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불행.
아빠가 도박 중독자가 되어도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오히려 날이 더 포근했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한 얼굴로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여유가 없는 하루였다. 하루를 삭제하고 싶을 만큼 피곤했지만 감히 잘 수가 없었다.
청소하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한 생각이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세탁기 청소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22살이 되어서야 세탁기 청소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따뜻한 물로 하는 게 좋다지만 우리 집 세탁기엔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온수가 필요할 때면 엄마와 내가 싱크대에서 양동이를 들고 날랐다. 그 자리에 아빠는 한 번도 없었다. 아빠는 우리 집 세탁기에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2000만 원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세탁기에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넣고, 외부 먼지를 닦았다. 먼지가 오랫동안 앉혀있던 탓인지 무늬처럼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물수건을 들고 구석구석 최선을 다해 세심한 손길을 가했다. 하지만 내가 상상한 반짝반짝 세탁기는 되지 못했다. 그냥 조금 먼지가 사라진 세탁기였다. 세탁실에 있는 먼지도 전부 쓸어냈다. 대걸레로 물을 뿌려서 다시 닦기를 4번. 겨울이라서 몸에 한기가 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청소가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곳이 깨끗하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어. 그런 믿음을 가졌다.
환경은 사람이다.
우리는 지저분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색이 벗겨진 방문을 고치기 위해, 나는 엄마와 함께 페인트와 붓을 샀다. 그리고 방문마다 색칠을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무척 힘들었다. 바닥에는 돗자리와 신문지를 깔고, 벽엔 묻지 않도록 테이프를 발랐다. 롤러로 하얀 페인트를 바르고 붓으로 세심한 부분을 칠했다. 등에서 땀이 나고 반복된 작업에 지친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지만 벽을 새것처럼 탈바꿈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우리 가족도 이처럼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벽지를 바꾸는 작업은 너무나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다음에 하기로 결정했다. 문의 페인트가 마르자, 집 전체에 있는 낡은 문고리를 전부 교체했다. 문고리 교체는 내가 전담했는데 처음에는 허둥지둥하다가 이후엔 기사처럼 능숙하게 해냈다. 그 과정이 매끄러웠다면 내가 너무 꾸며서 글을 적는 거겠지. 부끄럽게도 한 번은 문고리 교체 와중 실수로 문을 닫는 바람에 갇힌 적도 있었다. 그때 '이대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고 뒤이어 '나는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엄마가 날 구해줬다.
청소와 교체 작업을 순조롭게 완료하자 정말 뭐라도 바뀔 것 같았다.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잠깐 했다. 엄마에게 "왜 이제야 이런 작업을 하는 걸까요?"라고 묻자, 엄마가 "그동안 우린 우리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썼던 것 같다. 아빠의 빚이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집중하게 하는 기회가 된 것 같구나."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악몽은 때로 길몽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현실은 어두운 골방에서 스멀스멀 절망을 불러왔다.
아빠는 엄마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했다.
작은 골방. 지금 아빠가 지내는 곳.
우리 집에서 가장 추운 공간. 창문을 열면 푸른 숲과 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
아빠의 방에 들어가면 언제나 차가운 바람이 뼈를 시리게 만들었다. "아빠 안 추워?"라고 물으면 "안 추워"라고 대답하던 아빠.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난 모른다. 아빠가 추위를 안 타는 체질일 수도 있고, 밤에는 따듯할 수도 있고. 그게 걱정되어 엄마에게 "아빠 방 괜찮을까?"라고 물으면 엄마는 늘 "괜찮아"라고 말했다. 2000만 원의 빚이 생긴 뒤 방에 터덜터덜 돌아가는 아빠의 등은 왠지 노쇠해 보였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시간이 지남을 실감하는 것은 매번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아빠는 8살 때의 아빠였다.
어릴 적 나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20시에 항상 현관 앞에서 쪼그리고 앉았다. 아빠랑 하고 싶은 놀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펭귄 놀이인데, 아빠의 발 위에 내 발을 얹어서 코알라 마냥 매달리는 놀이었다. 회사에서 돌아와 피곤한 아빠는 내가 귀찮을 법도 한데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 딸 왔어?" 다정하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나를 꼭 껴안아주고 펭귄 놀이와 함께 목마도 태워줬다. 할머니가 질투날만큼 나를 챙겨주는 자상한 아빠였다. 커서 아빠랑 꼭 결혼할 거라고, 그런 말도 하곤 했었다. 아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부끄럽지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서 나는 아빠가 조금 더 좋았다.
