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아르바이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첫 알바는 20살이었다. 신축 아파트 입주 관리 센터에서 알바를 했었는데 내 부모님 또래의 어머님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사실 카페알바가 하고 싶었는데 초짜20살은 시켜주질 않아서 못했다.
그때 첫날 들어가면서 가졌던 마음가짐은 카페알바에 합격하기 위해 경력을 쌓는 느낌으로 일하자. 최고의 서비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쁨받자 였던 것 같다. 어떤 걸 시키든 일단 하겠다고 하고, 싹싹하게 그 중에서 가장 엉덩이가 가벼워야겠다 하면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알바치고 꽤 거창한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뭐든지 처음이란건 긴장되기 마련이니까. 모르는 건 더 긴장되고. 그래서 더 좋게 보였을테다. 신입의 패기와 동태눈깔의 경력자 중에 보기 좋은 건 신입일테니 말이다.
일하면서 배울게 좀 있었는데 하나도 빼지 않고 열심히 했다. 비록 단기 알바지만 민폐 끼치지 않고 잘하고 싶다는 생각 덕분에 퇴근하고 나서도 공부아닌 공부를 해갔고 모르는 말이 많았지만 찾아보면서 제대로 준비해가니 일이 점점 더 수월해졌거니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 나에게 믿고 시키는 일이 많아졌고, 젊어서 싹싹하고 밝은데다가 꼼꼼하고 빨라서 현장 팀장님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알바가 되었다.
남이 시키면 하고 아님 조용히 숨어있던 소심한 인프피가 더 이상 내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 큰 동기가 되어 매일을 의욕있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엔 조금만 시도해본 것들이 좋은 결과를 낳는 걸 경험하니 더 많은 의욕이 생겼고 더 많은 노력은 자동으로 따라오면서 그 노력이 빛을 보니 재미있어서 힘든 줄을 몰랐다.
이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경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경험이 나에게 흡수되어 나를 만들거라고 생각하니 어떤 것도 허투루 하기 싫었고 얻어가고 싶었다. 시간을 돈과 바꾸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시간을 써서 돈을 벌고 무언가 배워가는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또래 친구들은 이런 말을 했었다. 받은 만큼만 일해. 알바에 퇴근해서도 시간 쓰는 건 네 손해야. 라고 말이다. 나는 믿지 않았다. 그랬더니 계속해서 선순환이 일어났다.
집 내부 시설이름이나 신축 아파트 입주 절차나 체계와 같은 전과정을 가까이서 알 수 있었던 게 가장 첫째로 좋은 점이었다.
다음은 아파트 세대를 하나하나 들어가보면서 확인해야했기 때문에 40층 내외의 건물 층 하나하나를 계단을 타고 다닐 수밖에 없어서 유산소 운동이 아주 잘 되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외모 자신감도 많이 생겼다.
그리고 어머님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이쁨을 받을 수 있는지와 어떤 니즈와 특성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는 단순히 이 일에서만 취할 수 있었던 이점이고, 내면적인 발전은 더 크게 일어났다. 이때 어머님들의 무한 이쁨을 받고 사회에 조금 더 씩씩하게 나설 수 있게 된 것도 크다.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경험에 목말랐다. 내가 이 상태에 머무르면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늘 한계를 깨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세상에 내던져진 20살의 패기에 취해 기존과 정반대의 페르소나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고 점점 경험을 찾아다니면서 E 성향의 페르소나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INFP 탈출 세계관에서의 big bang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이 일은 나에게 유의미하게 되었다.