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_필명에 관하여
나의 필명 '시카고 최과장’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지금 거주하는 곳이 미국 시카고이니, 앞의 ‘시카고’ 부분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뒷부분인 ‘최과장’에 대해서는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나의 별명 ‘최과장’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시절에 생겨난 별명인데, 지금도 내 의대 동기들은 내 이름 석자보다, ‘최과장’이라는 별명을 더 익숙해하고 불러준다.
때는 의과대학 시절 본과 1학년 초창기, 해부학 실습 때였다.
예과를 무사히 마치고 본과로 올라온 나는, 본과 1학년 초부터 본격적인 의대 공부가 개시되는 본과 수업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해부학 실습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해부학 실습을 아주 싫어했다. 본격적으로 의학 공부를 시작하는 것은 좋았으나, 해부학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할당되어 있었고 사체의 보존을 위해 처리된 포르말린도 당시에 나의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릴 적에도 앓지 않았던 아토피가 이때부터 생겼는데, 포르말린 때문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의대생 시절 가장 싫어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과목을 꼽으라면 제일 먼저 해부학 실습 시간이 떠오른다. 그래도 해부학 실습은 의학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일정 시간 이상 출석해지 않으면 안 되기에 대부분의 동기생들도 나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였다. 수업 분위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서 인지 해부학 실습시간에는 사건 사고도 많았는데 내가 ‘최과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 해부학 실습 시간 때였다.
당시에 해부학 실습 자체와 그와 관련된 공부는 하기 싫어 죽겠는데, 자리는 채우고 있어야 해서, 실습 동기생들과 장난을 많이 쳤는데…
나는 해부학 자체에 관심도 없었고, 그에 관한 지식도 아주 얄팍한데도 불구하고, 해부학 표본을 절개할 때에는 일부러 장갑을 소리 나게 끼면서, 마치 집도의가 된 거 마냥 근처에 있던 친구들에게 장난으로 위세를 떨어 보았다.
”야- 야- 똑바로 안 해 …?”
"배워서 남 주냐? ”
등등의 멘트를 날렸고…
그것을 본 근처의 친구들은
“어이쿠, 과장님 오셨습니까?”
“오늘은 과장님이 직접 집도하십니다”
“최과장님이 공중 재림하신다 !!”
라면서 지금으로 따지면, 밈 같은 것을 만들어서 놀렸고 우리는 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일종의 해소법으로 그렇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놀다가 보니까 의과대학 다닐 때, 나에 대한 호칭이 ‘최과장’ 혹은 ‘과장’으로 바뀌게 되면서 내 본명은 거의 불리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의과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내 본명보다 ‘과장’이라는 호칭으로 더 자주 불린다.
그렇게 나는 ‘최과장’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과장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승진은 언제 되나…?)
비록 떠올리기 싫은 시절에 생긴 별명이긴 했지만, 나를 정의 내려주는 별명이어서 그런지 그동안 많은 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필명을 '시카고 최과장'이라고 하기로 했다.
만약, 우리 의과대학 동기들이 이 글을 보고 나면, 내가 누군지 한 번에 알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