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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May 27. 2024

거대 테크기업의 양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을 빼앗긴 세계>(반비, 2021)를 읽고


 켄 리우의 유명한 단편소설집 《종이 동물원》에는 <천생연분>이라는 단편이 실려있다. 센틸리언이라는 거대 회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비서인 틸리에게 의존하는 사회. 건강, 재산, 취향 심지어 연애 상대까지 모두 틸리가 관리한다. '나' 역시 이런 틸리의 역할에 만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틸리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틸리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나'는 센틸리언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합류하게 된다. 


 <천생연분>은 원래 공상과학 소설이다.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과학소설이긴 할지라도 공상은 아닌 소설이 되었다. 우리는 알고리즘이라는 틸리와 함께 살고 있다. 많은 앱들이 내 검색 기록, 후기, 재생목록 등을 이용해 내 취향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음악, 책, 식당을 추천한다. 심지어 친구도. 우리는 이런 추천을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내 개인정보가 위협받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한다. 이런 걱정도 곧 없어질 것 같지만. 


 프랭클린 포어의 <생각을 빼앗긴 세계>(반비, 2021)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생각을 빼앗긴 세계>는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테크 기업의 간략한 역사로 시작한다. 이들의 초기 이상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책의 전반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은 주력 분야나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다르지만 그 시작에는 공통된 꿈이 있었다. '초 네트워크로 하나 된 사회에 대한 열망'이다. 이들의 이러한 사상은 거대 테크 기업의 거부감 없는 독점을 만들었다. 이들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저작권을 약화 시켜 정보 공유를 활성화하고자 한다. 기업의 창업자들은 이런 행동이 인간의 생활을 더 편리하게 만들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과학, 기술은 창업자들의 기대에 맞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도 그런가? 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현실은 그들의 이상과 다르게 가고 있다. 아마존은 킨들과 출판 시장을 통해 출판업계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읽혀야 하는 책이더라도 아마존이라는 '게이트키퍼'를 통과하지 못하면 독자와 만나지 못한다. 페이스북은 플랫폼의 힘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짜기 위해 유권자 사이에 갈등을 만들고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페이스북은 두 진영의 벌집형 사고를 만들어 냈는데-벌집에는 언제나 여왕벌이 있다-각 진영은 쉽게 동의하는 태도를 키우고 다른 의견을 처벌하는 생태계다. 

230쪽


 거대 테크기업이 제공하는 편리성의 대가로 우리는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내어주었다. 전술한 <천생연분>에서 제니가 센틸리언에 대해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센틸리언은 우리를 조그만 거품 속에 가뒀어요. 그 속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은 전부 우리 자신의 메아리예요. 그래서 점점 더 기존의 믿음에 집착하고, 자신의 성향을 더 강화해 가는 거죠. 

《종이 동물원》<천생연분>(황금가지, 2022), 56쪽


 사회는 점점 더 분열되고 개인은 스스로 사고할 힘을 잃고 있다. 예로부터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즉 자유의지라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자유의지를 지켜낼 수 있는가?


 저자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방법을 제시한다. 종이책-물론 알고리즘의 추천에 의해서가 아닌-읽기. 종이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잠시나마 거대 테크기업의 영향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방어할 준비를 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소셜미디어에 의존한다. <천생연분>에서 제니가 비판했던 '센틸리언(=거대 테크기업)에 의해 길러 저 양털로 그들의 배를 채워주는 양'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능력은 무엇인지, 흑백 논리, 확증 편향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사고들로 가득한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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