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습관 들이기
요즘 아침마다 첫째 아들, 민제와 함께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침 조깅이다. 매일 6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스트레칭과 함께 집 주변의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돈다. 시간은 4~50분 정도 걸린다.
아들과 매일 아침조깅을 함께 한지 어느덧 22일째이다.
아침조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아들이 살을 빼고 싶단다. 다이어트에는 공복에 하는 유산소운동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아침조깅을 권했고, 우리는 매일 아침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원래 혼자서 거의 매일 조깅을 해왔다. 육아휴직 후 근력과 지구력을 더 키우고자 하는 목표로 매일 조깅을 해왔다. 어느덧 육아휴직을 한 지 8개월 차 그래서 조깅은 이미 나에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둘이서 무언가를 함께 하고자 할 때 둘 중 한 명의 의지만 있어도 계속해서 해 나갈 수 있다. 조깅은 이미 나에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조깅은 나에게 힘들지 않다. 따라서 나의 습관에 아이의 습관만 더해지면 된다. 하지만 중1 아들의 의지를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원래 기상시간보다 거의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잠이 덜 깬 상태로 뛰는 건 성인도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당근을 제시했다. 아들이 사고 싶은 자전거를 살 수 있도록 하루 달리기당 1만 원 적립이라는 당근을 내밀었다. 대신 하루도 빠지면 안 된다는 조건과 함께.
육아전문가들은 대가성 육아를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남편을 비롯한 내 주변의 남자 동료들은 나에게 '남자는 대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조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들이 사고 싶어 하는 자전거는 백만 원 정도였고, 달리기만으로 이 자전거를 사기 위해서는 100일을 달려야 한다.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되는 시간인데, 잘만하면 이번 기회를 통해 아들에게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들과 나 사이의 계약이 성립되었고 우리는 아침마다 달리고 있는 것이다.
아침마다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조깅을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고 하면 보통은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아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하는 모자기간을 상상하기 쉬운데, 처음 우리 대화의 대부분은.. 대화라기보다는 나의 명령이 대부분이었다.
빨리 따라와.
이럴 때마다 우리 아이의 대답은 아파서 힘들다였다. 몸이 안 하던 짓(?)을 해서 그런지 처음 한 10일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배가 괜찮아지더니 이번엔 머리가 아프단다. 머리가 괜찮으니 이번에 숨이 너무 차서 가슴이 아프단다. 20일이 지나니.. 그런 아프다는 말은 사라질 줄 알았지만 이제는 발목이나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처음에 뛸 때는 뛰지 못해서 걸었다. 조금만 뛰거나 빨리 걸어도 아프다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가끔은 나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여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포기하면 아이도 포기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추슬렀고 다행히 아이도 안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에게 달리기를 적응시킨 방법은 '우리 지금부터 열 발자국만 달려보자!'였다. 열 발자국은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그럼 스물 발자국 해볼까? 그다음은 저 앞의 다리까지만 뛰어볼까? 이렇게 접근했더니 이제는 아이가 먼저 저기까지 달려보자고 말한다. 이렇게 매일 한 것이 오늘로 벌써 22일째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습관을 바꾸려면 최소 21일이 필요(Maxwell Maltz의 21일의 법칙)하며, 행동이 자동화되어 습관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평균 66일(Philippa Lally의 66일의 법칙)이 걸린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습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간인 21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내가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나를 만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존 드라이든의 명언이다. 습관은 행동을 자동화하여 그 행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한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
습관도 대물림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이 말이 나에게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가진 좋은 습관 중, 운동하는 습관을 물려주고 있는 중이다.
사춘기 초입의 아들은 억울한 일이 있거나 어떤 일이 자신의 뜻과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감정이 극도록 증폭되어 자기 파괴적인 말을 하곤 했다. 엄마로서 그 말을 옆에서 들으면 마음이 몹시 아프다. 어떤 때는 내 아이가 왜 이렇게 나약할까 하는 마음에 질책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안쓰러운 마음에 안아주기도 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한 적도 있다.
운동이 감정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운동은 엔도르핀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하고, 코르티솔을 줄임으로써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나는 우리의 아침조깅이 사춘기로 인해 겪게 될 아들의 불안함과 감정적인 어려움을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운동의 효과인지, 아침조깅을 시작하고 난 이후, 아직까지는 아이가 예전처럼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한 적은 없다.
조깅은 학습능력과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면 뇌로의 혈류가 증가하고,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 또한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라는 신경성장 인자의 분비를 촉진시켜 집중력과 주의력을 향상한다. 하버드 의대에서는 유산소 운동이 ADHD를 개선한다는 연구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감정적, 학습적 측면뿐만 아니라 아침조깅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아이의 자신감 향상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아이는 오랫동안 걷는 것을 싫어했다. 아니 힘들어했다. 이제는 그 거리를 쉽게 걷거나 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아이는 탁구장에서 집까지 뛰어와봤는데 힘들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너무나 대견하고 기특하다.
아들과 매일 함께 달리고 있는 호수인 기지제에는 요즘 연꽃이 활짝 피었다. 너무나 아름답다. 연꽃 향기를 희미하게 머금은 바람이 불 때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호수에는 백로와 오리가족들도 있다. 아들이 너무 좋아한다. 나는 같이 달리면서 이제는 명령이 아닌 대화를 시도한다.
"민제야. 고마워. 이 아름다운 연꽃을 아들과 함께 조깅하면서 보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엄마야".
그러면 아들은 자기가 사고 싶은 자전거 브랜드 이야기를 주야장천 한다.
"......."
오늘로 우리의 조깅은 22일째지만, 66일이 지났을 때, 그리고 100일이 지나 아이가 원하던 자전거를 산 이야기도 꼭 브런치스토리에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