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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Apr 01. 2024

대학원생이 학내 정신건강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았다(2)

정신건강 관련 기관의 문이 보다 가벼워지기를 바라며

    조금 긴장된 마음가짐으로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반겨주셨다. 사전에 제출했던 MMPI 검사지 외에도 뇌파 검사, 스트레스 검사를 추가로 받았다. 검사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기기로 아주 간단한 작업을 수행하고, 그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뇌파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측정하는 원리였다. 검사가 모두 끝난 후에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시간이 제법 지나버렸지만, 당시 들었던 이야기들이 큰 힘이 되었기에 기억나는 조언들을 위주로 적어보려 한다.


    우선 검사 결과, 정식 진료가 필요한 정도의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스트레스(정확한 항목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수준이 기준값보다 약간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MMPI 검사 결과지에는 여러 항목별 수치가 선 그래프로 나타나 있어서 각 수치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전체 그래프가 특정 패턴을 보이게 된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그래프가 이곳에 찾아오는 많은 학생들의 그래프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고 하셨다. 주로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자신이 낸 결과물에 불만족스러워 하는 경향이 높으며, 자기비판적 성향이 강한 학생들에게서 이런 패턴이 자주 나타난다고 하셨다. 


    나의 고민들과, 이곳에 찾아오게 된 계기를 차분히 들으시던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나의 뇌가 한 차례 큰 고통을 경험했고, 이로 인해 겁을 먹은 상태와 같다는 것이었다. 부담감과 큰 압도감을 느꼈던 경험들이 뇌에는 일종의 공포를 느꼈던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겁을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유사한 상황이 오면 뇌는 위험한 상황을 피함으로써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이 기억 때문에 회피하고 싶을 때, 정서적으로 잘 지탱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 너는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하는 자리에 있어. 네가 지금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그렇지만 지금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일만, 예를 들어 타이핑을 치거나 문헌 하나의 초록을 읽는다거나 하는 정도의 일부터 시작해보자."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연습을 하고 피하는 경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야 뇌도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또 우리가 좋아하는 일은 - 예를 들어 목욕을 할 때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이 신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들어가는 것처럼 - 어느 정도의 고통을 참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지금 나에게 고통을 주는 이 일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인지하자. 그러면 뇌도 고통을 참아보려고 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마치 운동을 하며 신체의 근육을 찢는 것과 같아서, 뇌의 근육도 한 번에 많은 범위를 찢으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이제는 나름 오랜 시간이 지나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이밖에도 따뜻한 조언들을 듣고서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상담실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나오기 직전 가방을 들어 건네주시던 선생님께서는 가방이 너무 무겁다며 이것이 마음의 짐을 나타내는 같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비슷한 고민을 부모님께 털어놓을 때면 부모님께서는 내게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하시곤 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일의 끝이 저만치 멀어진다고. 그저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는 소위 기계적으로(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표치까지의 계획된 작업들을 반복 수행하면 되지만, 그 과정에 새로운 부가 목표 : '잘해야한다'가 더해질 때 그것은 곧 주목표로 전복되어서 내가 정말 끝내려고 했던 일들을 한껏 부풀려놓는다. 내가 하는 일이 보다 가치를 담은 작업, 나의 포부에 걸맞는 작업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내가 끝을 맺는 것을 방해하고, 결국 본래의 목표보다 훨씬 미달한 결과물만이 남는 것 같아 항상 속이 상했다. 하지만 조언대로, 우선 끝을 맺고 난 후 돌아보며 추가하거나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이 보다 수월하고 또 나에게 더 맞는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대로 실천하고 성공해내는 것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글 역시 초고를 작성하고 발행하기까지는 몇 개월의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럼에도 그 사이에 나를 더 이해하고 성장하였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작지만 분명한 확신이 생겼다.


    끝으로 정신건강 관련 기관의 문턱이 지금의 추세대로, 또는 그보다 빠르게 낮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인다.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기관을 방문하는 것도 개인이 취할 수 있는 노력 중 하나이지만, 제 손으로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민과 망설임이 필요하다. 정말 힘든 사람은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든다 하더라도 지금 일상을 살기에도 버거워 엄두를 내지 못할 수 있다. 그들을 위해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문턱을 조금 더 낮추고, 손잡이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드는 일이다. 적어도 마음 먹은 사람들이 문을 열지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이들에게 '한 번 가볼까'하는 마음이라도 들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한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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