하지만 엄마에게 아빠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는 젊을 적부터 도박을 즐겨했다. 그래서 아빠가 모으는 돈은 생활비를 제외하고 대부분 도박(투기)에 들어갔다. 결혼을 갓 했을 적 엄마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아빠는 도박을 위해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엄마에게 압박을 넣었다.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라는 경력단절을 요구하고, 엄마가 먹고 입고 쓰는 돈을 더 아끼라는 말을 많이 했다. 엄마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넣는 국민연금도 아깝다며 그만두라고 했다. 정작 아빠는 지금까지도 국민연금을 꼬박꼬박 입금 중이다. 또한 엄마가 무언가를 배워보려고 하면 돈이 안 된다며 매번 힘 빠지는 소리를 했다. 그냥 집에 있어라고. 돈 아끼라고. 그게 엄마가 겪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게 절약이 아닌 도박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시점은,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다정한 아빠와 엄격한 엄마와 개구쟁이 같던 오빠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였을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행복 보존 법칙을 말한다. 내게 "유년기가 너무 행복해서,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아직까지도 불행한 거다"라고 행복했던 시절을 일깨워준다. 엄마의 말을 믿지 않지만, 요즈음 정말 진실이 아닐까 싶다. 나의 행복은 초등학생 때 끝났고, 불행은 타르처럼 질질 질질 질질 지금까지 나를 사냥개처럼 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에게 '내 가정을 부숴버린 가해자'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말이다. 나에게 행복했던 과정은 10년 전의 추억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니, 최근에는 행복했던 것 같다. 잠깐 행복했고 아빠로 인해 다시 불행해졌다. 아빠는 도박으로 손쉽게 우리 가족의 가해자 위치를 점했다.
엄마는 삶의 절반 이상을 같이 살아온 아빠의 이상행동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도박을 하지만 않아도 우리는 행복했던 가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아프면 얼마든지 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빠의 도박이라면 말은 달라진다. 엄마는, 아빠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가정을 제 손으로 깨는 과정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렸다. 너네 아빠가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왜 대출을 해서 이렇게 무책임한 행동을 하냐고. 우리의 아픔은 왜 책임지지 않냐고.
엄마의 눈물을 보고 나는 충격받았다. 그 눈물을 보자 가족의 '불행'이 실감 났다. 개인의 불행은 진저리가 날만큼 겪었지만, 가족의 불행은...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나무뿌리가 발밑에서 기어올라 숨통을 꽉 조르는 느낌이었다. 죽을 수도 없었다. 꼬르륵 물에 잠긴 채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곡괭이를 휘두르게끔 앞서 정해진 미래에 대한 공포로 익사할 것 같았다. 가족 구성원의 잘못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진실은 나를 미치게 만들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투둑 떨어지는 눈물이 내 목을 지근지근 묵사발로 만들었다. 그때 나는 아빠가 우주에서 존재하는 생명체 중 제일 미워졌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
언뜻 듣고 우습게 넘겼던 말이, 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의 말처럼 뇌리를 강타했다.
그렇구나.
돈은 피보다 진해서, 아빠가 나에게 이러는구나.
아빠가 나에게 잔인하듯, 나 역시 아빠에게 잔인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빠에게 죽일 듯이 화내고 진정되지 않아 방에 돌아온 나는 그대로 오빠에게 전화 걸었다. 오빠는 제때 전화를 받는 일이 없었다. 늘 바쁘다며, 외부 활동을 하고 있다며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부재중 전화를 남기고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아빠에게 큰 화를 냈다고. 아빠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손절하고 싶다고. 마음에서부터 북받쳐 오르는 증오가 거세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래서 오빠에게 내 감정을 쏟아부었다. 아빠랑 손절할 거라고. 아빠가 미쳤다. 이상하다. 다른 사람 같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곧장 후회했다.
오빠는 알기 싫을 것이다. 동생의 이런 마음. 궁금하지 않을 걸. 오빠는 냉정하고 계산적이니까. 아빠가 도박 중독자로서 나락을 갈 때 이미 모든 결정을 내렸을 테지. 그게 어떤 결정인지 나도 잘 안다. 가족으로서 입에 담고 싶진 않지만, 도박 중독자에게 계산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는 차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으나, 오빠와 엄마는 이미 거기까지 판단을 내린 후였다. 그래서 엄마와 오빠는 나를 안쓰럽게 봤다. 왜 괴로워하냐고. 이미 끝났다고.
