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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린 Mar 07. 2022

친절한 단호박을 향하여

 으아아아. 교사가 된 이후로 이렇게 바쁜 적이 있었던가. 코로나 3년 차를 맞이하면서 학교도 코로나 상황에 많이 적응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경기도 오산이었다. 3월 2일 개학하자마자 우리 반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2월 중순부터 여러 사정으로 계속 받게 된 신속항원검사와 pcr검사로 인해 나는 소위 멘붕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퇴근하고 기절한 후 우당탕탕 글을 쓰고 있으니 말 다했지 뭐.


 푸념은 이제 그만하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렇다. 나는 딩초들에게 둘러싸여 매일을 보내는 초등교사다. 경력은 월급만큼이나 매우 작고 소중하니 내 시선이 절대 전체 초등교사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3월 2일 개학일은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비장한 각오로 전투에 임하는 날일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조상님들이 전국의 선생님을 구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사들의 진정한 일 년의 시작은 3월 2일이다. 과연 어떤 아이들을 맡게 될까,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 밤을 꼴딱 새우고 7시에 제일 먼저 출근했을 때의 긴장감이란. 올해 삼일절도 잠은 글렀구나 하며 개학날 입을 옷 패션쇼를 한참을 했더란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풍문처럼 들려오는 개학 전설이 있는데, 동학년(그 해에 같은 학년을 맡게 된 교사들)이 깔맞춤으로 가죽재킷을 입고 왔다더라, 아이들에게 이를 보이면 그 해는 운이 텄다더라 하는 말들일 것이다.

나는 학생 때 개학일만 가까워지면 짜증이 솟구치고 인내심이 바닥나던 사람으로서 이 말에 단호히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낯을 가리는 사람은 새 학년, 새 학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무섭다. 그런데 올해 맡을 아이들 명단을 보니 작년 학년에서 유명했던 친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나도 올해만큼은 첫날 기싸움을 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다.


 3월 2일 아침, 전날 새벽에 골라놓은 작업복(?)을 입고 비장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그래, 6학년 3년 하던 짬바가 있지, 4학년은 껌일 거야 자기 암시를 하며 우리 반 첫 타자의 등장을 기다렸다. 첫 손님 등장. 허리는 90도로 숙이지만, 눈은 나의 전신을 후루룩 훑는다. 나도 지지 않았다. 우렁찬 목소리로 "안녕! 아침밥은 먹고 왔니?"라고 말하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이렇게 몇몇 학생들과 첫 만남을 하고 있는데 등장부터 심상찮은 아이들이 무리 지어 왔다. 그렇다. 바로 유명인의 등장. 그 친구는 큰 소리와 큰 동작으로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나의 기선을 제압했다. (나 혼자 제압당했다.) 하지만 막상 고개를 든 아이를 눈앞에서 보니 예상 밖의 모습이 있었다. 세상에 너무 귀여운 생명체잖아. 장난이 가득한 눈은 웃음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그 친구는 긴장한 기색이 하나도 없이 나에게 인사하고 온 교실을 휘저으며 친구들과 주먹 인사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첫날이 무사히 끝나고 <새 학년 첫 마음>이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학생들에게 받았다. 흐뭇해하며 읽고 있는데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아까 그 친구였다.

'선생님이 나를 싫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선생님이 착한 것 같았다. 선생님 올해 저 잘할게요.'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래 올해는 그 아이도, 나도 다를 수 있지. 나부터 걱정을 버리자. 선생님이 착하다고 쓴 거에서 이미 내 마음은 무장해제 상태였다. 그런데 너무 착하기만 한 건 선생이 아닌 호구니까 올해 내 목표는 '친절한 단호박'으로 정했다. 그렇게 가장 어려운 교사 상인 친절하지만 단호한 선생님이 올해 목표로 정해졌다. 엄청난 여정이 기다리고 있겠지. 잘하자. 잘할 거야. 사랑이 넘치지만 엄격할 땐 엄격한 균형 잡는 교사. 친절한 단호박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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