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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육쭈꾸미 Mar 10. 2022

도박 중독 아빠와 짠돌이 딸 (3)

저기요,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해요


 도박 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내가 어리고 순수하고 아무것도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진심을 다해 말해도 통하지 않는다는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진심을 다해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음에도. 가족이라서, 아빠라서 잃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귀가 되었다.


 




 아빠를 위해 알바 자리를 찾아봤다. 요즘 많이 한다는 배달 앱과 알바 앱을 깔아서 먼저 찾아보았다. 나도 알바를 해봤지만, 원하는 만큼 하기 가장 적절한게 배달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운동 삼아서 가볍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날 내가 앱을 깔고 직접 배달 콜도 받아봤다. 알바 자체는 괜찮았다. 아빠가 빚을 갚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나는 아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아빠가 일방적인 빚 통보와 갚아달라는 애원 이후, 며칠 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간 발생한 일은 추후에 적도록 하겠다. 지금은, 우선 지금은. 



 2022년 2월 7일. 22시.



 아빠가 집을 나갈거라 통보했다. 






 도박 중독자는 영악하다. 그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지인에게 고통을 준다. 금전적 감정적 계산을 마무리한 뒤 오로지 돈을 향해 달려가는 아귀이다. 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우리가 갚아줄 마음이 없다는 것과 협박이 통하지 않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아빠에게 가족은 쓸모없어졌다. 허투루 울고 스트레스를 주는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 막심한 손해를 보더라도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그 과정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끄러웠다. 마치 미리 준비한 각본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나갈게!"



 아빠가 그 말을 한 순간은, 내가 열심히 알아본 배달 알바를 소개하던 와중이었다. 배달 알바를 힐끗 보더니 하기 싫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억울하겠지. 그냥 가족이 갚아주면 좋겠는데 자기보고 일을 하라니. 본인은 도박만 할 줄 아는 여린 꽃인데 가족이 그를 정글에 떠밀고 있었다. 증오스러운 거머리들이다. 그래서 그렇게 등을 돌렸을 것이다. 고작 팬티 한 장과 하얀 나시를 입은 채 그토록 초라한 모습으로 나갈거라 떵떵거렸다.


 내가 생각한 해결책은, 아빠 빚을 아빠가 '일부' 책임지는 것이었다. 절반 정도를 다른 일을 통해 책임지고 나머지 절반을 가족이 책임지면 부담이 줄어든다. 그럼 가족 간의 갈등도 와해되고 언젠가 서로를 이해할 날이 올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빠를 위해 먼저 배달을 경험한 상태였다. 그래서 걱정 없이 아빠에게 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토바이가 아닌 차로 안전하게 다니라는 말도 해줬는데. 아빠는 내 권유를 듣지도 않고 먼저 화가 나 있었다.



 그는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엄마가 차분하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당신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경제적 이유를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으적으적 입안에 으깨넣었다. 엄마의 말을 그처럼 삼켜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귀는 뚫렸지만 새카만 구멍 속 가득찬 귀지가 모든 소리를 진공으로 만들었을테다. 온통 사과 아삭이는 소음으로 뒤덮으려는 듯 그는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순진한 딸은 계속해서 알바를 할 수 있다는 모르는 소리를 한다. 아빠를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컴퓨터를 들고와 교육영상을 보이는 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나. 차라리 그 시간에, 그동안 모아온 돈이나 갖다바치면 좋으려만.



 아빠는 억울했다. 내 나이가 있는데, 내 자존심이 있는데. 가족이라는 것들은 아버지가 만든 빚 하나 안갚아주고 밤마다 와서 잔소리를 해댄다. 아빠는 우리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



 "다른 가족들은 빚을 다같이 갚는다더라."

 "당신(엄마)은 왜 맞벌이를 안해? 다들 한다던데."



 그 말을 들은 나는 머리가 핑 돌았다. 그때 내 손에 둔기가 있었다면 아빠를 때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만약 그 자리에 오빠가 있었더라면, 아빠의 멱살을 잡고 집어던졌겠지. 



