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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17>이 아닌 <미키 7>

<미키 7>(황금가지, 2022) 간단 후기

by 고목나무와 매미

우주선 <드라카>의 익스펜더블, 미키 반스


디아스포라(인류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것)의 정착지, 미드가르드에 살던 평범한 남자, 미키 반스에게 절실하게 미드가르드를 떠나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아마추어 역사가에게 허용된 자리는 단 하나. 익스펜더블이었다. "치명적인 농도의 전리 방사능에 고의로 노출될 수도 있"고, "열이 펄펄 끓고 피부에 발진이 생기고 물집이 잡히고 내장은 다 녹아서 며칠동안 항문으로 쏟아져 나오다가 결국엔 매우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36쪽)는 자리였다. 그리고 미키는 이러한 죽음을 6번을 겪고 미키 7이 된다. 그리고 미키 7은 "죽어 본 중에 가장 멍청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9쪽) 위기에 처한다.


테세우스의 배


익스펜더블로서의 미키를 훈련시키던 젬마는 미키에게 테세우스의 배에 대해 이야기한다.


테세우스는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전 세계를 항해했어요. 그동안 배 여기저기가 망가지고 뜯어져 배를 고쳐야 했어요. 몇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원래 선체를 구성했던 목재는 모두 교체되고 없었어요. 이 경우에 테세우스의 배는 출발할 때와 같은 배일까요?

132쪽


'테세우스의 배' 사고 실험은 <미키 7>을 관통하는 질문이 된다. 나의 기억과 나와 똑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나'라고 볼 수 있을까? 미키는 연이은 끔찍했던 죽음으로 이에 대해 고민하지 못했다. 미키 7은 예상치 못했던 존재를 맞닥뜨리면서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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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이 이슈가 될 때마다,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어질 때마다 '복제인간과 나는 다른 사람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미키는, 에드워드 애슈턴은 이에 어떤 대답을 내놓게 될까.


다른 존재와의 공존


미키는 우연히 니플하임에 사는 자각 있는 생명체를 만나게 된다. 토착 생명체를 연구해서 박멸시킬 결심만 하는 지도자, 마샬과 다르게 미키는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인간이 디아스포라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 역사 속에서 토착 존재와 공존에 성공한 인류가 극히 드물었던 까닭을 연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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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었다. 내가 본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원래 인간이 무기와 거주지, 플리터와 우주선을 발전시키게 된 이유가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너무 서툴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372쪽


과학의 발달 이면에는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 다른 생태계의 멸종이 있다. 결국 과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인류가 그들을 배려할 수 없을 정도로 서투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쓸모


앞서 언급한대로 미키는 아마추어 역사가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미키는 관련된 역사를 읽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 실패한 디아스포라의 역사들을 읽었고, 크리퍼들 한 가운데로 내던져지기 직전에는 다른 토착 존재들과 인류의 관계에 대한 역사들을 읽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과거의 일이 아니기도 하다. 과거 인류는 토착 생태계의 일원과 화합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니플하임의 인류도 크리퍼를 적대시했다. 과거 인류는 서로를 미워했고, 현재 유니온의 인류도 서로를 증오한다.


이는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인류가 세계대전이라는 전세계적 재앙을 겪었지만 지금 인류도 분쟁의 한 가운데에 있다. 과거 인류는 스스로 자초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죽었다. 지금 인류는 스스로 자초한 기후위기를 모른 척하며 뜨거운 냄비 안의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는 미래를 보고서도 모르는 척을 할까.


<미키 7>은 SF 소설이다.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있고, 우주선과 복제인간이 나온다. 하지만 모든 SF가 그렇듯이 그 안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SF지만 공상과학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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