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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 Sep 15. 2022

베를린의 클럽들

사진출처: Getty Images


1. 검은색 옷을 입을 것.

2. 웃지 말 것.

3. 말하지 말 것.

4.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말것.

5. 3명 이상의 무리에서 떨어질 것.


어쩌면 공포영화의 생존법칙같아 보이는 이 룰은 사실 전설의 클럽 베엌하인에 가기 위한 것이다.  

Berghein은 기본적으로는 게이클럽인데, 좋은 음악이나 음향기기로도 유명하지만 소위 말하는 “입뺀”으로도 악명높다. 저 위의 조건들을 다 지켰다고 하더라도 관광객느낌이 나거나, 음악을 잘 못즐길거같다거나, 술에 너무 취했다거나, 그날 공연하는 디제이의 이름을 모른다면 한 시간 넘게 줄을 서고도 “오늘은 안돼” 라는 말을 들을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갈 수 없는것은 아니다. 어떤날은 통과하고 어떤날은 통과하지 않을 수 도 있다. 


나는 예전에 딱 한번 들어간 적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 전이었는데 더 자주 가지 못한게 아쉽다. 친구 두명이랑 같이 줄을 서는데, 혹시 몰라서 나 혼자, 그리고 좀 멀찍이 떨어져서 친구 두명이 줄을 섰다. 나는 통과했지만 친구들은 돌아가야 했다. 줄을 서면서 앞뒤로 서있던 사람들은 “내 옷 어때? 나 못들어가진 않겠지?” “아주 멋져보여, 당연히 우린 되지” 라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 전부터 “동양인 여성과 같이 줄을 서있으면 통과 할 수 있다” 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 뒤에 서있던, 영국악센트를 쓰던 남자 세명이 마치 일행인것마냥 내 뒤로 붙었는데 결국 그들은 통과하지 못했다. (쌤통이다)



베를린은 테크노 음악과 클럽문화로도 유명하다. 테크노는 기계음을 중심으로 같은 박자가 반복되는 특징을 가진 음악인데, 아마 한국에서는 복고음악같은것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베를린의 테크노 클럽과 한국의 메인스트림 클럽은 아주 많이 다르다. 여자는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것도 불쾌한데 외국인은 무료입장이 안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비싼 돈을 내고 테이블을 잡는것도 그렇고, 그 클럽들에서 주도하는 클럽문화라는게 공공연하게 여자를 미끼로 돈을 불러들이는 것이라 굉장히 불쾌한 부분이 많다. 


테크노 클럽은 낯선 사람이 주는 술만 안마신다면 그런 면에서 굉장히 안전하다. 누구도 함부로 상대방을 만지지 않고, 그런행동을 하면 쫒아낼 수도 있다. 특히 베엌하인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남이 뭘 하던간에 관심이 없다. 처음에 테크노 클럽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나는 눈이 휘둥그레 했다. 내가 알던 클럽춤이랑은 많이 다르고 예전에 예능에서 봤던 홍진경씨의 “유럽 춤”이 생각났다. 심지어 홍진경씨가 췄던것도 굉장히 세련된 형태였고 대부분 훨씬 더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처음 테크노 클럽에 가본 날, 나는 맥주병을 꽉 움켜잡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면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두번째로 언급하고 싶은 클럽은 킷캣이다. 

이 클럽은 성향자 클럽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 친구의 친구가 거기서 디제잉을 한다고 해서 가봤다. 검은색을 들이부은 옷밖에 없어서 베억하인은 걱정이 없었지만 이 클럽은 도무지 뭘 입어야 할 지 알수가 없었다. 단순히 짧은 치마라던가 일반클럽 스타일의 야한 옷이라서 통과할 수 있는게 아니다.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 

플랫메이트에게 물어보니 그냥 내가 평소에 입는 운동복을 입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긴, 뭐던간에 노말한것만 아니면 되지. 나는 나이키 반바지를 입고 갔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복장검사를 한다. 그날그날의 파티 컨셉에 맞게 입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들어가지 못한다. 이런 룰들은 클럽 안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그들이 그 안에서만큼은 안전하고 자신이 이상하지 않다고 느끼기 위한 것이다. 여기도 맨살노출이 많은 곳이지만 오히려 누가 함부로 만진다거나 하는 일은 잘 없다고 알고있다. 보통 다 벗어야 한다고 알려져있지만 컨셉만 잘 맞추면 그렇지 않다. 내가 클럽 안에서 본 가장 변태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은 몸을 전부 다 가린, 아주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였다. 


이곳을 갔다온 소감이라면 한번정도 호기심에 가면 좋지만 굳이 친구들이랑 놀러 가진 않을것같다는것.  음악이 굉장히 훌륭했고 클럽문화도 특이하고 재밌었지만 평범한 내가 구경하러 가기에는 내가 그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중요한것은, 안에서 뭘 보더라도 절대 사진을 찍는다거나 인증샷같은건 생각하지 말것. 바로 쫒겨날 수 있다. 


최근에는 베억하인의 "엄근진주의"에 반대하여, 오히려 검은색이 줄줄 흘러내리는 옷은 거절당하는 클럽들을 더 가게된다. 나는 클럽에 가면 한시간정도는 적응하느라 어색해하며 뚝딱거리는 사람인데, 음악이 취향인 파티에 가니까 들어가자마자 신나게 놀 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베를린에 엄청나게 다양한 클럽과 파티가 있는 만큼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는게 중요하다.

위에 있는 두 클럽 중 "특이한걸 보고싶다", 라는 생각만으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곳을 찾는다면 자신도 그 세계에 던져져 신나게 놀 준비가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줄서는 시간만 낭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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