그들은 아빠를 치료하겠다고 악바리를 쓰는 나에게 허망한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되지 않는 병이야."
나는 치료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강한 확신을 가진 척 말했지만, 실은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하룻강아지의 억지였다.
무엇이 옳은지 모른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와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눈가는 조금만 건드려도 쓰라렸다. 내가 너무 감정을 쏟고 있는 것이다. 도박 중독자에게. 난생처음 만난 도박 중독자. 나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폭풍을 만나자 속절없이 휩쓸리고 만다.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 그것을 침통하리만큼 뼈아프게 느꼈다. 고립된 공간에서 웅크린 채 새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에게 오빠의 전화가 왔다.
낮은 목소리였다.
"괜찮나."
오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나는 걷는 법을 갓 배운 아기처럼 우는 법을 써먹었다. 오빠는 나를 위로하고,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알려줬다.
그렇게 감정 소모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빠를 치료할 마음을 버리라 말했다. 그렇다고 집에서 나가게 두진 말라고 권했다. 그럼 돈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병이 든 아빠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감정 소모를 하지 말라는 말은 나에게 너무나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있음으로 불행의 소용돌이는 더욱 짙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불행하다는 감각을 버려야 불행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나도 오빠와 엄마처럼... 아빠를 돈으로만 계산하는 시각을 가져야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활비를 줄여서 빚을 갚자고 하는 아빠와 아빠에게 얻을 수 있는 돈은 모두 얻을 엄마와 오빠의 대립 사이 나는 갈등했다. 나는 어느 곳도 속하지 않았다. 아빠의 병을 치료하고 싶었고, 아빠의 병이 치료된다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중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빠와 가족을 모두 바꿀 수 있는 조건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와 가족 모두를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얼마 후 커다란 배신감을 안겨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간은 불행할 때 더 행복해져. 차라리 전쟁 상태가 더 이로울 수 있다니까?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성취감이 지루한 요즘 인간들에게 얼마나 행복을 안겨주겠어."
학생회 일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던 중, 방금과 같이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 당시 나는 아빠의 도박병과 가족의 갈등으로 인해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심정이었다. 집안이 불행했기 때문에 바깥사람과 아무 일 없이 웃고 일하는 게 힘겹게 느껴졌다. 그래도 학생회로서 역할은 다해야 위해 기여코 나간 곳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씹고 있던 곱창이 쓰레기를 삼킨 듯 역겹게 느껴졌다.
지루와 권태. 현대인에게 가장 벗어나긴 힘든 병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때론 무식이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될 수 있다. 가벼운 혀놀림이 상대방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후벼 파는 칼날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은 부모의 도움으로 자취 중이며 간간히 알바로 용돈을 벌었다. 여자 친구와 순조롭게 연애 중이며 고시 공부로 집과 도서관만 오갔다. 전쟁을 겪지 않고 가난하지 않은 안락한 가정에서 자란 전형적인 젊은이였다. 불행을 경험하지 않은 인간의 사소한 말이, 불행을 겪은 사람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불행이 차라리 더 행복하다"라는 무지하고 안락한 젊은이의 사유 없는 주장이, 나의 원치 않는 열등감과 분노를 유발했다. 마치 아이에게 화내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아이와 굳이 진실된 얘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아이는 제 말을 믿어주지 않는 어른에겐 고집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이해시킬 수도 없고, 섞일 수도 없는 세계였다.
그렇구나. 당신은 그런 세계에 살고 있구나.
나는 인정했다. 그렇다고 삶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는 지금의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황금을 준다 해도 지금의 엄마와 오빠를 사랑할 것이다.
가족의 불행은 날 슬프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도 슬프게 만든다. 밖에서 행복하게 웃고 다니는 사람이 싫어서 모든 외부 활동을 취소하려는 나를 엄마가 말렸다.
"모두가 힘든 일이 있을 텐데 그래도 좋은 척 사는 거야. 너도 힘든 일이 있으면 주변에 풀면서 살아. 아빠 때문에 활동을 포기하기엔 네가 너무 아깝잖니. 힘들어도 사는 거야."
내가 아깝다.
그랬다.
나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데. 너무 아빠에게 휘둘렸구나.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기준이 생겨나자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우는 걸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