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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교사 Sep 29. 2022

보육교사가 추석을 맞이하는 자세

"선생님 나 세 번만 자면 어린이집 안 와요. 할머니 집에 가거든요."

"우와! 정말 좋겠다."


'그래 나도 세 번만 자면 출근 안 한다. 야호!'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하루 종일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추석을 기다린다. 아침마다 교사에게 몇 번만 자면 추석인지 물어보는 아이, 달력을 보며 손가락으로 하루하루를 세보는 아이, 오늘이 아닌 그다음 날은 무조건 내일이라고 믿으며 내일이 추석이라 말하는 아이.


각자의 입장과 자리에 따라 추석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를 거라 생각한다. 친정어머니이자 시어머니, 딸이자 며느리, 사위이자 아들까지, 누구든지 위치에 따라 각자의 자리가 달라진다. 나 역시 그렇다. 아직 미혼인 나는 집에서 딸의 역할만 하고 있지만 직장에서 보육교사로서 추석을 맞이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우리 집은 엄마, 아빠 모두 막내로 집에서 명절을 지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음식 한번 만들어 본 적 없다. 그랬던 내가 때때마다 송편을 빚고 있다. 집도 아닌 어린이집에서 말이다. 동그란 모양, 만두 모양, 토끼, 고양이... 아이들의 원하는 거라면 척척 만들어 내야만 한다. 간혹 애매모호한 모양이 나오면 울상인 얼굴로 "선생님 그거 못 만들어요?" 하며 실망한다. 아이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없는 나는 한 주 전부터 점토로 '송편 빚기' 연습을 한다.


추석 하면 떼어놓을 수 없는 연중행사 - 민속놀이가 있다. 제기차기, 투호 던지기, 사방치기, 윷놀이 매년 똑같은 놀이를 반복하지 않는다. 딱지치기, 팽이 돌리기, 연날리기, 비석 치기, 땅따먹기, 오재미 놀이, 제기도 발제기, 판제기 두 가지로 나뉜다. 준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남는 건 사진이다. 워낙 활동감 넘치는 놀이라 아이들의 손, 발 혹은 얼굴이 흔들릴 때가 많다. 그렇다고 놀 때 "잠깐"하고 외치면 아이들의 표정은 바로 굳는다. '내가 포토그래퍼도 아니고...' 아이들 놀이 욕구 채우랴? 부모들 사진 욕구 채우랴? 사진 찍을 때마다 늘 대혼란이다.


추석 명절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복을 입는다. 어린이집 역시 한복을 입고 추석놀이를 즐긴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인 우리 어린이집은 아이들 등원 시간도 이르다. 그렇다 보니 등원할 때 한복을 가지고 와 오전 간식을 먹고 난 뒤 갈아입는다. 한 교실에서 남아, 여아로 구별될 수 있도로 교구장으로 공간을 분리한다. 10명 남짓되는 아이들을 성별에 맞춰 공간 분리를 한 뒤, 한복을 갈아입는다. 여름철 물놀이를 했을 때만 해도 여섯 살 아이들은 스스로 옷을 입고 벗었다. 다만 계절의 변화로 옷이 살짝 두꺼워졌을 뿐인데... "선생님 이게 안 벗겨져요.", "선생님 머리에 옷이 걸렸어요" 여기저기 아우성이다. 내 손은 쉴 틈 없이 바삐 움직인다.


옷을 벗기고 나면 한복 입는 것도 문제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평소 입던 치마 스타일과 다르다 보니 한 명 한 명 입혀줘야 한다. 앞 고름 묶는 것도 당연 교사인 내 몫이다. 요즘은 똑딱이로 된 것도 많던데... 간혹 옛날식 한복을 입는 아이가 있으면 앞 고름이 풀려나갈 때마다 수시로 묶어줘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름이 풀리지 않도록 끈으로 살짝 묶어주는 것이다. 남자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앞, 뒤 없는 바지에 질질 흘려내리는 소맷단과 바짓단.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이라 부모들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큰 한복을 사 입힌다. 살짝 시침질을 해서 보내주면 좋으련만. 나는 아이들이 놀이할 때 바지나 소매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무줄로 팔과 다리를 묶어준다.


아참!! 송편을 빚을 때도 한복을 입고 한다. 사진 찍을 때 비주얼이 중요하기에... 아이들은 불편한지 반죽 만진 손으로 한복 여기저기를 들춘다. 그때마다 나는 "안돼!!"하고 외친다. 추석 행사는 명절 전날에 진행되어 그날 입은 한복을 명절 당일날에도 입어야 한다. 명절 전 날 드라이클리닝을 맡길 수 없기에 이 또한 바로 민원감이다.


올해로 18번째 아이들과 맞이하는 추석이다. 아이들 한복 입히기, 민속놀이 하기, 송편 빚기, 처음과 지금 별반 다른 건 없다. 하지만 그때그때 추석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은 늘 다르다. 작은 것 하나부터 열까지 민원이 많았던 해는 사진과 한복 심지어 아이들이 만든 송편 모양까지 신경 쓰느라 즐기기는커녕 "안돼" 혹은 "잠깐"를 외치기만 하던 나다.


반면 하원 길, 아이들 얼굴만 봐도 '꺄르르' 웃는 부모님들과 함께 하고 있는 올해는 나 역시 무엇을 하든 즐겁다. 아이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진이 흔들려도, 송편은 못난이 만두가 되어도, 한복에 밀가루가 덕지덕지 묻어도 "정말 신나게 놀았나보다." 하며 미소 짓는 부모님들로 인해 나 역시 올 추석 행사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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