 아빠는 이 가족이 생겼던 순간부터 거짓말로 대출하고 카드 돌려막기를 통해 무수한 빚을 살찌웠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23년간 아빠의 도박빚을 생활비의 일부에서 빼냈다. 엄마가 도박(아빠는 투기, 원래는 주식)을 취미생활로 생각해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취미와 도박은 다르다. 취미는 엄연한 취미이며, 도박은 도박이다. 병. 정신병. 모든 것을 망치는 술 담배 도박의 도박이다. 도박은 절대 취미가 될 수 없었다. 즉 아빠는 원없이 도박을 했으며, 회사를 퇴사한 뒤에도 한 것은 다 같이 죽자는 말이었다. 분명히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 가족을 속이고 몰래 대출 받아놓고는, 모든 돈을 잃자 왜 같이 갚아주지 않냐고 화를 낸다.



 우리는 아빠가 빚을 알아서 갚는다는 약속을 받아낸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았고. 가족이 무슨 죄를 지어서 아빠의 도박 빚을 갚는단 말인가? 내가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무슨 이유로? 고작 사랑? 사랑이라면 아빠는 그렇게 행동해선 안 됐다.



 엄마는 젊을 때 회사를 멀쩡히 다니고 있었다. 아빠와 결혼한 뒤, 아빠는 누가 아이를 돌볼 것이냐며 엄마에게 경력 단절을 요구했다. 당시 사회상은 여성이 육아 및 살림, 남성이 돈벌이였기 때문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뒀다. 두 아이를 낳고 전쟁같은 육아와 집안일 때문에 어느새 23년이 훌쩍 지났다. 아이들이 다 크고 생긴 무려 23년의 공백. 엄마는 사회에 나가 밑바닥부터 시작하기에 경험이 전무하고, 이제와서 맞벌이를 요구하는 것 또한 잔혹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동안 고생한 엄마가 이제라도 쉬도록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는 본인 빚을 갚기 위해 사회경험이 없는 엄마에게 왜 맞벌이를 하지 않느냐며 화를 냈다.



 정신이 나갔다.



 그 모습을 나는 숨소리가 느껴질만큼 가까운 곳에서 목격했다. 시체처럼 창백한 아빠의 얼굴, 불안과 신경질이 뒤섞인 시선과 앙다문듯한 입술의 각도, 주름진 턱밑, 돈 이외에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듯한 속옷 차림. 청소도 하지 않아 더러운 방에서 아빠는 그리 외치고 있었다.



 내 빚을 갚아주지 않는 너희가 너무하다!



 난 다시 한 번 설득했다. 할 수 있다고. 나도 해봤고, 어려운 거 아니라고. 겁 먹을 필요 없다고. 



 안 할 거다!


 그럼 빚은 어떻게 갚을건데?


 미루지 뭐!


 그럼 약속과 틀리잖아. 너무 무책임한거 아냐?


 니들 잔소리 때문에 못살겠다. 집 나갈거다!



  집 나갈거다! 라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러고선 엄마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혼하자!



 난 또 실망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프지 않았다. 나는 내 기준이 명확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기준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장구에 불과했다. 빚을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어린이처럼 바둥바둥거리는 아빠의 수법이 훤히 보였다. 이혼을 주장하는 것은 재산을 반으로 나눠서 빚을 갚기 위함이었다. 집을 나간다는건 제 몸 하나 편히 살려는 것이고. 아빠가 집을 나가면, 아빠가 간신히 버는 생활비의 절반이 아빠에게 들어간다. 그렇다면 가족의 손해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 알바도 하지 않고 제 빚을 갚기 위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 고집피우는 아빠.

 아니, 아빠라고 부르기도 징그러운 생물. 입과 항문만 달려 있는 자포동물.



