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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세계

<계간 자음과 모음> 64호(2025)를 읽고

by 고목나무와 매미

"초월 번역"이라는 말이 있다. 작가가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영화나 책의 장면을 잘 살리는 번역을 의미한다. 영화나 책 등의 의도를 다른 나라 언어로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일대일로 대응하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우리나라의 언니, 오빠가 영어의 sister, brother이나 중국어의 姐姐, 哥哥와 엄밀히 말하면 다른 것처럼) 부사처럼 어순이 달라짐에 따라 말의 뜻이나 어감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자주 접하게 되고, 외국어 능력자들이 많아지면서 번역이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어떤 매체를 선택할 때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그에게 노벨상을 알려주었다. 그 이면에는 그의 작품을 훌륭하게 번역한 번역가의 노력이 있었다. <계간 자음과 모음> 64호에서 다룬 수많은 좋은 주제들 중 번역에 유독 꽂혔던 것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김보경은 <번역 불가능성의 형식과 정치학>에서 번역이 얼마나 정치적인 행위인가에 대해 설명했다.


"기실 번역은 언어와 언어 사이를 매개하는 행위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지식-권력과 문화를 재생산하거나 변형하거나 생성하는 정치적 수행성을 띠는 행위였다."(31쪽)

김보경은 <마이너 필링스>의 저자이자 시인인 캐시 박 홍의 시집, <몸 번역하기 Translating Mo'um>을 통해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그가 겪는 여러 정체성이 가진 정치학적 역학관계 등을 풀어낸다.

또한 소설가 이주혜의 작품에서 한국식 가부장주의를 번역하고자 노력하는 인물을 통해 번역의 대상이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협의의 번역이란 타국의 언어를 자국의 언어로 옮기는 것이지만 광의의 번역은 다른 사람의 세계를 나의 세계로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철학책 독서모임>(박동수, 민음사)에서 밝혔듯이 여성과 남성처럼 서로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번역이 불가능한 영역을 남겨둘 수밖에 없다.

한편, 자넷 홍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번역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헤리티지 번역가'(자신의 모국어나 민족어를 출발어로 삼는 번역가)(344쪽)로서 받은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가 헤리티지 번역가로서 받았던 차별적인 시설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모국어를 출발어로 삼으면 더 매끄럽고, 문맥에 어울리게 번역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나의 생각과 완전히 상반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헤리티지 번역가'는 흔히 '문자 그대로의 의미만을 옮길 뿐 예술성은 없다'는 식으로 취급되는 반면, 백인 번역가는 영어에 능숙하다는 이유로 더 '예술적'으로 인정받는 경향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344쪽)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차별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인들도 동참하고 있다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한강의 에이전시로부터 배제됐던 경험, 한국 문화원의 지원금에서 제외된 상처 등을 잊고 그럼에도 저자가 번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은 작가들과의 연대였다.

"결국 다시 '왜'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왜 번역을 하고, 왜 글을 쓰며, 왜 이 일을 멈추지 않는가. 내 결론은, 번역이야말로 공감의 행위라는 것. 남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348쪽)

그동안 번역은 타국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번역은 글자를 얼마나 잘 보여주는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왔다. 하지만 우리 문학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우리의 세상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글자 그대로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를, 우리의 정신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각에서 보여주는지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

다른 문학 계간지에서는 번역에 대한 글을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창작과 번역은 전혀 다른 일이고 창작을 번역보다 (속된 말로) '더 쳐주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일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번역이 있어야 문학이 저변을 넓힐 수 있다. <계간 자음과 모음>에서 번역에 대한 좋은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번역의 고마움과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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