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펄롱은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고용주던 미시즈 윌슨 아래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배움이 있던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자수성가했고, 아내와 딸들과 풍족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펄롱은 어느 날 수녀원에 갔다가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들 여남은 명이 바닥에 엎드려서 구식 라벤더 광택제 통을 놓고 걸레로 둥근 모양을 그리며 죽어라고 바닥을 문지"(51쪽) 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녀원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 2024)는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200년 가까이 막달레나 수녀원은 주변 사람들과 정부의 침묵하에 무고한 여성들을 감금하고 착취했다. 책은 침묵하던 다수와 달리 옳음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펄롱의 마음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저자는 주변 사람들과 펄롱의 말과 행동을 비교하며 펄롱의 성격과 행동을 부각시킨다. 펄롱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무료로 석탄을 주기도 하고, 주머니에 남은 돈을 기부하는 데 사용한다.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발견하고 펄롱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망설인다. '우리 딸들 중 하나가 저 애들 중 하나였다면?', '미시즈 윌슨이 어머니를 거두어주지 않았더라면?'
펄롱이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들"(20쪽)을 생각하는 동안 펄롱의 아내인 아일린과 단골 식당 주인 미시즈 케호는 현실의 삶에 더 집중한다. 아일린은 수녀원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신경 쓰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당신 말이 틀렸다는 게 아냐."
"틀리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후략)
56쪽
미시즈 케호 역시 아일린의 이러한 생각에 힘을 보탠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일에 관해 말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는 거 알지? 적을 가까이 두라고들 하지. 사나운 개를 곁에 두면 순한 개가 물지 않는다고. 잘 알겠지만."
105쪽
주변의 만류에도 펄롱은 자신의 내면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사소하지 않고 필요한 일을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면 기시감이 든다. 삼청교육대, 부산 형제복지원, 광주 인화학교. 대중과 국가의 암묵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던가. 펄롱과 같은 사소한 시작이 없었다면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며, 여전히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을 것이다. 펄롱의 행동은 보통의, 평범한 생활에서는 사소했을 수는 있지만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펄롱을 보며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사소하지만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는가. 아일린이나 미시즈 케호처럼 '휘말리면 안 좋다'라는 생각에 애써 눈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