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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tt (더 피트) 간략한 후기 (中)

재난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Code Triage에 대한 정밀 분석

by 시카고 최과장

The Pitt 드라마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12화부터 15까지의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재난 응급 대응 프로토콜인 Code : Triage 가 발동되고 난 이후부터이다.


드라마의 이 부분을 보면서 아직까지는 확립은 안된 듯한 Disaster Medicine (재난 의학)에 평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엄청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The Pitt 시즌 1의 12화의 내용 중에서도 재난 응급 프로토콜을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여 다루어 보고 싶어졌다.


재난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재난 상황을 직접 접해본 적이 있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었다. 재난 의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였고,

두 번째는 코로나 대유행 초기에 뉴욕시에서였다.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가 터졌을 때, 나는 보스턴의 하바드 부속병원 중 하나인 Brigham & Women's Hospital에서 중환자의학 펠로우쉽을 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Code : Pink라는 재난 응급 상황에서의 병원의 역할 전환을 처음 경험해 보았다.

두 번째는 코로나가 처음으로 전 세계 대유행을 하던 2020년 초에 뉴욕 브롱스에 있는 한 종합 병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The Pitt의 12화는 시작부터 병원 인근에서 열리고 있었던 축제 (Pittfest)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시작한다. 이때부터 실시간으로 병원에서 Code : Triage를 발동시키고, 곧 총기 난사 피해 환자들로 넘쳐날 병원을 재난 응급 상황에 맞게 대비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혹시나 더피트 (The Pitt) 시즌1의 12화-15화를 시청하실 예정인 분들은 아래의 내용들을 앞에 펼쳐 놓고 시청하는 것도 극 중에 돌아가는 상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분명 미국의 어떤 병원의 실제 재난 프로토콜을 참고해서 촬영했을 텐데...

극 중에서 단계별로 차근차근 프로토콜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Hour_Twelve_.jpg 드라마 12화의 시작을 나타내는 12시간째

병원 근처 축제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와 함께 병원 전체에 응급 재난 상황에서의 Code Triage 가 발동된다.

Active_Shooter_Code_triage.jpg 근처 축제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발동된 Code Triage
Combo_00.jpg 재난 상황에서의 병원의 대응을 순서대로 설명하고 있다.


위의 캡처 장면들과 같이, 병원의 CEO와 응급실 수장인 Dr. Robby 가 Code Triage에서 병원의 역할 전환을 순서대로 설명하고 있다.

(1) 먼저, 병원을 완전히 락다운해서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들을 제외한 다른 새로운 환자는 받지 않고...

(2) 병원 직원들에게 문자와 이메일을 보내서 최대한의 지원 및 협조를 요청하고...

(MCI : Mass Casualty Incident, 다수 인명 피해 사고)

(3) 모든 수술실을 최대한 확보한 다음...

(4) 응급실에 현재 있는 모든 환자들을 이송시켜서 완전히 비워 놓는 것으로 Code Triage를 시작한다.


TV_Press_Prayer_Combo.jpg


그 외에도

(5) 혼란을 조장할 수 있는 텔레비전을 모두 끄고,

(6) 언론이나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하면서도,

기도를 요청하는 등... 여기까지는 비상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병원의 다른 모든 프로토콜과 같다.



여기까지 보면서, 2013년에 발생한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사건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 중환자 의학 펠로우를 하고 있던 병원이 보스턴에 위치해 있었는데, 병원에서 'Code : Pink'를 발동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이 드라마의 극 중에서 'Code Triage'를 발동시켰을 때와 매우 유사하게 진행이 되었다.

Harvard-Brigham-and-Womens-square.png
BWH_.jpg
내가 중환자 의학 펠로우로 근무하던 Brigham & Women's hospital

당시 익숙지 않은 코드여서, 이메일로 보내진 Code : Pink에 관한 사항을 샅샅이 읽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코드가 발동된 시점에서는 병원이 말 그대로 완벽하게 닫혀서 (Shut Down) 환자는 병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의료진은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외래와 응급실이 그 즉시로 닫았고, 다수 인명 피해 환자 외에는 더 이상 새로운 환자들을 받지 않았다.

또한 이미 병원에 출근한 사람들은 아무도 귀가할 수 없었고, 각 파트별 총책임자의 허락을 받은 사람들만 귀가가 가능했다. 당시에 마취과와 중환자 의학 둘 다에 해당되던 나는 두 분야 책임자들의 동시 승인을 받아야만 귀가가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마취과랑 중환자 의학은 전문 분야 특성상 둘 다 비상 상황에서는 일할 사람이 매우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두 파트 모두에서 귀가 승인을 받지 못하면 나는 절대로 집에 갈 수 없는 운명에 놓였던 것이다.