 그것과 내가 앞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이 소리를 잠꼬대처럼 수시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내가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박 중독자에게 가족은 없다. 아들이고 딸이고 아내이고, 아무 상관 없다. 손절은 기쁜 일이다. 본인에게 빚을 독촉하는 거슬리는 인연이 떨어지니 속이 시원하다. 분가? 속된 말도 '개이득' 아닌가. 빚도 도박도 전부 제 마음대로. 죽으면 죽는대로 독촉없이 살 수 있다. 얼굴만 보이면 빚 얘기부터 하는 그깟 가족 얼굴 안 봐도 그만 아닌가. 어차피 인생은 혼자이고, 안 되면 또 대출해서 빚 갚으면 된다. 언젠가 갚아지겠지. 언젠가 내가 한 건 하겠지.



 실패할 경우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잃으면 배웠다고 합리화하고, 얻으면 더 얻을 수 있었다며 또 투자한다. 그래서 끝끝내 잃고 만다.



 가족은 방해물이다. 아빠에게 우린 방해물이었고 감히 가족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무언가였다. 아빠의 기억 속에 지난 세월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나와 빚. 나와 도박. 그것만이 제 세상, 제가 태어난 목적. 그래서 가족을 쉽게 버릴 수 있었다.



 집을 나간다는 것.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순수해서 무지한 것이다.



 집을 나간다는 의미는, 다신 보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자식이 독립하는 것과 다르다. 사고 친 부모 중 한 명이 못살겠다며 뛰쳐나가는 건 손절을 의미한다. 자식과 아내와의 손절이다. 만약 그 사람이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친척과 친구가 없다면 고독사는 남일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일이다.



 그 의미를 모를까?



 아빠는 실감을 못했다. 눈앞의 보이는 빚을 쉽게 갚기 위해 그는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집 나가서 혼자 살겠다. 이혼 해줘!



 그 뒤로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분노로 몸이 떨리고 머리가 아파서 잠시 집중을 못한 것 같다. 엄마는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랑해서가 아닌 괘씸해서) 따로 사는 것은 허락했다. 아빠는 즉시 집을 알아봤다. 발랄하고 가벼운 몸짓이었다. 원하는 대로 기뻐하는 짐승이었다.



 진지하게, 가볍게, 다양하게 설득해봤지만 실패했다. 마침내 나 역시 감정이 폭발했다. 



 나는 아빠 걱정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극도의 긴장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앞서 아빠를 치료하겠다고 당차게 적었지만 사실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는게 없었다. 도박 중독자는 늘 새로운 최악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해결책은 모조리 무용지몰이고 내가 했던 행동 역시 세탁기 뒷편에 쌓여있던 먼지처럼 엉켜붙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손을 내밀면 고개를 팽 돌려 잃는 쪽만으로 달려가는 아빠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밤에는 악몽, 낮에는 악몽 같은 현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아빠. 주말 내내 누워있는 아빠. 텔레비전을 보며 빚을 못갚겠다고 불평하는 아빠.



 그걸 지켜보는 내 정신은 점차 금이 갔다. 매마른 절벽에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지는 듯 나의 정신도 후두둑 후두둑. 머리는 차갑게 식었지만 심장은 터질듯이 쿵쾅거렸다.



 어떻게 아빠가.

 어떻게 네가.



 배달 알바며 설치해준 알바 앱이 낄낄 나를 비웃었다. 네 진심이 통할거라 착각했냐며. 네 눈앞의 아귀는 너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는 남자라고. 설마 바뀔 수 있을거라 믿었어? 응, 믿었어. 내 진심이 통할거라 믿었다. 순수해서 죄를 짓고 슬퍼한다. 그게 내 꼴이었다. 순수하다는 것은 칭찬이 아니다. 그 순수함이 사라질만큼 아파하고 슬퍼할 일이 많다는 뜻이다. 나는 이미 충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무너질 공간이 남아있었다. 그곳은 심해처럼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도 겊잡을 수 없이 눈을 찔러오는 따가운 바닷물은 나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설득했다. 아빠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이 통하지 않았다.

