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 연치가 올해로 93세이시니 가족들도 걱정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이고. 심시선 여사와 그 후손들의 삶이 담긴 ‘시선으로부터,’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우리 외가 생각이 많이 났다. 20세기를 관통하는 그들의 삶이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외가는 철저한 모계 중심사회였다. 딸만 7명으로, 전국팔도 남부럽지 않은 딸 부잣집이었으니 말이다. 나와 동생이 엄마네는 <작은 아씨들>의 실시판 아니겠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하지만 7이란 숫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할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아들을 낳고 싶다는 그 바람. 이번에는 남자겠지. 하며 할머니는 그 오랜 세월을 아이를 잉태하고 육아하며 보냈더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할머니의 시댁과 할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열망이 그리 크지 않았는데, 덕분에 7(?)에서 멈출 수 있었다더라 하는 것이 우리 엄마의 소견이다. 막내 이모의 성함에 完(완) 자가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겠지.
엄마의 성장과정을 들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우리 엄마는 7녀 중 6번째로 그 순서가... 매우 애매했다. 첫째, 둘째, 셋째 이모처럼 포디움에 들지는 못했고 그렇다고 막내처럼 대놓고 사랑받는 위치도 아닌 애매한 여섯째. 하지만 가끔 엄마가 이야기하는 7공주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엄마는 그 시대와 그 상황이 주는 한국인 특유의 한이 보이지 않았다. 식구가 많았으니 분업화, 자동화가 되었는지 위에 언니들은 동생들 돌보고 공부 봐주고 한 것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언니들하고 재미있었던 추억을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표정이 꾸밈없이 맑아서 참 좋다. 그렇다고 부모의 손길이 없었느냐. 그건 또 아니어서 딸이 일곱이나 되지만 할머니는 엄마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고 한다.
하루는 아홉 식구 삼시세끼 덮어놓고 밥만 해야 하는 아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할아버지께서 결단을 내리셨다. 우리 ‘식생활 개선’을 하자고. 당시에는 외식문화도 없었고, 솥에 설렁탕이면 설렁탕, 된장국이면 된장국을 마녀의 수프처럼 휘이휘이 젓고 있는 것이 일과라고 했다. 그걸 아침 점심 저녁을 했으니 몸이 안 남아나는 게 당연지사. 할아버지의 배려 덕분인지 다음날부터 아침은 빵과 과일로 바뀌었고 그 전통(?)은 나에게까지 내려오게 된다. 내가 초등학교 때도 아침으로 빵이랑 과일 먹는 집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그 옛날에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거지?
할머니는 심시선 여사처럼 모던 걸, 신여성은 아니었으나 그 생각만큼은 비슷한 구석이 있었던 듯하다. ‘여자일지라도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하니 딸 일곱의 어머니라서 그랬을까. 일단 본인부터가 경제활동을 하시던 분이셨다. 집안의 여러 경제적 위기가 올 때마다 본인이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다 끌어다가 과감하게 투자하는 야수의 심장을 가진 승부사셨다. 정작 은행원이셨던 할아버지는 너무 위험한 것 아니냐며 말리셨다 하실 정도니 여장부 기질을 타고 나신 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하루는 엄마가 나와 내 동생을 낳고 집에 있다 일을 하러 나가겠다고 친정에 방문했다. 원래 엄마는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직종의 회사를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집안이 벌컥 뒤집혔다. 할아버지와 이모는 요즘 같은 세상에 뭔 회사냐면서 원래 하던 일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며 엄마를 설득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네가 다 생각이 있어서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라며 엄마 편을 들어주었다. 엄마는 아직도 그 일이 너무 고맙다며 자신이 사회에서의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었던 큰 버팀목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이렇게 묵묵히 열심히 사시던 커다란 벽 같던 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니 마음이 아프다. 할머니는 현재 치매 전 단계로 노인성 우울증을 앓고 있으시다. 현재 사람 만나는 것이 맘 같지 않아서 딸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일절 할머니를 뵙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3년 넘게 돌봐주시는 간병인 분도 못 알아보실 때가 있다 해서 가슴이 철렁하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딸 일곱의 얼굴과 이름은 잊지 않으신다는 거다. 7명이 교대로 할머니를 뵈러 가는데 항상 ‘OO이 왔니?’하며 반가워해주신다고 한다. 어서 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좋아지셔서 6-1인 나에게도 찾아뵐 기회가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