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1. 들어가며
<식스펜스 넌 더 리처>라는 미국의 밴드를 아는가? 친구 녀석이 과거에 필자에게 이 팀의 이름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주었었기에 20년 가까이 그런 것으로 믿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C. S. 루이스(<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일화(가난한 소녀가 아버지에게 받은 6펜스로 선물을 사드렸더니 아버지가 큰 행복을 느꼈다는 내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큰 충격에 빠졌다. 어찌 되었건 친구 녀석 때문에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다시 읽게 되었으니 그를 용서(?)하려 한다.
잘 알려져 있듯 이 책은 프랑스의 화가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쓰여졌다. 그러나 완벽한 고갱의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소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작품 속에서 안정된 직장과 처자식을 버리고 꿈(그림)을 위하여 가출하는 것으로 묘사되어있으나, 이 책을 번역한 송무에 의하면 실제 고갱이 가족과 떨어지게 된 계기는 증권 시장의 붕괴로 그가 실직자가 되자 그의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그를 떠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2. 달과 6펜스
소설의 제목인 <달과 6펜스>는 무엇을 뜻하는가? (보름)달과 6펜스 동전의 공통점은 반짝거리고 둥글다는 점이다. 반면에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눈앞에 마주한 6펜스 동전을 보며 현실을 고민하고는 한다. 즉 <달>이 꿈과 이상을 대변하는 소재라면 <6펜스>는 현실과 세속을 뜻하는 소재이다.
마흔 살의 찰스 스트릭랜드는 안정적인 직장, 남부러울 것 없는 가족을 내팽개치고 어느 날 그림을 그리겠다며 파리로 떠난다. 스트릭랜드 부인의 부탁으로 그녀의 남편을 찾아온 서술자에게 스트릭랜드는 <난 그려야 해요.>(68쪽)라고 말한다. 그는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하여도,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또 남들의 평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직 그리는 행위 자체만 중요한 것이다. 스트릭랜드에게 <달>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3. 내가 태어날 곳과 죽을 곳
서술자는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253쪽)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스트릭랜드이다. 그는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났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자신이 선택하였으며 죽고자 하는 곳 또한 자신이 정한다.
서술자가 파리에서 스트릭랜드와 재회하였을 때, 스트릭랜드는 <나도 때로 생각해 보았소.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섬, 그 섬의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에서 신비스러운 나무들에 둘러싸여 조용히 살아볼 수 없을까 하고. 거기에서는 내가 바라던 것을 찾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아서>(111쪽)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트릭랜드는 이것을 실행한다. 그는 파리를 떠나 타히티섬에서 열일곱 원주민 소녀 아타와 결혼한 뒤 정착하여 그림에만 몰두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타히티섬에 정착한 그가 보이는 변화이다. 방랑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는 <난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겠네.>(273쪽)라고 말한다. 또한 그의 기행(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도 타히티섬에서는 너그럽게 허용되었으며(275쪽), 남들의 감정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냉소적인 미소만을 머금었던 그가, 병에 걸린 그를 떠나지 않겠다는 아타의 말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287쪽). 이러한 변화는 문명과는 거리가 먼 타히티섬에서의 생활이 그에게는 더 안성맞춤이었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반증한다.
스트릭 랜드는 나병에 걸려 눈이 멀고, 그림에 더욱 몰두한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그렸던 그림을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타는 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준다. 그에게는 걸작을 남기겠다는 화가로서의 소명의식 같은 것보다,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더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삶이 완성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4. 스트릭랜드의 도덕성에 대하여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이, 구속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방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삶이 윤리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별개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밀란 쿤데라가 말했듯이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기에 현실의 윤리와 소설의 윤리는 구분되어야겠지만, 아무래도 그의 도덕성은 역겨운 부분이 있다.
서술자의 친구인 더크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의 생전에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스트릭랜드가 병에 걸리자,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를 살리고자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허나 안타깝게도 스트로브의 아내(블란치)는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남편 곁을 떠나고 블란치는 스트릭랜드와 크게 다투고 결국 음독자살한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자를 배신하고 가정을 깨뜨렸기에 필자는 이것만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현실에서 소설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올해 별세한 어느 출판사의 사장은 이문열의 「사로잡힌 악령」의 한 사건(어느 시인이 후배의 재주를 아껴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였으나, 후배가 시인의 아내를 능욕하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시인은 폭음으로 몸이 상하여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는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소설 속 인물인 스트릭랜드의 행위도 이해가 가지 않기에 현실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으려 한다.
참고도서
서머싯 몸, 송무 옮김, 『달과 6펜스』, 민음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