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린 Sep 13. 2022

선생님, 쟤는 지가 판사도 아닌데 저래요.

정재민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를 읽고

선생님, 쟤는 지가 판사도 아닌데 저래요.

말문이 턱 막힌다. 오늘 친구와 자주 다투는 우리 민준이(가명)가 자기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한 말이다. 자기 딴에는 억울한 일인데 친구는 자기만 뭐라 하니 내뱉은 모양이다. 나는 법정과 먼 하루들을 보내는 평범한 시민이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나에게 바라는 모습은 공평과 정의의 화신, 읍소하면 한 번에 잘잘못을 가리는 능력 있는 재판관이다.

쉬는 시간만 되면 신문고를 두드리며 ‘나 억울하오’를 외쳐되는 아이들이 한 사발이니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민원을 들어주느라 사실 죽을 맛이다.


오늘처럼 피고인의 현란한 말솜씨를 들은 날에는 나도 헷갈린다. 초4의 자기 변론 솜씨가 아주 훌륭하다. 못하는 말이 없다.

친구에게 말을 곱게 하자, 폭력은 안된다. 과거 이야기하지 말고 오늘 있었던 일만 이야기하자.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너도 인정하니? 친구가 선생님한테 고자질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친구는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란다. 감정은 배제한 채 차분한 이성으로 ‘오, 나 좀 잘 지도하고 있는데?’라며 속으로 히죽 웃고 있을 때 민준이는 불만스러운 듯 어퍼컷을 날린다.

“선생님이 그 상황을 못 봐서 그래요! 으아앙

그러게. 내가 판사도 아닌데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겠니.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판사도 짐작한 것보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아이들의 소소한 송사도 막상 겪어보면 그들의 감정은 전혀 소소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징역 몇 년, 사회봉사 몇 시간, 벌금 몇 백만 원 등의 단위를 넘어 당사자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선고해야 하는 판사의 무게란 책을 읽었어도 상상하기 어렵다.


오늘의 글은 그동안 판사로서 고생하신 작가님께 수고하셨다고, 당신 덕분에 분명 억울함을 푼 사람들이 많았을 거라고 감사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판사로 재직하시는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작가로서 제2의 인생 또한 응원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깜빡이는 커서처럼 기억은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