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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육쭈꾸미 Feb 09. 2022

도박 중독 아빠와 짠돌이 딸 (1)

처음 만난 도박 중독자.


 주식 열풍이 분다. 



 주변 친구들이 전부 코인 주식에 손을 대고, 누구는 벌었다더라 누구는 잃었다더라 소문이 퍼진다. 경제관념이 짜디 짠 22살 대학생,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투자가들은 존버가 답이라 말한다. 존버는 내 장점이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고 몇 달 전 우량주에 투자했다. 아모레퍼시픽, sk텔레콤, 신라호텔에 분할 투자를 했다. 하지만 장이 안 좋아 매일 파란불이 떴다. 결국 sk텔레콤은 4000원의 손해를 보고 팔았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과 신라호텔은 코로나가 끝나면 오를 거란 희망을 갖고 아직 안 팔았다.



 22살의 어린 내가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얻은 것은, 다신 안하리란 다짐이었다. 개미는 주식의 변곡성을 이해할 수 없다. 오로지 운과 타이밍이다. 오르면 좋지만, 물리면 슬프다. 절망스럽다. 칼에 찔린 것처럼 고통스럽다. 차라리 꾸준히 작은 돈을 모으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



 주식은 어차피 잃는 싸움이기 때문에.



 내가 주식을 시작한 이유는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는 젊은 대학생 시절부터 도박을 즐겼다. 취업을 한 뒤 스케일이 커져서 주식을 시작했다. 아빠는 주식을 투자가 아닌 투기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이름바 개잡주를 사들여 무조건 오를 거라 물을 떠놓고 비는 형식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잃기만 했다. 잃은 돈만 1억이 넘는다. 가족에겐 맛있는 음식 하나 사는 것도 아까워하는 아빠가, 인터넷상에선 어떻게 저런 큰돈을 잃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아빠를 이해해보고자 주식을 경험했다. 그리고 결론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니, 애초에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아빠가 미워서.






 2년 전 이맘때쯤 아빠가 20년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이유는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회사의 방침이 바뀌어 나이 든 사람에겐 정리해고를 실시했다. 하지만 아빠는 해고가 아니라 한 단계 낮은 현장직을 제안받았다. 월급은 많았다. 아빠 또래의 상사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아빠는 회사를 덜컹 그만뒀다. 단 삼일의 고민 끝에. 일방적인 통보였다. 자존심이 상해서 회사를 그만뒀다는 것이다.



 난 그때 막 20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했고, 오빠는 군대에 막 제대를 했을 때였다. 이제 행복해지나 싶었는데 아빠가 회사를 그만뒀다. 엄마와 나, 오빠는 그래도 아빠를 응원했다. 20년 동안 회사 다녔으니 수고했다. 힘든 회사는 그만두고 잠깐 쉬는 것도 좋다. 그렇게 말했다. 아빠와 단둘이 있을 때도 그랬다.


 

 "아빠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좋아했다. 정말 제2의 인생이라며, 다시 살아보겠다고 그랬다. 그때는 아빠가 좋았다.



 아빠는 퇴직금의 일부를 받고 한적한 지역에 놀러 갔다. 약 6개월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투기를 했다. 그 돈을 몽땅 잃고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그래도 가족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구나 살면서 돈을 소비한다. 엄마는 그것을 아빠의 취미 비용으로 보았다. 아빠는 투기 말곤 즐기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퇴직금을 잃은 것은 마지막 기회였고, 더 이상 그런 여윳돈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에게 다신 하지 않을 거란 약속을 받아냈다. 오빠와 나도 그런 말을 했다.



 이젠 엄마와 아빠의 노후를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쓸데없이 잃는 돈이 생겨선 안 된다. 이게 마지막이다. 다신 하지 마라. 만약 다시 아빠가 도박을 한다면, 그땐 우리가 어떻게 할지 모른다.



 아빠는 약속했다. 다신 하지 않기로. 