마취과와 중환자 의학을 전문과로 선택했던 것을 인생 살면서 크게 후회한 적은 없었는데,

당시에 프로토콜 매뉴얼을 읽어 보면서, 살짝 후회가 되나 싶었던 찰나가 이때였긴 하다.




Code Triage를 발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시작하고 나서는, 주인공인 Dr. Robby의 뛰어난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Code Triage라는 것은 다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 (MCI)에 대응하기 위해서, 사건이 발생한 인근 지역의 병원 측에서 인적, 물적 자원이 한정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인명을 살리기 위해서 발동하는 재난 응급 대응 프로토콜이다.


따라서, 드라마의 주인공인 Dr. Robby는 미리 지정된 프로토콜에 맞춰서...

(1) 최대한물적 자원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2) 보다 효율적으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Pre_Briefing_Ann_combo.jpg

Dr. Robby는 일단 먼저 재난 응급 프로토콜에 생소할 응급실 인력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기 전에 연락할 것과 휴식을 권한 후 5분 후에 본격적으로 진행될 브리핑에 참여하라고 미리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수 인명 피해 (MCI) 대응 프로토콜 준비에 들어간다.



(1) 물적 자원 확보

일단 브리핑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물적 자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 두기 위한 노력을 한다.

MCI_Prep_combo.jpg

재난 상황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와서 미리 계획한 장소에 잘 정리해 두고, 응급실에서 대기 중이거나 치료받던 모든 환자들을 다른 곳으로 이송시킨다.

그리고, 병원 약제실 직원들이 응급실에 내려와서 약제 배분소를 열어서 효율적으로 약제를 배분할 수 있게 하고... 환자 이송용 들것과 휠체어를 모두 총기난사 피해 환자들을 맞이할 앰뷸런스 도착지점으로 모으라고 지시한다.


또한, 재난 응급상황에서는 비축 물품들을 쌓아놓아도 금방 소진할 것미리 예견한 Dr. Robby는 의대생 둘과 인턴등 3명의 인력을 동원해 미리미리 추가 의료 물품들을 공수해 놓는다.

3_Raid_Central_Supplies_Combo.jpg 환자들이 도착하는 시점부터 1시간 안에 모든 의료 용품들을 소진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추가 물품을 확보하는 Dr. Robby


(2) 인적 자원 배치활용

(3) 효율적인 환자 관리치료

: 이 두 가지 사항은 이어지는 브리핑에서 한꺼번에 다루어진다.


Briefing

그러고 나서 Dr. Robby와 또 다른 응급실 책임자인 Dr. Abbott의 본격적인 브리핑이 시작된다.

두 사람이 빠르고 간략하게 효율적으로 환자 분류, 관리 및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재난 응급 상황에서의 응급실의 역할을 잘 요약해서 설명해 준다.

그 내용이 짧은 시간에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환자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간략하게 진행되는 브리핑에서는...

Dr. Robby는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옆의 Dr. Abbott는 이해하기 쉽게 짧게 요약을 해준다.

일단 각 부서별로 인력을 총괄 / 감독하는 사람을 지정해서 주황색 조끼를 입혀서, 관련 부서와 관련해서 보조가 필요한 경우,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한국식으로 치면, '주황색 조끼 = 완장'이다.

물론 이 경우는 완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부정적 사례, "어디서 완장질이냐?")


극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 주황색 조끼를 착용했다.


Primary Triage MD = Dr. Shen

Primary Emergency MD = Dr. Abbott

Primary Emergency RN = Dana (ER charge nurse)

Primary Surgery MD = Dr. Walsh

Primary Anesthesia MD = Dr. Gladden

Primary_Vests_Combo_01.jpg



환자가 도착 시...

구급차가 도착하는 구역이 곧 Triage (환자 분류) 구역이 된다.

위중한 환자들 (=빨강 밴드 환자들)은 Trauma Bay 당 4명씩 배정되고

그 외의 환자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중앙에 배정한다.


의료진 배치 원리

(1) Triage (환자 분류) 구역에서는 치료에 직접 관여 없이 환자 분류에만 전념한다. 비록 직접 치료를 하지는 않지만, 한눈에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므로, 상당한 임상 경험이 있는 의사가 Triage (환자 분류) 구역에 배치되어야 한다.

(2) 가장 임상 경험이 많은 의사가 위중한 환자들이 대부분인 빨강 밴드 구역을 담당한다. (Dr. Mohan, Dr. Abbott, Dr. Robby 등 가용 가능한 인력 중 가장 경험이 많은 의료진이 빨강 구역에 배치되었다.)

