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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 Sep 14. 2022

이방인

길 위의 낯선 사람들

“우리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 근데 어디 살아? 혼자 살아? :)”


독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외국인으로서 살고 있는 젊은 여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이다.

경험 상 무턱대고 다가와서 외모를 칭찬하거나 플러팅을 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눈빛이 이상하거나 무식해 보였다. 그도 그럴게 처음 보는데 무턱대고 친구하자던가 어디 사냐든가 묻는 타입의 인간이 일반적인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간혹 스몰 톡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번호를 교환하거나 나에 대한 정보를 주는 건 금물이다. 그 스몰 톡 끝에는 결국 “어디 살아?” 라거나 “혼자 살아?”같은 음침한 질문들이 섞여있다. 마치 순진하게 길을 묻는 줄 알았는데 길을 알려주고나면 기운이 좋아보인다느니, 조상님에게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그분들처럼.

 

해외에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면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말을 거는 모든 낯선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하루는 새벽 3시쯤 집에 귀가하고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S-Bahn(전철) 역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는데 저 멀리서 어떤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흔한 술 취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유심히 보니 피를 흘리며 엎어져있었고, 옆에는 자전거가 쓰러져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달려가서 괜찮냐고 물으니 의식은 있었다. 아직 독일어가 익숙지 않고 당황스러워서 주변에 도와줄 사람을 찾아서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그 낯선 사람과 나는 쓰러진 남자 곁을 지키기로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당황해하다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남자가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한다고 느꼈다. 무엇보다도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앞에 두면 긴장하거나 걱정되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리 아닌가? 새벽 4시쯤이었고, 그 남자는 어쩐지 들뜨고 신나 보였다. 중년의 남자가 술 취해서 지하철 계단을 자전거로 내려오려다가 굴러 떨어진 거 같다며, 일으켜 세우려고 한다던가, 혼자 걸을 수 있어 보인다고 한다던가, 아무튼 내가 보기엔 정말 이상해 보였다.

구급차가 오고 나서 집에 가는데 남자가 나를 영웅이라며 치켜세우더니 이렇게 된 거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고, 나는 지금 이른 새벽인데 무슨 커피고 무슨 맥주냐며 거절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그럼 집까지 데려다주게 해달라고 끈질기게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거절하는 것도 피곤하고 지쳐서 결국에는 다음에 만나자고 번호를 줘버렸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나는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혹시 그가 내 뒤를 밟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했다.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점점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25살이라고 했는데 얼굴은 나보다 어리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몸도 얼굴도 35살처럼 보였다. 싫다는데 자꾸 아침부터 맥주나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것도 싫었다. 왓츠앱을 차단했지만 며칠 뒤에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가 오고는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또 전화가 왔을 때 순간적으로 화가 밀려와서 전화를 받자마자 “지금 나한테 계속 연락하는 거 진짜 소름 돋는 거 알아??”라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랬더니 하는 말,


“난 그전에 연락한 적 없는데? 넌 꿈꾼 거거나 미쳤어.”

“내 핸드폰 기록에 남아있거든?”

“그럼 내 여자 친구가 했나 보지”


헛웃음이 나왔다.

외롭고 아는 사람 한 명 없을 때, 길거리에서 거는 개수작을 단순한 호의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언어 공부하는 셈 치고 사람을 만나겠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극단적이었지만 사실 쓰러진 남자 이야기를 제거하고 나면 그게 현실이다. 외국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얘기하고 친해진다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본인이 그렇기 때문에 타인들도 악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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