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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Feb 14. 2023

이젠 밤 못 새겠다

 원래부터가 낮에 잠이 많고 밤잠이 없었던 나는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본격적인 올빼미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읽어내야 할 글의 분량이나 페이퍼 숙제들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집중해서 끝내고 나면 다음 날 날이 밝아있곤 했던 것이었다. 즉, 오랜동안 집중을 해서 하나의 과제를 끝내 놓고, 집중한 동안 총력을 다했던 에너지가 방전이 되면 쓰러지듯 잠에 들곤 했던 습성이 지금껏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낮밤이 바뀐 사람들이 많다. 논문 쓰기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 놓고 조금씩 쓴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기존에 없던 아이디어 창안과 그 아이디어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대며 논증하는 글쓰기여야 하기 때문에, 한 번 집중한 작업을 시간의 제약으로 이것이 끝내버리면, 다시 집중하는데 시간이 또 걸린다. 따라서 집중을 하는 김에 끝내려는 마음이 생겨 한번 자리에 앉으면 그 아이디어가 소진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낮밤 안 가리고 앉아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이 끝나면 낮밤 안 가리고 자기 일수이고...

  그런데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이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건강에 맛이 간다. 내 나이 이제 사십의 중반을 지나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데, 요즘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한 번 집중하면 하루 이틀 만에도 논문이 뚝딱 써지곤 했었지만, 이젠 논문 모드가 되면 도살장 끌려가는 소마냥 몸이 꿈쩍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살이 너무 쪄서 몸이 둔해졌는가 싶었다. 얼마나 혹사당하는가를 잘 아는 몸이 이미 기억하고 내 정신과 마음을 지배해 버리는 것이다.

  이젠 정신 승리, 마음 관리 이런 것으로 몸을 이길 수 있는 나이가 지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하는 게 느껴진다. 아주 큰일 날 정도로 아픈 건 아니지만, 일상생활 집중하기엔 뭔가 불편한 정도의 선에서 미미하게 몸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건 밤에 안 자고 일을 할 때 더욱 심해진다.

  지금의 시점에서는 밤새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몸이 거부하고 있다. 이제부터 몸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큰일이 생길 것 같이 계속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원래 몸 챙기는 스타일은 아닌 나도 이런 싸인을 감지하는 것을 보니, 이젠 정말 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후회 없을 듯하다.

  이젠 밤 못 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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