았다며 추천해 주신 자료였다. 단, 모둠별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퀴즈는 네 명이 한 모둠이 되어 각각 한 개의 힌트를 보고 그 힌트를 모아 답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이 특히 재미있어했던 포인트는 네 개의 힌트가 화면에 동시에 등장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즉, 자신이 맡은 부분의 힌트를 반드시 외우고 친구들에게 공유해 줘야만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몸풀기로 연습 문제를 풀었다. 아이들은 1초 만에 사라지는 힌트를 외우기 위해 화면에 두 눈을 고정하고 초집중했다. 1초가 지나자 모둠별로 힌트를 공유하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그런데 역시나 재우가 속한 모둠에서 짜증 섞인 원성이 들려왔다.



"야, 박재우 너 안 외웠어?"


"...."



재우는 곤란한 상황에서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했다. 평소에도 승부욕이 강한 편인 준서가 답답하다는 듯이 재우에게 다그쳤다.



"아니 재우야, 네가 봐서 우리한테 알려줘야지 답을 찾지!"


"재우야, 왼쪽 아래 있지. 거기 나오는 글자를 네가 보고 알려줘야 해"



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문제도, 그다음 문제도 재우는 화면의 힌트를 외워서 말하지 못했다. 점수가 쑥쑥 올라가는 다른 모둠을 바라보는 재우네 모둠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쩔 줄 몰라하는 재우를 둘러싼 험악한 분위기가 커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부터 나오는 문제는 준서나 다른 모둠 친구가 재우 것까지 대신 보고 말해도 된다고 규칙을 바꿀 계획을 했. 재우의 역할이 사라져도 어쩔 수 없었다.



"야, 박재우. 너 쉬운 건 외울 수 있어? 숫자 같은 거나 두 글자짜리"



그런데 갑자기 준서가 재우에게 건네는 말이 들려왔다.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재우가 보였다. 준서는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재우가 이거 외우는 거 어려워하는데요. 혹시 선생님께서 외우기 쉬운 힌트 위치 미리 알려주실 수 있어요?"



"어?"



"재우가 쉬운 거 외워서 저희한테 알려주면 될 것 같아요"



재우의 눈높이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재우도 할 수 있대요"



재우의 역할을 준서에게 넘기려고 했던 내 판단이 오만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재우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이해했고, 그 범위만큼은 감히 침범하지 않으려 했다. 재우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도,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재우를 있는 그 자체로 이해해주고 할 수 있는 만큼 기다려주는 것. 아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선생님, 왜 박재우만 안 해요?'


돌이켜보면 이 말해석 틀렸다. 아이들이 말하는 '왜 박재우만 안 해요'는 재우가 하지 않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박재우도 할 수 있는데 왜 안 해요'에 가깝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교실을 넘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조급함에 쫓겨 다른 이의 기회를 빼앗지는 않았는지, 내 몸이 좀 더 편하자고 남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억지스러운 합리화를 한 적은 없는지,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 떠올려본다.


다른 이를 있는 그 자체로 바라봐주는 시선.


기꺼이 받아들이되 선을 넘지 않는 아이들의 상냥한 마음에서 또 하나 배운다.





[관용] 너그럽게 이해하고 서로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인정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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