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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 Sep 14. 2022

베를린의 호크룩스들

되너와 클럽마테

호크룩스: 해리포터 세계관에 나오는 용어로 악당인 볼드모트가 영혼 일부를 나눠 담은 아이템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호크룩스가 파괴되면 치명타를 입는다. 



베를린 호크룩스 1: Döner. 


이미지 출처. 베를린의 되너샵 추천글이다: https://berlinfoodstories.com/2015/03/31/best-berlin-doner-kebabs/ 


베를린의 거리를 걷다보면, 회전하는 케밥그릴이 있는 To go 되너가게를 흔히 볼 수 있다. 

베를리너들의 소울푸드 되너는 베를린에서 발명된 독일식 음식이라고 한다. 1970년대에 터키인 이주민 카디르 누르만이 ‘발명'한 음식으로,  걸어가면서 먹는걸 선호하는 독일인들의 생활방식에 맞춰 고기를 빵에 끼워서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되너케밥은 대성공을 이루게 된다.


되너는 주로 얇게 썬 양고기나 닭고기에 야채 혹은 감자튀김, 그리고 몇가지 소스를 얹어먹는 음식이다. 케밥인데 빵만 더 두껍다고 생각하면 된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원조는 원조인지라, 베를린에 가장 많은 되너가게가 몰려있고, 베를린에서 파는 되너가 다른지역보다 훨씬 맛있었다. 현재 독일 전역의 되너케밥집이 약 4만개인데, 그중 베를린에서만 4천군데라고 하니, 경쟁이 치열하기도 하다. 


나는 주로 되너박스를 사먹는다. 빵 대신에 사각의 포장용기에 담는게 되너박스.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먹는것보다는 어디 앉거나 집에 포장해와서 먹는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처음 되너를 맛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집으로 포장해 갈 생각이었지만, 같이 간 친구는 맑은 날씨를 즐기며 걸어가면서 먹자고 제안했다. 별로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걸어다니면서 뭔가를 먹는건 학원 앞 길거리 닭꼬치나 피카츄 돈가스정도였지. 핫도그는  걸어다니면서 먹어도 햄버거같이 크게 베어무는 음식을 길에서 걸어다니면서? 내 불편함을 눈치 챈 친구가 결국에는 앉을곳을 찾아보자 하였지만, 몇걸음 가지않아 랜덤한 집 돌계단 앞에 털썩 앉는것이 아닌가. 나는 앉아있는 친구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노숙자들이 지나가다가 급한 볼일도 보고 그랬을텐데… 길바닥에 앉은 옷으로 자기집 소파에도 앉고 의자 침대에도 앉을텐데. 이런데 앉기 싫다는 내색을 하면 분명 유난이거나 공주병이라고 생각하겠지. 지금은 나도 적응해서 신경을 덜 쓰게 되었지만 처음엔 맨바닥에 앉는것이나 걸어다니면서 뭔가를 먹는다는게 불편하고 으악스러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불편함은 익숙해졌고, 지금은 건물앞 계단만 아니라면 아무데나 잘 앉고,(여전히 건물 앞 계단은 더럽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도 잘 먹는다. 여전히 걸어다니며 내 얼굴만한 음식을 먹는걸 즐기지는 앉지만, 지금은 그렇게 편하게 길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게 이 도시의 소소한 매력이기도 하다. 


베를린 호크룩스 2: 클럽마테와 Wegbier(벡 비어)


이미지 출처:https://de.wikipedia.org/wiki/Club-Mate


걸어다니면서 먹는 것 이외에도 베를리너들은 걸어다니며 마시는걸 즐긴다. 


금요일 저녁, 지하철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한 무리의 그룹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한국이었다면 그들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서 앉거나 어르신들이 호통을 치는 다음장면이 그려진다.


베를린에서는, 특히 주말 저녁이면 길을 걸어가며 맥주를 마시거나, 심지어 지하철을 기다리는동안, 아니면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동안 맥주를 한손에 들고 조용히, 혹은 크게 떠드는 무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그걸 지칭하는 용어도 있는데 벡 비어(Wegbier)라고 부른다. 길을 뜻하는 단어 Weg과 맥주 Bier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이동중에 마시는 맥주라는 의미이다.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는건 독일의 다른도시에서도 꽤나  볼 수 있지만 지하철 내에서 맥주를 마시는건 베를린 특유의 풍경이다. 금요일 저녁에 지하철 U8, 트램 M10을 타면 클럽으로 향하며 이미 신나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특이하게도 베를린에서는 전철에서 맥주를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 별로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물론 평일 대낮부터 그런 행동을 한다면 다들 불쾌한 시선을 보낼 것이다. 주말 저녁한정으로 이런것들이 용인되는 느낌이다. 처음 베를린에 도착했을때 의문이었던,  전철 철도에 깨진 맥주병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https://de.wikipedia.org/wiki/Club-Mate


베를린의 거리에서는 걸어다니며 들고 다니는 것으로 맥주만큼이나 흔한 것이 바로 클럽마테다. 마치 한국에서 '아메리카노(아아)'를 즐기듯, 클럽마테는 베를린 젊은이들에게 활력의 원천이다.

레드불과 맞먹는 카페인 함량으로, 밤을 꼬박 새워 일하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처음 인기를 얻었다. 그 인기는 클럽 문화로 퍼져, 밤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베를린을 진정으로 경험하려면 되너와 클럽마테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이 두가지를 맛보는것으로 베를린만의 독특하고 중요한 먹거리문화를 체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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