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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등석 Nov 21. 2021

모래판 말고 바다판에서 씨름하기

 

 의무소방으로 군 생활을 한다는 것은 꽤 멋진 일 같았다.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열정 넘치는 소방관들과 함께 2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젊음을 불사르는 것은 얼마나 숭고하고 뿌듯한 일인가? 그렇게 나는 의무소방이 되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선임들의 끝없는 잔소리와 소방서의 수많은 잡일들은 절대적인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나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은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인파가 몰렸다. 이 해수욕장은 근방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피서를 즐기기에 제격이었기에 꽤 많은 피서객이 해마다 방문했고, 그에 따른 안전사고도 끊이질 않아 언제부턴가 소방서는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수난구조센터>를 열어 운영해왔다고 한다. 나는 한 달 동안 이 수난구조센터에 배치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난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고 했는가? 소방서 야유회가 있던 날, 의무소방도 동원되어 행사 준비를 같이했다. 의무소방을 담당하셨던 소방행정과 반장님은 같이 준비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의무소방은 야유회에 따라올 필요가 없으니 대기실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라고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분부대로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을 즐겼다. 평화로운 폭풍전야가 지나고 점호시간에 사달이 났다. 선임 중 하나가 야유회 행사에 동원되어 온갖 잡일을 하게 되었는데, 후임인 나는 왜 야유회를 따라오지 않았냐는 이유였다.  


 당시 나는 안전센터 소속이었고 행사를 주관하는 소방행정과의 반장님이 따라오지 말라기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자가 오지 말라는데 억지로 가겠다는 것 또한 웃긴 노릇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선임이 야유회를 따라간다는 사실조차 몰랐다(지금도 왜 그가 야유회를 따라갔는지는 미스터리이다). 소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선을 넘는 부당한 일이 일어났었기에 자세히 쓰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이 사건은 내가 소방서에서 겪었던 일 중에 가장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날 너무나도 억울하고 화가 나서 화장실에 숨어 한참 동안 울었다. 가슴을 무언가가 누르고 있는 듯 답답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때의 꿈을 꾼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일은 계속 벌어졌다. 일련의 사건들이 연속하여 발생하니 나는 지쳐갔고 소방서 생활이 재미가 없었다. 수난구조센터에 나가서도 아무 생각 없이 멍을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같이 근무를 했던, 옆집 아저씨 같던 푸근한 인상의 소방관 반장님은 무슨 일이 있냐고 계속 여쭈어 보셨지만 나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그냥 웃으며 얼버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전사로 군 생활을 오래 했었던 그는 무슨 눈치를 챈 것 같기도 하다.


 그가 갑자기 나를 바다로 이끌고 나가더니, 나를 힘껏 들어 바다로 메치었다. 나는 물을 먹어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80킬로그램도 넘는 나를 다시 어깨로 들어 힘껏 메쳤다. 그러고는 나에게 자신도 들어 바다에 패대기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주저하자, 그는 다시 나를 내동댕이 쳐버렸다. 나도 오기가 생겨 그가 나를 메치기 전에 그를 패대기쳤다. 몇 번을 그렇게 번갈아가며 서로를 메쳤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신기한 것은 그날 이후,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뚫렸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와 바다에서 서로를 자빠뜨리니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온갖 고뇌가 사라졌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바다에 내동댕이쳐지던 그때만큼은 정말 그렇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에도 우리는 서로를 바다에 자주 메쳤다.  


 그와의 추억이 많다. 피서객이 드문 한적한 평일에 갯벌 구멍에 소금을 뿌려 맛조개를 잡아 삶아 먹은 일, 공공근로를 하시던 어르신이 가져오신 꽃게로 라면을 끓여 같이 나누어 먹은 일, 보트 운전하는 법을 배운 일 등, 그와의 추억들은 나를 살게 했다. 그는 그 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 떠났다.   


 제대를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가끔씩 나는 그 해수욕장에 간다. 바다에는 나의 청춘이 새겨져 있다. 나의 위기와 그것을 이겨낼 희망이 바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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