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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속으로

<디트랜지션, 베이비>(비채, 2025)

by 고목나무와 매미

[비채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디트랜지션


디트랜지션(detransition)은 성전환을 한 사람이 다시 본래의 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디트랜지션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큰 부분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더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디트랜지션, 베이비>(비채, 2025)는 성환원을 한 남성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환원의 이유라는 것이 결코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랜스 여성으로서의 삶은 너무도 고달프고,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순간 포기한다.

55쪽


트랜스젠더였던 에이미는 남성으로 환원하기로 결심한다. 남성인 에임스로 살며, 자신이 원하던 이상형의 여성, 카트리나와 교제를 하던 중 카트리나가 임신 사실을 알려온다.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혼란에 빠진 에임스는 트랜스젠더였던 시절 연인이었던 리즈와 함께라면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과연 에임스는 카트리나, 리즈와 함께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다르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세계


<디트랜지션, 베이비>는 트랜스젠더 여성, 리즈와 환원자, 에임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둘의 사연을 통해 독자들은 트랜스젠더의 세계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되는 순간, 여성성을 끊임없이 확인받으려고 하는 노력, 트랜스젠더들의 사교활동 등. 하지만 결국 그들 역시 다르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리즈는 자신이 트랜스이기 때문에 가학적인 성행위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통해(물론 영화는 허구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성적 취향이 지극히 평범한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카트리나의 친구들과 만나면서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역시 남성이나 여성이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리즈는 문득 궁금하다. 대체 왜 뉴욕 남자들이 통나무집에 모여 플란넬 셔츠를 입고 위스키를 마시는 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진정한 남성성을 분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사로 인식되는 반면, 트랜스인 자신이 예쁘게 치장하는 것은 과도하게 애쓰는 것으로 여겨지는 걸까.

449쪽


가장 중요한 것은 트랜스젠더들도 결국 시스 젠더(신체적 성 정체성과 심리적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들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고, 돌봄을 받고, 실수를 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성전환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외계인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시스들이 트랜스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면 신비로운 의식으로 가득 찬 비밀 안내서를 입수해서,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믿게 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듯 트랜스들을 존중하면 될 일인데.

359쪽


더 흥미로운 내용과 전개


이 책은 트랜스젠더들의 세계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작가 본인도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더 풍부하고 현실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트랜스젠더들끼리 하는 농담과 같은.


리즈가 새로운 트랜스 여성을 만날 때마다 묻곤 하는, 너무 진실이라서 더 우스운 농담이 있다. 근데 트랜스들의 직업 세 가지 중에 어떤 일 하세요? 컴퓨터 프로그래머, 미용사, 창녀 중에?

91쪽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단순히 트랜스 여성들의 삶을 묘사하고 그들도 욕구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에 있지 않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의 페이지는 날듯이 넘어간다. 1명의 트랜스 여성, 1명의 환원 남성, 1명의 시스 여성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치는 이야기들은 작가 특유의 유머와 함께 물처럼 흘러간다.


이 책을 대하는 태도


<디트랜지션, 베이비>의 내용만 보고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들의 고통을 다루는 이야기인가? 그럼 그들의 권익을 생각하며 읽어야 하나?'라며 사회책을 읽듯이 읽을 수도 있다. 그 역시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책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물론, 트랜스젠더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등장인물들의 감정, 사연,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된다. 마치 트랜스 남성인 리키의 트랜스 운동에 대해 생각하는 리즈처럼.


나 지금 화났어. 네 시위 따위엔 관심 없다고. 시위해 봐야 소용없어. (중략) 리즈는 혼잣말로 자신의 질문에 대답한다. 난 아이를 잃었어.

5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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