 딴소리만 했다.


 빙의를 당한다면 아빠와 같지 않을까. 요즘 인터넷에 빙의물이 대세라던데. 하나 같이 고증이 틀렸다. 빙의를 당한 사람을 보면 의아한 감정을 품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대신 미치고 싶을 만큼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침엽수림을 보는 듯한 숨이 턱턱 막히는 암흑을 안겨준다.

 

 설득하고, 지쳐서 자리를 나왔다.

 엄마의 전화소리가 들렸다. 타지에 있는 오빠였다.

 두런두런 말이 이어졌고, 엄마는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7년 넘게 살아온 집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침착하게, 차분하게, 계산적으로.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억지로라도 공기를 들아마시지 않으면 질식해 죽을 것 같아서. 어두컴컴한 가정의 천장엔 흰색 벽지와 목재 인테리어가 붙어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봐온 천장이었다. 목을 들어 그 천장을 가만히 쳐다보는데. 가만히...



 모든 게 끝났구나.



 불현듯,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진실을 22살의 내가 저절로 깨우쳤다. 

 그리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겪어봤음에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결과물.



 끝났다.



 가정의 파탄.

 아버지의 정신병.

 빚.

 손절.



 그 단어의 의미가 쿵, 하고 가슴을 울리고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내가 평생 살아온 가정이라는 비물질적인 형태는 고작 빚과 정신병 때문에 이리도 쉬이 깨지는구나. 나는 유리잔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집에서 겨우겨우 자랐구나. 내가 어른이 되자 모든 업보가 거인의 손바닥처럼 짓눌러오구나. 



 그래그래. 내가 행복하게 살았지.



 '행복의 총량 법칙'

 나의 유년시절은 행복했다. 최소 중학생 이전까지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게 자랐다. 나를 사랑해주는 엄마와 아빠, 오빠 밑에서 사랑 받고 자랐다. 그때가 너무 행복해서 지금이 불행하다. 뭔가를 받았으면 대가를 줘야지. 그것이 9년치의 불행이라고 해도.



 알았어. 잘 알겠어요.



 저는 중학생 때부터 행복하지 못했어요.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그림자처럼 달고, 툭 건들면 부서질 듯한 정신을 지닌 채 지금까지 악착같이 살아왔어요. 늘 내가 언제 행복해질 수 있는지, 내가 행복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품고 살았지만... 21살이 되고 나서야 그 모든 고민이 필요없다는걸 알았어요. 나를 죽이려드는 고뇌와 트라우마는 내가 하는 것에 달렸다고. 아무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이 세상에 내 편은 내가 유일하고 오직 나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는 단순불변의 진리.



 모든 병을 극복하고 21살이 잠깐 행복했다. 그로 인한 처벌로 22살의 겨울은 차갑고 시리고 뼛속이 아려온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아빠와 손절한다는 것은, 눈물이 고장난 수돗꼭지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엄마는 내가 슬퍼하는게 그만큼 아빠를 사랑해서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전부 계산적이고 냉정하다. 이성적이고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한 손절이 빠르다. 엄마와 오빠는 아빠에 대한 평가를 마쳤지만 나만이 그러지 못했다. 아빠를 치료하겠다고 발악하던 내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빠를 사랑해서. 몇 년이고 같이 버텨주겠다는 사랑은 한순간 증오로 돌변했다. 감당할 수 없는 증오의 질주가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집을 나갈 것이다.


 이대로 마음 편하게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아빠 방으로 달려가 악을 썼다.



 아빠가 밉다고. 아빠는 가해자고 난 피해자라고. 내 가정을 부숴버리고, 그리도 편히 잘 살아있냐고. 그래 평생을 그렇게 살아라. 빚 갚고 또 대출하고 또 빚 갚고 그렇게 혼자 외로이 죽어라. 아빠와 나는 손절이다. 아빠가 싫고 꼴 보기 싫다.



