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비 Jan 04. 2024

회색 겨울과 빛나는 크리스마스

베를린에서 겨울나기

독일의 겨울, 특히 베를린의 겨울은 솔직히 말해서 끔찍하다. 


처음 베를린에 왔을때의 겨울 공기는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어디선가 섞여오는 낯선 탄냄새, 습하고 우중충한 공기, 잘게 갈라진 구름들이 낮게 깔려있는 하늘..그런것들.(나중에 알게된 것: 근처에 있던 템펠호퍼공원에는 바베큐 구역이 있었다.)  

그런 회색빛의 날씨는 겨울 내내 지속된다. 


 찬란한 여름과 짧은 가을이 지나고 나면, 크리스마스 마켓만이 그 어두운 계절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Zoo역이나 슈네베르크 지역에 가면 가로수나무는 이렇게 꼬마전구로 휘황찬란하게 변신한다. 이 시기에 일부러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니. 이번 글에서는 독일의 연말 분위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설날처럼 중요한 명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긴 휴가를 가진다. 나 역시도 지난 크리스마스들은 한국인 친구들이나 학교 친구들과 함께 모여 복작복작하게 보내왔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떨어져있던 첫 해의 12월에는 여전히 독일어 공부때문에 휴관일 직전까지 도서관에 다녔는데,  그 당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검은머리 아시아 유학생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독일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한껏 이런 명절 분위기가 난다. 

Gendarmenmarkt나 Charlottenburg 궁전의 마켓 등 베를린에서 유명한 마켓들이 있는데 이중 몇몇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며 항상 사람이 붐빈다. 



길거리 음식, 수공예품, 그리고 장식품들이 가득하지만 다른건 몰라도 꼭 사마시는 것 하나는 글뤼바인(Glühwein)이다. 뜨거운 와인에 계피나 레몬을 첨가한 음료인데, 어쩐지 이걸 마셔야만 그 해 겨울을 제대로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해마다 다른 디자인의 글뤼바인용 머그컵이 나오는데, 맘에드는 디자인이 있다면 글뤼바인을 사 마시고 판트를 안하는 대신 컵을 기념으로 가지고 있을수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또 하나의 축제인 Silvester Party가 기다리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독일의 모든 곳에서 폭죽과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날이다. 



직접 보면 정말 장관이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폭죽을 사용하기도 해 위험하기도 하다. 매년 첫날만 되면 다친사람들, 체포된 사람들, 폭동에 대해 기사가 뜨니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이런 날은 가급적 집, 혹은 집과 가까운곳에서만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작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Bleigießen을 해보았다. 

이건 새해의 운세를 점치는 전통인데, 작은 납을 녹여 찬물에 붓고 그 모양으로 새해의 운세를 점치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내고 이 운세가 맞았냐 하면...어떤 친구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운세가 말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나는 내 운세를 기억하지 못해서 알지 못하겠다. 

 프랑크푸르트에 살 때에는 포르투갈인 친구와 서로의 언어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일도 해봤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모르고 친구는 한국어를 모르니 서로의 비밀을 지켜줄 수 있었다. 


친구가 직접 구운 쿠키
한국인 친구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독일의 겨울은 춥지만 12월과 1월은 이런 이벤트들과 함께 친구들과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나름대로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올해에는 다행히 여유가 생겨 한국에서 가족들과 연말을 보낼 수 있었다.(겨울에도 해를 볼 수 있는게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니!) 

몇년만에 한겨울을 서울에서 보내게 되니 한국과 독일의 연말을 같이 즐길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 크리스마스에는 나도 적당한 크기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서 예쁘게 꾸밀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생기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를린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