 아빠가 재취업한 곳은 겨우 한 달 생활비의 월급이었다. 장점은 집과 가까웠고 일이 그나마 덜 고단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편한 일자리를 다니는 대신에 절대 딴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엄마와 아빠는 가진 게 없다. 생애 통틀어 필사적으로 얻은 것이 자식과 집 한 채. 만약 아빠가 투기를 통해 또 돈을 잃는다면 겨우 남은 집 한 채마저 팔아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우리 가족은 벼랑에 내몰렸다. 누군가 큰 병에 걸리거나 다치거나 사고를 친다면, 그대로 무너저 버릴 위태한 가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사이가 좋았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알바와 근로를 해서 돈을 벌었다. 단 한 번도 부모에게 용돈을 받지 않았다. 대학생으로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노력도 했다. 다행히 내가 입학한 곳은 국립대학이라 전액 장학금이었고, 오빠도 그랬다. 나는 돈을 차금차금 저금하고, 여유 자금은 가족을 위해 사용했다. 이른 나이에 국민연금을 가입하고, 적금 계좌도 몇 개씩 만들었다. 오빠와 나는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일이 없었다. 이대로 엄마와 아빠가 잘 준비한다면 노후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22살의 겨울. 1월 중반.

 아빠가 나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가족 몰래 대출을 받았다고 실토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2000만 원. 



 헛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잃었냐고 묻자 1300만 원.



 그러고서 하는 말이,



 "갚아줘. 다신 안 할게."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다신 안 할 거라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몰래 대출받아 잃은 사람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서 갚으라고. 절대 안 갚아줄 거라 선 그었다.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또 '자존심이 상했다'



 다음 날, 내가 아빠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대출을 왜 했냐고 묻고, 다신 하지 말자고 말했다.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더니, 들려오는 대답에 혀를 내둘렀다.



 "안 할 생각이었는데, 너네 엄마가 안 갚아주길래 자존심이 상해서 또 투자했다! 난 모른다! 난 답이 없는 사람이다. 난 답이 없다!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아니면 갚아주던가!"



 그 다정하고, 내가 사랑하던 아빠가 맞는가. 

 본인은 답이 없어서 나머지 돈도 투자할 거라 말하는 아빠가 제정신인가. 그럼, 어제 그리 간절하게 말하던 약속과 사과는 모조리 거짓말이었나. 내가 나머지 700만 원도 다 잃을거라고 말하니, 자신은 답이 없으니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발악했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났다. 인생이 시궁창으로 향하는 인간을 처음 만나봤다. 나는 고작 22살의 대학생이었고, 도박으로 인해 인생을 망치는 사람을 최초로 마주한 것이다. 영혼이 바뀐 것처럼 전혀 딴사람이 되어있었다. 정신병이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언제 증상이 이토록 악화되었는지. 가족이고 뭐고 눈에 보이지 않고, 돈을 달라 울부짖는 저 악마는 누구인가.



 난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울면서 엄마랑 대화해보자고 했다. 아빠를 치료하고 싶어서. 달라진 아빠를 믿고 싶지 않아서. 갚을 수 없는 빚을 또 늘리는 아빠를 막고 싶어서. 시궁창으로 돌진하는 아빠를 버릴 수 없어서. 가족이라서. 딸이라서. 울면서 말했는데 아빠가 눈을 빛내며 나를 훑어봤다.



 "엄마가 대화하자고 하더냐?"



 난 그 문장에서 무엇을 느꼈나. 나를 딸이 아닌 도구로 보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돈을 갚아달라고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수단' 

 감정적으로 협박할 수 있는 '어린것' 

 어쩌면 빚을 대신 갚도록 시킬 수 있는 '순진한 것'



 내가 아빠에게 그렇게 비치고 있구나. 그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가 울컷 치솟았다. 



 아빠가 미쳤다. 

 돌아버렸다.

 이건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아빠에게 빚을 어떻게 갚을 거냐고 악바리를 쓰며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알아서 갚을 거라며 짜증을 냈다.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말란다. 엄마는 아빠에게 알아서 갚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내가 울면서 설득하는데, 아빠는 방에서 흥겨운 음악을 들으며 투기를 했다. 사각 안경에 모니터의 하얀 화면이 비치고, 굳게 다문 입술은 강한 집념이 묻어 나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는 오로지 파랗고 빨간 숫자를 인식하는데 그쳤다. 그토록 편안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우는 걸 멈췄다. 



