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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교사 Sep 25. 2022

어린이집 방문은 두 시간 전에 알려라

어린이집 방문을 앞둔 관계자들에게 


"선생님, 일주일 후 어린이집에 손님이 온다고 하니까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뭐라고? 일주일이나?' 앞으로 일주일 간 손님맞이에 돌입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시간이 얼마나 고달플지 '에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출처 Pixabay

먼저 원장 선생님을 뒤따라 어린이집 라운딩을 시작했다.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원장 선생님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곳마다 나는 사진을 찍고 해야 할 일 들을 수첩에 빼곡히 적어 내렸다. 청소와 환경, 도배와 페인트 보수작업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이 많은 일들을 선생님들에게 전달할 생각 하니 벌써부터 원성이 환청으로 들린다.


어린이집에 손 볼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종일 보육만으로도 힘든 선생님들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나는 해야 할 일에 대한 경중을 따지고 우선순위를 가렸다. 교실 상황과 선생님들의 휴가도 파악하여 일주일 계획이 완성됐다. 그럼에도 뜻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선생님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천천히 하면 될 거예요!"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위로하지만 나도, 그들도 안다. 이 많은 업무가 천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선생님~ 유희실이랑 공동구역 청소 마무리되었나요?"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원장 선생님 마음에는 이미 '조급증' 친구가 찾아왔다. 아직 교실에는 아이들이 많아 나와서 청소에 동참할 교사는 세 명뿐이다. 우리는 한 층씩 도맡아 먼지 제거를 시작했다. 털고 쓸고 닦고, 약 한 시간쯤 지나고 우리는 이쯤에서 청소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출처 Unsplash


어린이집 교실은 각 반 교사들이 매일 쓸고 닦는다. 무거운 교구장을 옮겨가며 아래 있는 먼지부터 서랍 구석구석 박혀 있는 먼지까지 싹싹 닦아낸다. 그럼에도 돌아서면 또 먼지다. 아이들의 쉼 없는 움직임은 교실의 활기찬 분위기가 될 수 있지만 먼지 온상의 시작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작은 놀잇감, 특히 레고는 말할 것도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세척과 소독을 하고 있음에도 사이사이에 낀 먼지는 당최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로 추우나 더우나 창문을 열고 지낸다. 안에서 만들어지는 먼지와 더불어 창밖에서 들어오는 먼지까지... 그나마 어린이집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손님이 온다는 일주일 동안 우리는 먼지 제거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했다. 어제 닦고, 오늘 닦고, 내일 닦고, 아침에 닦고, 점심에 닦고, 저녁에 닦고... 하루에 한 번도 힘든 청소를 삼시 세끼 매번 하다 보니 뒤돌아서면 굴러다니던 먼지도 다 도망간 듯 교실 곳곳이 깨끗해졌다.


청소에 이어 환경 업무도 시작한다. 하필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애매한 타이밍에 온다는 건지. '에휴' 또다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곳곳 보는 것만으로도 바다를 연상케 하는 소품들을 정리하고 가을 소품으로 바꿔주었다. '그냥 바꾸기만 하면 된다.' 생각하면 오산! 무엇이든 만지려는 아이들 안전을 위해 소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착해야 한다. 소품과 수납장은 소중하니까. 모든 곳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그곳에 글루건을 사용해 부착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소품과 수납장 사이에 붙인 마스킹 테이프가 서로 만나도록 잘 보고 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한 곳에 글루건이 묻어 둘 중 하나는 버리게 된다.


어린이집 도배와 페인트는 교사의 영역을 벗어난 일들이다. 그럼에도 손님이 온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작업에 들어가기 앞서 우리는 이것을 도배와 페인트라 적고 공작놀이와 미술놀이라고 읽는다. 처음 도배를 하고 남은 여유 벽지를 활용해 교실 곳곳 찢어지거나 유아들이 그림 그린 곳에 공작놀이를 한다. 수선해야 할 부분에 맞게 벽지를 자르고 풀을 바른다. 풀은 목공 본드와 물풀을 1:1 비율로 섞어 만들면 날이 덥거나 습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공작놀이가 마무리되면 미술놀이 시작이다. 벽면은 흰색도 아닌 것이 아이보리 아닌 색이 발려 있다. 나는 그나마 애매한 색을 만들기 위해 아크릴 흰색 물감과 노란색 물감을 섞는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는 이유는 혹시 벽에 물이 닿았을 때 물감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색칠했을 때와 말랐을 때 색이 달라진다는 것. 기존 벽색깔보다 조금 진한 색으로 칠해야 한다. 조금 진한 색의 정도를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각자의 감각에 맡겨야 한다. 그래서 간혹 색칠한 곳이 동동 뜨기도 한다.

출처 Unsplash


청소, 환경, 도매, 페인트! 이 모든 것을 삼일 만에 해냈다. 주말 빼고 이제는 이틀 남았다. 이틀 쉬면 되느냐 결코 아니다. 어린이집 안쪽 공간을 마무리했으면 외부 공간 청소 시작이다. 놀이터, 텃밭, 목공 놀이터, 모래놀이터까지... 어린이집 규모가 크다 보니 정리할 공간도 어마 무시하다. 쓸고 닦고... 그나마 요즘은 미세먼지도 낙엽도 떨어지지 않으니 참만 다행이다. 특히 낙엽이란... 쓸고 뒤돌아서면 또 떨어져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인데 왜 원장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모르는 건지...


드디어 D-day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님이 방문했다. 현관을 들어서 주변을 둘러보며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들어온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신발장에는 모래가 굴러다녔지만, 오늘은 물청소를 해서 반짝반짝하기만 하다. 현관을 지나 교실 곳곳에는 유아 작품과 가을 소품들이 손님을 반기지만 그분은 스쳐 지나간다.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먼지와 방금 칠한 듯 색이 맞지 않는 페인트 자국, 누빔 같은 벽지. 모든 것이 1초 컷이다.

출처 iStock



어린이집을 방문하는 관계자들에게 말합니다.
어린이집 방문 일주일 혹은 열흘 전에 알려주지 마세요.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만 단장은 필요하니 두 시간 전에 전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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