 당장 나가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나갈거면 지금 나가라. 당장 모텔이라도 가라. 빨리 나가라.



 나는 정확하게 원망과 증오를 쏟아냈다. 눈을 시뻘겋게 세우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악을 쓰는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관심을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었다. 아빠에게 저주를 퍼붓기 위함이었다. 조금이라도 불행하라고. 제발 조금이라도 더 불행하라고!



 집을 구하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린거란다. 그 일주일 동안 아빠가 편히 우리 집에 있는걸 두고 볼 수 없었다. 빨리 나가라고 발악하며, 아빠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치웠다. 가장 보기 싫었던 것이다. 텔레비전을 처보며 배를 긁적이는 행위. 그리고 문고리를 풀었다. 문고리는 아빠를 위해 내가 수리했던 것인데, 더이상 쓸모가 없어 전부 분해했다. 나사를 돌리면서, 정말로 끝났다는게 실감했다. 손잡이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비어버린 문은 멋없이 끼익거렸다.



 아빠와 나는, 남이 되었다.

 아비와 딸.

 남보다 못한 사이.



 도박 중독자는 그렇게 제 인생을 좀먹어갔다.



  





 아빠가 나가는 것은 엄마와 내가 동의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타지에 있는 오빠는 당황했다. 오빠 역시 아빠를 믿지 못하지만 너무 성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를 설득하려 전화했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모습에 오빠도 화가 나서 손절을 암시하는 말을 하고 끊었다.



 아빠는 의아할 것이다. 잔소리 듣기 싫어서 잠시 집을 나가있겠다는데 왜 이렇게 유난인지.



 한 번 나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아빠는 모른다. 우리가 비밀번호를 바꾸리란 예상은 못하는 지능인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전부 미안했다. 내가 감정적으로 행동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이 엄마에게 고통으로 다가갈 것이다. 엄마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원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아무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죄송해요. 아빠를 치료할 수 있을거라 믿었지만 그건 전부 제가 어리고 미숙해서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에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사자가 전혀 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엄마는 괜찮다고 위로했다. 엄마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엄마를 위로해줘야 하는데. 



 아빠가 집을 나간다면 그 비용으로 생활비가 반토막이 날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카프카의 <벌레> 이야기를 해줬다. 어느날 가장이 벌레가 되었다. 가족은 당황했지만 언제 그랬냐는듯이 벌레가 비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벌레를 버리고 가족끼리 행복한 생활을 살아간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우리를 좀먹는 벌레를 버리고, 우리끼리 더 잘 살자.



 나는 엄마에게 맹세했다. 아빠처럼 지키지 못할 약속이 아니었다.



 아빠와 손절한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부담주지 않을게. 어떻게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취업할게. 꼭 성공해서 복수할게. 



 엄마가 원하지 않을 말일 것이다. 엄마는 당장 눈앞에서 독기를 불태우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딸의 상태가 더 걱정될 것이기에.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 내 역할을 다하는 것.



 도박 중독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의 입지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가족이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서 골방에서 죽든말든 우리는 잘 뭉쳐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를 속이고 원망한 도박 중독자에 대한 복수였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도박에 중독된 상태로선 정상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점은, 돈만큼은 비열할만큼 정확하게 계산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아프다는 이유로 동정을 배풀지 마라. 그들은 당신의 골수까지 빼먹을 것이다. 갚아주지 않으면 원망할 것이다. 간과 쓸개에 모자라 목숨까지 욕심낼 것이다.



 지금 아빠는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손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빠를 보는 내가 괴롭고 힘들어서.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이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난 여전히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가 빚을 스스로 갚고 도박에 대해 눈을 감는 순간, 제발 그때.

 아빠가 다시 돌아오면.



 서로 말을 심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사랑한다고,

 이제라도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고생한만큼 쉬어라고.

 나 사랑해주고 키워줘서 고맙다고.



 도박중독자가 아닌 진짜 아빠에게 꼭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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