 부모가 자식을 수단으로 보고,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2주가 걸렸다. 그날 이후 나는 아빠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혼자 속을 삭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참았다. 아빠는 정신병자라는 점과 그것을 치료해야 한다는 점에 집중했다. 아빠가 하는 모든 행동에 상처받아선 안 되고, 휘둘리며 안 되며, 냉정하게, 잔인하게 응시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도박 중독 환자에 대한 글을 읽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안되면 떨어져 살 수밖에 없다는 것도. 난 2주 동안 모든 정리를 마쳤다.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아빠는 돈을 향한 아귀였다. 2000만 원이라는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이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사람이었다. 그걸 위해 어떤 거짓말도, 책임질 수 없는 약속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과 짐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쌓아온 화목한 가정도, 빚을 위해 깨트릴 사람이었다. 우리의 평화와 사랑 따위 안중에 없었다. 돈을 주면 좋은 사람, 돈을 주지 않으면 괘씸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인정하자, 나 역시 변했다. 엄마와 오빠는 애초부터 냉정했다. 내가 막내라서 잘 몰랐을 뿐이다. 하지만 아빠는 나마저 이렇게 만들었다. 가족 모두가 아빠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저 어떻게 할지 추를 매달뿐이었다. 아빠에겐 참 아쉬운 일이다. 눈물을 짜내며 협박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 구성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확히 2주 후, 아빠는 우리에게 나머지 돈도 잃었다고 고백했다.



 정말로 미안하고 용서를 빈다.

 다신 안 할 거다.

 이번 한 번만 갚아달라.

 정신 차리고 치료받을 거다.

 가족이라서 말한다.

 제발 빚을 갚아달라.



 그 자리엔 엄마, 오빠, 내가 앉아있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멀쩡한 사람이 어찌 이만큼 망가질 수 있는지. 전형적인 병자의 모습이라 안타까웠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울고불고 말릴 때, 내 말을 듣고 그만뒀으면 이런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을 텐데. 본인이 어리석은 탓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가정은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이런 악어 같은 몰골에 속아 빚을 갚아줄까? 아니면 사람 아니라고 내쫓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용서를 빌까?

 어떤 확신으로 빚을 갚아줄 거라 믿는 걸까?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는 건가?

 화목한 가정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나?

 인생이 나락으로 처박히는걸 못 느끼나?



 우리 가족은 아빠에게 본인 빚은 본인이 갚으라고 종용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박 중독과 관련된 수많은 글을 읽고 내린 결론은, 도박 중독을 치료하긴 위해서 스스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되지 않는다. 아빠가 몇 달 만에 잃은 2000만 원을 5년 동안 갚으면서 그 돈의 무게를 경험해야 다신 하지 않는다. 누군가 쉽게 갚아주면 무게를 모르고 또 대출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못한다고 떼를 썼다. 그러고는 집을 팔자고 주장했다. 집이 넓다고 말했다. 더 좁은 집으로 가자. 



 아빠 빚 갚자고 집을 팔 수 없다고 말했다. 이건 엄마와 아빠의 유일한 재산이다. 본인 노름 빚으로 가족이 피해 보게 할 수는 없다.



 주말, 평일 저녁 알바를 해서 5년 갚으라 권하자 못한다고 불평했다. 알아서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모른 척했다. 능력이 없다고 대꾸했다. 능력이 없고 못 갚을 걸 알면 왜 대출했냐고 묻자 그땐 벌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잃는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았냐고 묻자, 무조건 벌 줄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아빠가 우스웠다. 전형적인 도박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내가 사랑하던 아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빠는 자신이 망가진 줄 모른다. 대뇌 회로가 오로지 빚과 도박으로 핑핑 돌고 있기 때문이다. 빚을 전부 갚고 나서야 "내가 돌았구나"라고 인정할 것이다.



 가족이 단호하게 돈을 갚아줄 수 없다고 말하자, 그럼 자기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노름으로 빚 얻은 아빠 일자리를 얻어주냐고 화를 내자 입을 다물었다. 알아서 해라. 가족은 그렇게 일관했다. 알아서 해라. 절대로 빚을 갚아줄 수 없다.



 하지만 아빠는 영악했다. 집을 팔던가, 아니면 남은 퇴직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러자 가족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다신 안 하겠다고, 새 인생을 살아보려 하는데 왜 돈을 주지 않냐고 화를 냈다. 



 참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시작부터 이기심으로 점철됐다. 다신 안 하겠다고 약속한 도박. 남은 재산은 얼마 없지만 가족끼리 잘 살아보자고 열심히 살았다. 그런 우리 몰래 대출받고 모조리 잃었으면서 왜 갚아주지 않냐고 화를 내는가? 대출금의 1원이라도 가족을 위해 사용했나? 아니다. 모든 돈을 아빠의 도박으로 탕진했다. 본인 '취미' 생활을 왜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가. 



 그렇게 바락바락 우기는 아빠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두 가지 결말이 보인다고.

 하나는 빚을 갚고 다시 돌아온 아빠, 나머지 하나는.... 








