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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Feb 07. 2023

논문 모드 전

태풍 전 고요함

논문 마감일이 다행스럽게 연기는 됐으나.

늘 그렇듯 연기되면 그 기간만큼 또 늘어진다.

내가 정한 기한은 내일 탈고, 모레 투고인데.

늘 그렇듯 한 글자도 안 썼다.

공부의 최고 효율은 벼락공부에 있듯,

논문의 최고 효율은 벼락 탈고에 있다.

자꾸 몸이 이게 익숙한 쪽으로 세팅되어가고 있다.


내가 정한 물리적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중임에도

난 계속 웅크린다.

조금만 더 늘어지자.

조금만 더 게으르게 있자.


원고료 혹은 연구비로 인한 의무적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난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된 기분이다.

인간에게 불을 준 죄로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고통의 밤을 보내는 그처럼.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 준 빚으로 논문에게 온몸과 정신을 쪼이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러므로 고통의 시간은 최대한 줄여보려 한다.

이렇게 뜨뜻한 방바닥에서 몽을 웅크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편이나 아이들도 감히 나 홀로 웅크리고 있는 내 동굴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한다.

원고 쓰기 모드로 들어갔을 때의 나는 누구 하나 걸리기만 해 봐라 벼르며 으르렁대는 사나운 프로메테우스이므로.


원고 시작 전의 장전 기간.

충분히 자고 충분히 먹고 충분히 여유를 가지며 늘어진다.

그렇다 해도 원고 쓰기 시간이 임박함을 이미 몸이 안다.

어제부터 시작되는 지독한 편두통.

타이레놀이 벌써 몇 알 째던가!

그러니 더 자고 더 늘어지자.


논문 모드 "준비, 땅!"과 함께

시간에게 내 영과 육을 뜯어 먹히며

태워 없애는 화장식만이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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