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연이 아닌 찰나의 재회는 아프게 반짝인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 영화로 첫사랑을 잊지 못한 '해성'과 그의 첫사랑인 '나영'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셀린 송 감독은 이 작품이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만큼 섬세한 감정을 능숙하게 그려낸다.
제목인 '패스트 라이브즈'를 그대로 해석하면 '과거의 삶'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과거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
가장 간단한 가설은 작중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대, 즉 등장인물들의 현생의 이전 생들이란 가설이다. "너와 나는 전생에 사이가 안 좋은 부부가 아니었을까?", "한 마리 새와 그 새가 앉은 나뭇가지였을 수도 있어."와 같은 대사들을 통해 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떤 전생을 지나왔건 이번 생에서 두 사람은 인연이 아니었고 이러한 사건의 시발점이 된 전생을 '패스트 라이브즈'로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다음은 작중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대 또한 '과거의 삶'이라는 가설이다.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의 후반에 나오는 "이번 생도 전생이라면 다음 생엔 어떻게 만날까? 그때 보자."라는 대사를 통해 두 번째 가설을 터무니없는 낭설로 취급하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사는 내세에서도 '나영'을 만나고, 다시 만난다면 서로 인연으로 만나고 싶어 하는 해성의 바람과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생이 수없이 반복되고 그중 서로 인연이 되는 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의 희망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어린 시절을 '패스트 라이브즈'라고 표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작품에서는 주인공들의 초등학생 시점, 그로부터 12년 뒤의 시점, 그로부터 또다시 12년 뒤의 시점이 비춰진다. 그들의 10대, 혹은 20대 시절을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과거의 삶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 그 당시엔 그들이 이어질 가능성이 뚜렷이 남아있었다. 10대엔 서로 데이트를 하고, 20대엔 빈번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호감을 보였기에 얼핏 이 영화가 어렸을 때 헤어진 첫사랑과의 설레는 재회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둘은 이어질 듯했지만 결국 이어지지 못했고 그러한 과거들이 영화의 제목으로써 확실히 이어질 수 없는 30대의 그들의 이야기를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남주인공인 '해성'이 잊지 못하는 인물은 '노라 문'이 아닌 '나영'이다.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개척해 나가는 '노라'와는 달리 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가는데 이렇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살고 있는 그의 삶도 '패스트 라이브즈'라 생각해 볼 만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카메라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그런 내 기억에 남은 장면은 어린 시절 '해성'과 '나영'이 헤어지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아무 말 없이 하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정면에서 담는다. 인물을 정면에서 찍게 되면 인물이 이동한 양에 비해 인물의 움직임이 비교적 작게 느껴지는데 이 장면에서는 이를 이용해 그들 사이에 흐르는 불편한 기류가 끝없이 지속될 것 같은 불안감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이 작품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촬영 기법은 바로 '패닝'이다. 카메라의 위치를 고정시킨 채 카메라를 좌우로 회전시키며 촬영하는 촬영 기법을 패닝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패닝을 상당히 많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패닝은 대개 인물을 보여줄 때 사용되었다. 카메라를 돌리다 멈추면 그 끝에 주요 인물이 보이는 식으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특히 '나영'이 그녀의 이민 사실을 반 친구들에게 말하고 난 뒤 패닝을 통해 '해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패닝을 잘 활용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영'이 친구들에게 이민 사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정보인 듯 보이다가 패닝으로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성'을 크게 보여주며 사실 '나영'의 이민 소식을 듣고 난 뒤의 '해성'의 복잡한 심정이 관객에게 얘기하고 있는 더 중요한 정보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로부터 12년 뒤, 서로 빈번히 화상 통화를 즐기다 연락을 끊기로 한 밤에도 패닝이 사용되었다. '해성'과의 연락이 끊긴 노트북 화면을 찍던 카메라가 좌측으로 회전하여 '노라'를 찍는데 다시 우측으로 회전하였을 때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문이 보인다. 이 장면은 시간의 경과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데 '노라'가 '해성'과의 연락이 끊겨 괴로워하며 밤을 지새웠다고 볼 수도 있고, 혹은 그와의 만남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에게 희망 가득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 속에 그토록 많이 등장한 패닝이 거의 대부분, 인물을 촬영하는 데에 그쳤다는 점이다. 