 난 억울했다. 나는 짠돌이다. 적금도 여러 개, 국민연금, 돈은 버는 족족 모은다. 필요한 것이 아니면 절약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안 쓰는 물품은 중고거래로 이익을 남기며, 재활용도 많이 한다. 이런 나에게 아빠의 도박 빚을 갚으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 



 오빠도 짠돌이다. 오빠는 나보다 더하다. 엄마 역시 경제관념이 철저하다. 도박으로 탕진하는 게 버릇인 아빠를 데리고 이만한 집을 마련해냈다. 그런 우리에게 아빠의 요구는 씨알도 안 먹힌다. 우리와 아빠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도박 중독자와 짠돌이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빠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혔다. 회사를 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 종일 누워서 텔레비전만 봤다. 마치 시위하는 듯하다. 돈을 갚아달라고 짜증을 부리는 것 같다. 



 나는 아빠의 정신병이 치료되길 원한다. 그래서 아빠에게 찾아가 배달, 알바 앱을 설치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희망적인 말도 해줬다. 하지만 아빠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일 하기 싫겠지. 2000만 원을 갚을 생각만 하면 정신이 아득 해질 테니. 그게 겁나는 걸 알면서 왜 대출을 했나 싶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가족이 빚을 갚아줄 거라 확신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집이 넓어서 더 좁은 곳으로 이사가고 싶었던 걸까.



 아빠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 나도 아빠를 닮아서, 맺고 끊어내는 걸 잘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여전히 어리석다. 협박이 가족에게 통할 거라 착각한다. 돈이 필요하니 엄마에게 이혼 요구를 하고, 회사를 그만둘 거란 말도 한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지금은 그 속내가 뻔히 보여 웃기기만 하다. 얼마나 일을 하기 싫으면 저럴까. 그러게 대출을 하지 말았어야지. 어쩌겠나. 본인이 갚아야지. 우리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는지 알면 저런 말을 못 할 텐데. 아빠는 화목한 가정을 본인 손으로 망가뜨렸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그는 협박이 통하지 않는 걸 깨닫자, 완전히 입을 닫아버렸다. 그런데도 일을 하지 않고 뻗댄다. 엄마와 오빠는 아빠를 포기한 것 같다. 아빠를 완전히 사지로 내몰아 빚으로 겪을 수 있는 최악을 경험시킬 생각으로 보인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손을 내미는 조력자다. 아빠가 마지막이라는 걸 알고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아빠를 치료할 것이다. 스스로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난 피해자다. 내가 꿈꿔온 가정을 아빠가 부숴버렸다. 그런데 아빠가 피해자 행세를 하니 기가 찼다. 도박 중독 상담 1339에 전화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물어봤고, 아빠랑 같이 치료 센터를 갈 생각이다. 아빠가 무력으로 저항하면 어쩔 수 없지만. 아빠가 내 마음을 잘 알아줬으면 좋겠다. 정말로 아빠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내 진심이 끝끝내 통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아빠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도박 중독자의 결말은 두 가지다.



 치료를 하여 새 인생을 살던가, 모두에게 버림받는 것.



 도박 중독자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사회경험이 적은 22살이 어떤 위로와 해결책을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힘을 실어줄 순 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 변한 과정을 목격했고, 그 잔인한 결과물을 감내하고 있다. 



 나는 예전보다 더 웃으려고 노력한다. 불행한 환경에 매몰되면 안 된다. 내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으면, 나의 사고 나의 행동 나의 행복마저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아빠 때문에 나까지 우울해지면 안 될 노릇 아닌가? 행복 보존 법칙으로, 나는 엄마와 오빠에게 더 좋은 말과 기쁜 일이 생길 수 있도록 애쓸 것이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는 청소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다. 방이 어두우면 불을 켜고, 먼지를 닦고, 쓰레기를 정리한다.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집의 비밀스러운 먼지 구덩이도 오늘 아침에 청소했다.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아빠의 불행으로 인해 우리가 망가질 수는 없다. 



 아빠의 작은 방에 찾아가 설득하고 회유하는 건 나에게 언제나 가슴 아픈 일이다. 의지를 잃어버린 채, 아귀가 되어 처박힌 아빠에게 과거의 모습이 덧씌워진다. 중독이란 증세가 무섭다는 걸 매번 실감한다. 나도 예전에 우울증을 앓은 기억이 있어서 잘 안다. 중독에 빠지면 그것 외엔 아무 생각이 안 든다. 하지만 진심으로 다가오는 조력자가 있다면, 그것은 천운 받은 인생이다. 아빠가 자신의 남은 행복을 꼭 손에 쥐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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