(3) 주인공인 Dr. Robby는 본인 자신을 빨강 밴드 구역에 배치했지만, 리베로 역할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아마도 그래야만 극 중의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장소를 이동하면서 계속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Triage (환자 분류) 구역에서는 환자 분류를 색깔별Slap Band를 사용해서 바로 분류를 하고, 환자 식별 코드를 각각 부여해서 차트와 함께 환자 손목에 달아준다. (=환자 손목 차트)

극 중에서는 'MCI-숫자' <-- 이런 식으로 각각의 고유번호를 부여한다.

빠르게 환자 치료에 전념하게 하기 위해서 마련한 조치인 듯하다.

MCI_Wrist_Chart_Combo.jpg 환자가 올 때마다 고유의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치료를 기록하는 손목차트를 300개 준비했다.


Slap band는 미국에서 아동용 장난감으로 주로 사용되는 밴드인데...

평소에는 쭉 펴져 있지만, 약간의 힘을 가하면 (Slap) 사람 손목을 중심으로 착 감기게 되는 밴드 (Band)를 말한다. 극 중에서는 빨강, 분홍, 노랑, 초록 그리고 흑백 밴드로서 환자 분류 작업을 한다.

SLap Bands_Combo.jpg 미국에서 주로 어린이 장난감으로 쓰이는 Slap Bands




Dr. Robby 가 진행하는 브리핑의 핵심만 모아서 따로 아래에 표로 만들어 보았다.


Triage_First_Allocated_Updated.jpg 환자 분류 (Triage)가 진행되는 기본 원리와 여기에 배정된 의료진들


이렇게 분류된 환자를 아래 표와 같이 손목 밴드 색깔로 구분한 다음, 색깔에 맞는 구역으로 환자를 바로 보내서, 그에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Color_Band_05.jpg
Color_Band_06.jpg
Color_Band_07.jpg
손목밴드 색깔로 환자 분류를 하고, 그에 알맞는 구역으로 보내서 즉각 치료받을 수 있게 한다


위의 두 환자 분류표에 의거해서 예시 환자들을 분류해 보았다.

Triage_Example.jpg



Dr. Abbott 이 장황한 Dr. Robby의 설명을 아주 짧게 잘 요약해 주는데...

Code Triage 가 발동되는 순간부터...

응급실은 MASH unit 이 되며, 전쟁터 의료 현장으로서 진단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환자 안정에 집중해서, 수술실이나 중환자실 등에서 최종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 시간부로 응급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잘 요약해 준다.


MASH unit 이란,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로서, 이동식 군사 외과 병원을 지칭한다.

미군의 MASH unit 은 한국 전쟁 당시에 개념이 확립되어 운영되었으며, 걸프 전쟁까지 MASH Unit 이 활용되었다. 심각한 부상을 당한 병사라도 MASH Unit 까지만 이송되면 97% 이상의 생존율을 기록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고 지금까지 평가받고 있다.

MASH_Unit_Combo.jpg 이 모든 비상 체계에서의 응급실의 최대 목표는 환자가 최종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정화시키는 것이라고 요약해 준다



P.S


#1. 마취과에 대한 풍자

맨날 수술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마취과를 풍자하는 깨알 같은 유머도 잠시 나온다.

환자의 마취 유도 시에 환자가 금식을 하지 않았다면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 있어서, 마취과는 언제나 금식여부를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 부분을 가볍게 희화화한 듯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마취과를 까던 '중증 외상 센터'에 비하면 이 정도의 유머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다.

Anes_Combo_00.jpg 전쟁터와도 같은 난리통에서 평소와 같이 이것저것 요구하거나 공복여부를 체크하는 마취과의 모습을 약간 희화화하고 있다.


심각하기만 한 극 중의 에피소드 중에 깨알 같은 유머를 도입하기 위함이라고 이해를 하려 해보기는 하지만...

나름 경험이 꽤 많은 마취과 의사가 'Primary Anesthesia MD'라는 주황 조끼의 임무를 부여받았을 텐데...

전쟁터와 같은 상황에서 금식여부를 묻고 따지고 있는 것은 그래도 좀...



#2. 무서울 정도로 사실적 고증에 힘쓴 장면

12화 에피소드 중에 그냥 지나가는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성과 고증성의 강화를 위해 의료진들의 컴퓨터 화면에도 비상시임을 알리는 Code Triage 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떠 있다. 그냥 지나가는 화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실성을 높인 드라마 제작진들에게 정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솔직히 드라마 제작진들의 꼼꼼함에 무서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Code_Triage_On_Computer_Screen.jpg 그냥 잠깐 비추는 장면인데도, 의료진 컴퓨터 화면에 비상 응급 상황인 Code Triage 가 발동 중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The Pitt (더 피트) 간략한 후기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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