물론 패닝을 탁월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다른 식으로도 패닝을 활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를 감상하며 눈여겨본 편집 기법은 바로 플래시 백과 플래시 포워드이다. 30대가 된 '해성'과 '노라'가 24년 만에 서로 재회하는 장면과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비주얼 매치컷을 이용한 플래시 백이 사용된다. 비주얼 매치컷이란 피사체의 형태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서로 다른 시간대, 공간대의 장면을 붙여 보여주는 편집 기법인데, 어린 시절 두 사람의 위치와 성인이 된 그들의 위치를 비주얼 매치컷으로 이었고, 두 주인공이 서로 재회, 이별을 할 때에 플래시백으로 잠시 그들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편집은 두 사람에게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리움의 감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플래시 포워드를 사용한 장면이 있다. 바로 첫 장면이다. 영화는 '해성'과 '노라'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아서'를 멀리서 바라보는 제3의 인물의 시각으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관객의 흥미를 유발했다는 점이다. 관객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그 영화를 계속 보게 하려면 관객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데 주인공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제삼자가 그들의 관계를 추측하며 던지는 질문들로 영화를 시작하여 같은 의문을 관객들도 품게 하며 영화의 몰입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첫 장면의 질문들이 간접적으로 핵심 개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인연'이라는 주요 개념이 등장한다. 인연이 가지는 특징은 추상성이고 추상적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성을 띤다. 사실 '해성'과 '노라'는 인연이 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는 제삼자는 그들이 연인이고 그들의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노라'의 남편 '아서'를 가이드라고 생각하는 등 그들의 관계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즉, 멀리서 보았을 때는 주인공들의 인연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없다는 점이 첫 장면의 핵심이다. 이 장면은 겉에선 쉽게 알 수 없는 인연의 특성을 능숙하게 간접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탁월한 비유의 사용이 큰 장점인 영화이다. 앞서 얘기한 첫 장면에서부터도 그러한 점을 눈치챌 수 있고, 그 외에도 여러 장면을 꼽을 수 있다. '해성'과 '노라'가 화상 통화를 할 때의 불안정한 통신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불안정한 관계로 비유될 수 있다. 또한 30대가 된 주인공들이 오랜만에 재회했을 때에도 그러한 비유적 표현은 카메라 움직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두 인물을 한 프레임 내에 담지 않고 패닝을 통해 번갈아 보여주는데 이는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이미 너무 많이 흘러버린 시간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 속에서 비유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묘사해 낸 것들이 많다. 가령 '나영'이었던 여주인공의 이름이 '노라'로 바뀐 것은 단순히 미국으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더 이상 그녀가 이전과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고 나아가 '해성'이 그리워하는 인물은 '노라'가 아닌 '나영'이라는 부분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라'와 '아서'가 입국 심사를 하는 장면 또한 인상 깊었다. '노라'가 '해성'과 연락을 끊고 지낸 12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입국 심사 장면을 통해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가 셀린 송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 힘든 노련함이 돋보였다.
'노라'의 남편인 '아서'는 만약에 그 당시에 '노라'를 만난 사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노라'가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의문은 이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인연이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우연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된다. 이 작품에서는 거듭 윤회나, 인연과 같은 개념들이 강조되지만 '아서'의 말대로 사실 이 모든 게 인연이 아닌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치 두 주인공의 사이에는 이미 모두 정해진,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 인연이 있을 것같이 묘사되었지만 실은 그 둘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그저 작은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멜로 영화 중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많은 이들에게 크나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화려한 배경이나 웅장한 음악은 없지만 그 공백을 관객들의 감동으로 채우는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연 혹은 우연으로 독자 여러분도 이 영화를 접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